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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Apr 24. 2022

나를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무조건적 긍정이 과연 유익할까



자기 합리화와 자기인정에 관해서 



여우와 신 포도. 여우가 높이 있는 포도를 따 먹지 못하자,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라고 말한다. 즉, 자기 능력으로 가닿지 못한 포도의 맛을 인지를 조작하여 맛없는 포도로 둔갑시키는 일이다. 그 포도가 엄청나게 달콤한 포도더라도, 내 세상 안에서는 엄청나게 신 포도가 되는 것. 요즘 말로 하면 정신 승리라고나 할까.



자신이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채는 것을 자기 인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내가 못하는 일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것이라면, 자기 합리화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더 도전하지 못하고 안주하면 합리화이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적당한 삶의 방향을 걷는다고 하면 자기인정일까.



자기 합리화는 바깥쪽을 내 식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포도의 맛을 자기 식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자기 합리화이다. 내 기준에 바깥쪽을 맞추어 버리는 것은 거짓을 함의하게 된다. 나 좋자고 세상을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만약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다면, "어차피 잘 됐어, 저 회사는 별로였을 거야."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인지적 왜곡이 두드러지지만, 잠깐은 마음에 평안을 준다.



자기인정은 안쪽을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바깥은 상관없이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왜 그랬는지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다. 판단의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좋은 쪽으로 혹은 나쁜 쪽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점은 나를 혼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인정이 필요한 이유



삶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과 결과에 대해 판단을 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건 잘 했구나.. 실수를 통해 배우고 실수를 덜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긍정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게 될까'라는 의문에 '잘 될 거야'라고 포장을 하기도 한다.



나를 돌아 보건대, 자기판단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스스로 꾸짖는 편에 가까웠다.



자기를 인정하는 것은 ‘그렇구나, 그랬구나.’로 바라보면서 뭔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런 모습이구나, 그런데 그렇지 않으려면 내가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렇게 말이다. 굳이 긍정성을 발견할 필요는 없다. 부정적인 결과가 예측되는 일에 대해서도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그동안의 경험 상) 잘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네. 그런데 잘 되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좀더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이런 태도이다. 그러므로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생각과 감정도 인정하고, 그럼에도 잘 되고 싶은 나의 마음도 인정하는 것이다.




덮어놓고 '긍정' 외쳐봐야 



긍정의 마약에 도취되었다면 이렇게 생각했겠지. '잘 안 된다는 생각을 왜해?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해.' 이렇게 잘 될 거야, 좋을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이건 나를 속일 뿐이다. 불쾌한 감정에 대해서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긍정을 꽃피우기 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나쁘네, 내 감정을 알아채주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내 감정이 나빠진 이유가 있을 것이고,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 이유나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일은 긍정이라는 안경으로 나를 몰아부치지 않게 된다. 좋게 생각하자는 게 나를 힘겹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판단은 멈추고 그대로의 나를 알아채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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