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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Oct 28. 2021

아버지는 말하셨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아라

아버지께 듣기 싫었던 말이 두 가지 있었다.


1. 억울하면 출세해라.

2.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아라.


왜 저런 말을 할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얘기 좀 하지 마시라고 아버지께 짜증내고 화내며 싸워도 봤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이유는 절대 얘기하지 않으셨다. 종종 있는 아버지와 나의 대화는 "아, 억울하면 출세하라니까."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니까."로 귀결되었다.


취업을 하고 결혼도 하고 현재는 육아를 하면서 아버지의 저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자라왔던 과정, 살아오며 겪었던 일들을 넌지시 생각해봤다. 아버지는 그 나름대로 내게 인생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제발 아들이 깨우쳤으면 하는 마음으로 투박하고 세상 제일 멋없게 전달하셨던 것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집에서 육아를 할 때도 항상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선택은 정말 어렵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오죽했으면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라고 했을까. 선택은 때로는 고통을 수반한다. 잘못된 선택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우리를 죽음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것이 선택이다.


내가 선택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늘 말씀하셨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아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발끈했다. 정말 어려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왜 저런 말을 하실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정말 중대한 고민을 할 때 단 한 번도 저 말을 하신 적이 없었다. 대학교를 고민할 때도, 취업을 고민할 때도, 집을 고민할 때도, 사랑스러운 손주의 이름의 고민할 때도.. 진중한 고민에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하게 아들을 지지하고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한편으로 사소한 저녁 메뉴, 사사로운 취미생활에서의 선택을 고민하는 내 모습이 아버지께는 어떻게 보였을까 생각해본다. 매 순간 치열하고 힘겹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눈에는 고작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점점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그런 고민들이 정말 사소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다. 의미 있는 고민에 중요한 선택을 해도 다음 고민이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고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다. 아버지께서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당신의 아들이 부디 사사로운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의미 있는 고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바랐던 것은 아닐까?


내게는 세상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아버지지만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가며 아버지를 그렇게 이해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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