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양윤옥 옮김
소설가라고 하면 나와 다른 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매일 커피 5잔을 마시며 영감을 쥐어 짜내느라 하루하루 초췌하게 살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조금 더 가깝고 현실감 있는 사람들로 다가왔다. 전혀 다른 직업인데도 공감되거나 배울 점도 많았다. '직업'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달까?
회사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이건 돈 버는 수단일 뿐이야'라고 자신을 세뇌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집에서 회사까지 왕복 3시간, 9시간 근무, 출근 전과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씻는 데 각각 1시간. 거기에 수면 7시간. 이렇게 되면 평일 기준 내가 맨 정신으로 보낼 자유시간은 고작 4시간 남짓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직업은 인생에서 무시무시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일에 치여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요즘에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도 많아졌다. '그러려니'하고 살기 싫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천직을 찾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적어도 그 5%만큼이라도 나한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 직업이란 밥을 먹여 주는 대신 내 시간도 건강도 빼앗는 방해꾼인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히려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인생이 더 윤택해진 것 같다. 달리기도 시작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너무 신경 쓰지 않을 이유도 얻고. 결국 좋은 직업을 결정짓는 건 연봉도 명예도 아니라,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 주는지 여부가 아닐까?
나는 그런 네거티브한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거기에 관여한 사람들의 모습이나 언행을 세밀히 관찰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어차피 난감한 일을 겪어야 한다면 거기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도 건져야지요(아무튼 본전이라도 뽑자 라는). 당연히 그때는 나름대로 상처를 받고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그런 체험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무척 자양분이 가득한 것이었구나, 그런 느낌을 이제는 갖고 있습니다.
직업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성장해 나가는 건 극히 일부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의 담담한 문장을 읽고 있으면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나는 올해 들어 그럴만한 일을 하나 찾았는데, 솔직히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지 확신도 별로 없고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자꾸 공부하고 싶고 나아지고 싶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인정받을 만한 스펙은 안쌓고 이 '새로운 직업적 목표'를 향해 어색하게 노력하고 있으면 갑자기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다. 그럴 때마다 아래 문장을 읽으려고 여기에도 적어둔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정점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