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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Dec 24. 2020

비로소 수익으로 전환된 계좌를 바라보며

월급과 저축만으로는 더 좋은 집으로 이동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올봄에 느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서울 아파트값은 한없이 치솟았고 코로나 19의 공포를 이겨낸 투자자들에 의해 우리 증시는 반등을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부동산과 주식이 모두 오르는 상황에서 내가 가진 현금은 그 가치를 점점 상실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기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당장 가지고 있는 여유자금으로는 부동산 투자를 할 수준이 아니었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주식투자로 이어졌다.






결혼 전 아내에게 주식투자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서울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전까지 주식투자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부동산 기사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화면에 표시되는 숫자들은 내가 매달 저축하는 금액과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어설프게 하고 있던 부동산 공부를 중단하고 고민했다. 약간의 관심으로 눈팅만 하던 주식 블로거들의 글을 조금씩 진지하게 읽어나갔다. 주식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다.


농담 식으로 얘기하던 그 전과 달리 아내에게 진지하게 고백했다. 약속을 어겨서 미안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 증시가 반등하고 있는 상황이니 소액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하면 어떻겠냐고.


아내가 한 번에 허락해준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다. 우리 부부가 어렵게 아껴가며 모은 돈을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주식 투자에 사용하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내는 분명 약속을 어긴 내게 실망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준비 없이 막연하게 말을 꺼낸 나의 진정성을 의심했을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내의 허락을 얻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였다. 막연하고 막막하게 흩어진 정보들을 수집하고 조사하며 생각했다. 왜 사람들이 주식투자로 돈을 잃는지.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투자하려는 돈은 여유자금이라는 이름의 우리의 생명줄과도 같은 돈이었다. 잃고 싶지 않았다. 잃을 수가 없었다. 간절하게 조사하고 공부했다.


아내에게 보수적인 배당금 투자를 얘기했다. 아내는 종목을 매수하기 전 자신과 협의하는 조건으로 마침내 주식투자를 허락해주었다. 사실 아내의 허락을 받아서 기뻤던 마음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주식투자는 시작되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 보수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배당주를 꾸준히 모았다. 치솟는 증시에 반응하지 않는 보유기업의 주가를 보며 다른 의미로 멘탈이 흔들렸다. 조금 더 공격적인 투자를 위해 아내와 상의하여 대형주를 매수했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내가 매수한 기업의 주가는 이유도 모른 채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눈물을 목으로 삼키며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나를 보듬어준 아내에게 나는 아직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지금의 평정심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이날 아내의 위로 때문이다.


이날 이후였을 것이다. 멘탈을 다잡고 이전보다 더욱 절실하게 공부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투자 관련 서적을 읽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산업 리포트와 기업 리포트를 분석했다. 주가의 하락과 상승의 원인을 나름대로 찾아보고 고민했다. 무엇보다 흔들리는 주가에 연연하지 않고 담대하게 내가 조사하고 공부한 기업의 주식을 매수했다.


그렇게 6개월이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우리 부부의 투자 계좌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직 보유하고 있는 모든 기업의 주가가 수익으로 전환된 건 아니다. 올해 한국 증시는 코로나 19 사태 이후의 반등이 강해, 좋은 기업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몇십 퍼센트에서 많게는 몇 배의 수익을 얻었다고 들었다. 그에 반해 내 계좌 수익률은 1%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성적이다.


그래도 나는 전혀 아쉽지 않다.


힘겹게 첫걸음을 내디딘 주식 투자 원년에 나는 수익보다 값진 올바른 원칙을 얻었다. 2020년은 내게 처음 시작한 주식투자로 수익을 얻은 해가 아닌,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귀중한 투자 원칙을 깨달은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실제로 만나 뵌 적은 없지만, 항상 좋은 글을 포스팅하는 이웃 블로거분들과 올바른 투자원칙을 알려준 위대한 스승 '피터 린치', '워런 버핏', '필립 피셔' 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또 하나의 나로 부르고 싶은 내 모든 것. 투자를 시작할 수 있게 허락해 주고 용기를 북돋게 해 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소소한 수익을 바치며 잃지 않는 투자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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