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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연기와 흰 연기 사이, 당신의 선택은?

영화 <콘클라베>

by 인문학 도슨트

영화 인문학 강사 한명훈의 <영화 속 인문학 읽기>에서는 단순한 서사를 넘어, 영화가 담고 있는 철학적·인문학적 의미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영화 <콘클라베>를 통해 신념과 다양성의 문제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신념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믿는 바가 어떻게 타인의 신념과 충돌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검은 연기와 흰 연기 사이에서: 콘클라베의 의미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 회의로, 봉인된 공간에서 전 세계 가톨릭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선출의 과정이 아닌, 인간이 지닌 신념과 권력,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을 탐구합니다. 이 영화는 교황이 서거한 후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모인 추기경들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신념과 욕망이 충돌하는 모습을 담아냅니다.


로렌스 추기경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 의식의 한가운데에서,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기존의 교회 질서와 자신이 믿는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며, 점차 교회의 정치적 구조를 넘어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연기, 그 너머의 이야기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전 세계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합니다. 검은 연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음을, 흰 연기는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립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신비로운 의식은 가톨릭 세계의 중심을 결정하는 순간인 동시에, 인간 내면의 복잡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콘클라베』는 바로 이 무대 뒤에 숨겨진 인간의 이야기를 놀라운 깊이로 들려줍니다.


로마의 심장부에서 펼쳐지는 이 고대의 의식은 단순한 종교적 절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과 권력, 개인의 양심과 조직의 논리, 전통과 혁신이 충돌하는 장소입니다.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 비밀스러운 모임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측면과 가장 세속적인 측면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단순히 교황 선출이라는 특별한 의식에 매료되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장엄한 예식, 바티칸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곱씹을수록 그 안에 담긴 깊은 질문들이 자꾸만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권력의 달콤한 유혹 앞에서도 우리의 양심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직의 논리와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영화는 종교적 배경을 통해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로렌스 추기경, 우리 모두의 내면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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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추기경의 여정은 마치 우리 모두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 같았습니다. 그는 교회의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인물입니다. 신학적 지식과 현실적 감각을 겸비한 그는 교회 내에서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의 중간자적 위치에 서 있습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콘클라베에서 그는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경험합니다.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처럼요.


로렌스는 처음에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었죠. 하지만 콘클라베가 진행될수록, 그는 자신의 확신이 흔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추기경들과의 대화, 예상치 못한 사건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는 그를 점점 더 복잡한 영적 여정으로 이끕니다.


영화의 백미는 로렌스 추기경의 즉흥 강론입니다. 로렌스가 다른 추기경들 앞에 서서 꺼낸 말들은 단순한 종교적 강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정직한 대화였고, 청중을 향한 진심 어린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신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권력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기도는 진실한 것입니까, 아니면 형식적인 의무에 불과합니까?" 이 질문들은 화려한 성당 안에 모인 모든 이들의 마음을 꿰뚫었고,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로렌스의 강론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신앙인처럼 행동하는 대신, 자신의 취약함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솔직함이 바로 그의 메시지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우리 역시 매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행동과 결정은 진정한 가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인정과 성공을 위한 것인지.


폐쇄된 공간이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

콘클라베의 폐쇄된 공간은 흥미롭게도 인간 본성의 모든 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시스티나 성당은 마치 실험실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곳에서는 추기경들의 진짜 모습, 그들의 신앙과 욕망, 이상과 약점이 모두 드러납니다. 신성한 의식이라 불리지만, 그 안에서는 권모술수와 정치적 계산이 벌어집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의 이름을 빌리고, 또 어떤 이들은 진정한 신앙으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요.


성당의 웅장한 천장화와 프레스코 그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추기경들은 작은 종이에 자신의 선택을 적어 넣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계산과 협상이 이루어집니다. 누군가는 보수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교회의 개혁을 위해,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이 과정에서 로렌스가 점차 깨달아가는 것은 교회라는 거대한 조직이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품고 있는지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지만, 다른 추기경들과의 대화를 통해 신앙의 다양한 형태를 마주하게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추기경의 생생한 현장 경험, 남미 출신 추기경의 해방신학적 관점, 보수적인 유럽 추기경의 전통 수호 의지... 한 사람이 신을 만나는 방식은 무한히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은 종종 이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하나의 목소리만을 강요합니다.


영화는 이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정치적 역학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추기경들 사이의 미묘한 눈빛 교환, 복도에서 이루어지는 속삭임, 식사 시간의 의미심장한 침묵... 이 모든 것들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복잡한 층위를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경건한 목자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각자의 욕망과 두려움, 확신과 의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틀을 깨는 용기, 다양성을 품는 선택

영화 속에서 로렌스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합니다. 그는 기존의 틀을 깨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교회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 도전하는 이 결정은 그에게 큰 내적 갈등을 가져옵니다. 그것은 안전한 자신의 위치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믿는 진리를 위해 이 위험을 감수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안전한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나요? 익숙한 생각의 울타리를 넘어설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조직의 규칙과 관행이 우리의 양심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로렌스가 직면한 딜레마는 우리 모두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전통과 혁신, 안정과 변화, 조직의 요구와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매일 이런 갈등을 경험합니다.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안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받은 순간은 로렌스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완벽한 성인이 아닙니다. 의심하고, 실수하고, 때로는 유혹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순간, 그는 역설적으로 더 강해집니다. 자신의 약점을 알기에 오히려 더 단단한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솔직함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로렌스의 여정은 완벽함이 아닌 진실함이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의심과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그것과 함께 나아갑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려 하고, 약점을 감추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과 연결은 우리의 취약함을 인정할 때 시작됩니다.


검은 연기와 흰 연기 사이, 당신의 선택은?

『콘클라베』는 결국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검은 연기와 흰 연기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일상에서 늘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들을 마주합니다. 그 순간마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포기하기도 합니다. 로렌스 추기경처럼 우리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속에서 진정한 신념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콘클라베』는 바로 그 여정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함께 보여줍니다. 오늘 밤,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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