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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May 21. 2024

시간은 있었지만 여유는 없었다

나기와 마이클 싱어랑 보내는 여름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일본드라마 <나기의 휴식>의 주인공 나기. 모두 버려버리고 어깨에 두른 짐과 자전거뿐.




퇴사를 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건강검진으로 평일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눈 앞에 다가온 여름 기운의 한낮, 나간 김에 뭐라도 하고 싶어서 가던 길을 돌아서다 다시 가며 우물쭈물 댔던 오늘. 도서관이라도 들리자는 내 마음은, 결국 두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도서관에 이르지 못하고 동네 정거장으로 결정을 본다. 날씨도 좋았고, 어느 정도 체력도 되었는데, 어느 것 하나도 하지 못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창으로 들어온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생각마저 놓치고 살아올 정도였나 "시간은 있었지만, 여유는 없었구나!"라는 말이 번뜩 떠올랐다. 퇴근 후에 나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그 따듯함과 포근함이 유일한 위안인양 살았다. 한낮의 밥벌이를 위해 힘쓴 시간이 지나고 저녁부터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기어들어갔다. 그것이 유익한지 유익하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게 유일한 행동이었다. 퇴근 행동강령 1조 뭐 그런 것.



작년,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에 오일파스텔로 그림 그리는 클래스를 수강했다. 그때 나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걸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곳에 그림을 그리러 온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조용히 그림과 나, 내 그림을 조정해줄 선생님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체력이나 여유는 많이 없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퇴근 후를 알차게 쓰기 위해 노력했던 그때는, 지금보다는 여유가 있었나 보다.



그동안 나는 차곡차곡 엉망이 되었고, 여유를 차릴 점잔도 남아있지 못했다. 억지로 짜낸 "아, 날씨 좋네!"라는 말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이야"라는 말로 삶을 긍정하려고 했지만, 그 외에는 무척이나 예민해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불 속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마음은 허덕이고 불편했다.



요즘 마이클 싱어의 책이 내 곁에 함께 하고 있다. 그의 철학에 따라, 모든 것을 내맡긴 채로 살기로, 겸허한 자세로 있기로, 바다 위를 둥둥 떠 가듯 살겠노라고 다짐을 여러 번 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쉽지 않았다(마이클 싱어는 꾸준히 명상하며 얻은 깨달음이니, 내가 그 경지에 닿으려면 명상 시늉이라고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창 밖으로 들어온 바람에, 알게 되었다.

복잡하게 얽힌 지금의 상태를 내가 자초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마이클 싱어가 벌어진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한 이유는, 작은 존재인 우리가 의지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처럼, 계절이 바뀌고 새싹이 움터 꽃피는 것처럼 그저 따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 따르겠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내 의지대로 선택을 해야하는 건가, 아니면 지금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살아야 하는가 모호했다.



다만, 지금은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흘러가고 있는 것 뿐이다.

퇴사가 답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후에 이 결정이 아쉬움이나 후회로 남을 지도 모른다. 더 차디찬 곳에서 지금이 따듯했노라고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비틀거리고 있다. 좀 앉혀야 하지 않을까란 뭐 그런 것.



시간 안에 여유를 찾으며 살기로 했다, 잠시.

<나기의 휴식>의 나기처럼,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일본드라마 <나기의 휴식>에서 주인공 '나기'는, 회사에서 과호흡을 일으켜 쓰러진다. 남자친구와 회사동료들 눈치 보며 쌓아둔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꼭 필요한 짐 외에 다 버려버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보내는 나기. 나기는 나와 달리, 28살로 아주 어리지만, 나기를 보면서 힘을 얻어보고 싶다.   


** 마이클 싱어는 숲 속에서 은둔하며 삶을 내맡긴 채로 살았던 인물로, 그렇게 했더니 변화된 자신의 삶을 통해 지금이 쉽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메세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책 <될 일은 된다> <상처받지 않은 영혼>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등에는 내맡긴 채 살았더니 어떤 결과를 나왔는지 자세히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그가 얻은 깨달음이나 우리가 실천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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