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선물 같은
지난 30여 년 간을 차고 다녔던 손목시계 줄이 또 끊어졌다. 시계가 조금 두껍고 무게감이 있어서 가족으로 된 줄은 2~3년을 넘기지 못했다. 두꺼운 소나 악어가죽이라도 여름을 지나고 나면 땀이 차고 늘어나서 느슨해지곤 했다. 결혼하면서 주고받은 예물 시계가 있었지만 그건 오히려 십여 년을 견디지 못하고 명을 다했고, 다른 패션 시계도 몇 번씩 약을 갈아가며 사용했지만 중간에 멈춰서 작동이 안 됐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애플이나 삼성 워치로 바꿔볼까도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 손목시계에 애착이 간다.
문제는 이 시계의 약과 줄을 갈아주던 시계점이 모두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사무실 주변의 시계방은 코로나 때 문을 닫았고 그 시절을 아슬아슬하게 넘겼던 동네 시계방도 불과 몇 달 전에 정육점으로 바뀌었다. 시계를 차고 싶어도 줄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지만 왼손을 들어 올려서 시계를 보던 습관은 무의식 중에도 지속되었고 뭔가 허전했다. 더구나 이 시계는 요일과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 정확하게 잘 맞고 아내와 사귀기 시작할 무렵 그녀가 홍콩 출장길에 선물로 사다 준 것이라서 더욱 소중했다.
방법이 없으니 인터넷으로 줄을 주문해서 손수 갈아 볼 마음을 먹었는데, 이런 상황을 어찌 아셨는지 교회 집사님이 그 시계를 가져와보라고 하셨다. 그분은 시계 제작사에서 기술자로 퇴직하신 분이라 모든 시계에 능통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값비싼 스위스제 시계 수리를 택배로 주고받으며 맡기는 고객이 있을 정도였다. 집사님은 내 손목의 굵기를 가늠해 보느라 손목을 쥐어 보였다. 시계는 스텐줄이 가죽보다는 더 견고해서 오래가니 메탈 재질로 갈아주시겠다고 하신다. 딱 맞게 차는 것보다는 약간 헐렁하게 차는 게 좋다는 말씀을 하시며 시계는 가격의 고하와 상관없이 정확하게 잘 맞는 것이 좋은 제품이라는 말을 하신다.
그렇게 알맹이밖에 없던 시계에 생명줄을 입혀서 일주일 후에 가져다주셨다. 은색 시계에 맞게 같은 계열의 메탈줄을 둘렀는데 애초에 이렇게 출시된 것 같은 조화를 이뤘다. 시계줄의 폭도 본체와 딱 맞아떨어져서 오차도 없다. 소장하고 있었던 시계줄이라 돈도 안 받으시겠다며 손사례 치시는데 귀하고 소중한 선물을 받게 된 것 같아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본인의 재능으로 타인을 섬기게 된 것이 더 뿌듯하신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돈과 물질로 주고받는 세상에서 정성과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것은 속 깊은 행동이다.
오늘 성탄 예배를 마치고 나서 나의 카메라로 성도들을 촬영하기로 했다. 나 역시 나의 달란트로
교인들의 오늘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사진을 꺼리시는 어른들도 오늘이 본인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젊은 날의 기록이고, 더 고량인 분들은 어쩜 이 모습이 영정사진을 대체할 수도 있기에 진지함과 밝은 미소가 교차한다.
강력한 자본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사회에서 돈을 거슬러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따스한 나눔이다.
왼손을 들어 다시 손목시계를 바라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