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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제이 Nov 05. 2023

암환자의 딸이 되었습니다.

- 어느 봄날의 전화 


 제법 괜찮은 따뜻한 봄날이었다. 엄마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몹쓸 역병으로 연기된 개강 때문에 비대면수업을 하느라 고생했던 때를 생각하면 이 봄은 참말로 괜찮은 봄이었다. 학과별로 진행한 입학식도 성공적이었고, 마의 3주라는 학년 초의 힘든 기간도 부드럽게 넘겼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출발이 좋다. 쭉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오래간만에 평온하고 다정한 느낌. 하필 그런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암이란다.....”  

 엄마는 침착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가셨다. 

 2월 말에 응급실도 가셨었단다. 긴급수혈을 받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조직검사 결과 암이라는 소견이 나왔단다. 정밀검사를 더 해야 한다지만 암이 맞단다. 몇 기였는지 알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단다.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냐고 소리를 질렀다. 

 “너 바쁜 거 아니까... 신경 쓸까 봐...”라는 엄마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랬었다. 남들은 방학이 두 달이나 되니 정말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 나는 매년 1, 2월은 매일 출근은 안 하지만 학생 모집 스트레스와 각종 보고서작성으로 정신이 없었고, 3월은 입학식 이후부터 수업, 학생상담에 학생 이탈 방지 등에 바쁘다는 것을 친정 부모님은 알고 있으셨다.




 

 아빠는 평소에 감기도 잘 안 걸리시던 건강체질이셨다. 그렇지만 가끔 아주 가끔 감기에 걸리시면 정말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살이 심하셨다. 이건 나도, 친정엄마도 인정한 아빠만의 어리광이라고 생각하고 아빠가 그러실 때마다 아빠는 엄 씨라서 엄살이 심해라고 웃고 넘겼었다. 

 집합금지, 5인 이상 모임 자제 등으로 오랜만에 친정집에 갔었을 때, 아빠의 안색이 별로 안 좋으셨다. 아빠는 온몸이 아프다고 뼈마디가 아프다고 얘기를 하셨었다. 그래서 정형외과에 가서 골다공증 검사를 하셨는데 의사가 뼈가 좀 약해졌다고 골다공증 약을 처방해 줘서 얼마간 드셨는데 효과가 없다고 하셨다. 

 그때도 엄마는 “너희 아빠는 엄살이 너무 심해”라고 하셔서 나도 크게 신경을 안 썼었다.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빠의 암이 착한 암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암은 수술이나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는 암이라고 한다. 아빠의 고향 후배도 같은 암으로 수술받고 건강하시단다. 부모님은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기간 동안 이리저리 많이 알아보셨었던 것이다. 

 아빠는 괜찮다고 치료받으면 낫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음 주에 검사 결과 들으러 갈 때는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부모님은 괜찮으니 두 분이 가신다고 한다. 동생이 오기로 했다고 걱정 말고 ㅇㅇ이나 잘 챙기라고 하셨다. 

 그랬다. 난 친정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육아가 불가능한 워킹맘이었다. 





 부모님은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매일 병원으로 아기를 보러 오실 정도로 첫 외손자를 이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다. 산후조리원에도 매일 오셨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날부터 엄마는 매일 우리 집으로 출퇴근을 하셨다. 어떤 날은 주말에도 보고 싶다고 보러 오셨었다. 

 그런데 2020년 초, COVID-19가 우리가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남편과 나는 6개월 이상 재택근무를 했고, 부모님과의 만남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특히 건강한 편이셨던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언론에서 말하던 고위험군이셨다. 혹시라도 감염이 될까 봐 서로 조심하며 지냈었다. 

 결혼을 하고도 10년을 매일 보던 우리가 한 달에 한두 번 겨우 잠깐 얼굴만 보는 사이가 되었고,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는 조금씩 병 드신신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합금지니 뭐니 해도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손 잡아주고 안아줄걸...

제발 검사 결과가 암이 아니길, 만약 암이라면 제발 초기이길, 제발 제발... 





그렇지만 나의 바람에도,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암이 맞았다. 

이미 골수까지 전이된 상태라고 했다. 




전립선암 4기.

이것이 나의 아버지의 진단명이다. 

그렇게 나는 암환자의 딸이 되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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