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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5. 2023

칠순의 어머니, 비로소 '자유'를 얻다

- <고독의 맛>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두보 시의 문구이다. 70을 사는 게 드물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70이야 예전 '환갑' 정도의 '범사'가 되었다. 타이완의 '린' 여사(진숙방 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이 그녀의 고희연, 하지만 식당을 운영 중인 그녀는 막내 딸에게 식당을 일임했다지만 여전히 아침 일찍 수산 시장에 들러 오늘 쓸 재료들을 구입하는 등 분주하다. 

2017년 만든 동명의 단편영화를 2020년 장편으로 만든 <고독의 맛>은 조셉 수 감독의 데뷔작이다. 2020년 대만 최고의 흥행작이자, 대만 대표적 영화제인 금마장 영화제에서 주인공 린 여사를 연기한 진숙방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고희연 날 죽은 남편 
고희를 맞이한 린 여사, 고달펐던 그녀의 인생의 고비를 모두 잘 넘기고 오늘 고희연에서 모두의 축하만 받으면 될 일이다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맘대로 되는가, 하필 그녀의 고희연인 그날 남편이 죽었다. 

속된 말로 참 안받쳐준다고 해야 할까? 평생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존재'이더니 죽는 날까지 하필 그녀의 '고희'연이다 싶다. 

첫 째 딸 완칭에게 린 여사는 말끝마다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결혼을 했지만 이혼 서류를 내던진 채 무용가로써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그녀가 린 여사에게는 그대로 남편의 모습이다.

완칭처럼 남편도 새우 튀김 장사를 하는 그녀에게 찾아와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타이완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며. 병원을 하는 잘 사는 집안의 딸인 그녀와 결혼한 남편은 경찰 일도 그만두고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잘 돼지 않았다. 아내인 린은 노점에서 새우 튀김을 만들어 팔며 남편의 사업 자금을 댔고 아이들을 키웠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그녀의 '정성'은 아랑곳없이 바람을 피웠다. 그리고 결국 이혼 서류를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랬던 남편이 이제 린 여사가 고희가 되어서야 린 여사가 사는 타이완으로 와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물론 남편에게는 오랫동안 함께 한 여자 메이린이 있지만 남편이 남긴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았기에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린 여사가 '부인'이다. 

린 여사 연배의 우리 주변 어르신들은 어떤가?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지나온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홧병(火病)이 국제적인 학술지에 공식적인 '심리'적 증후군으로 인정되었듯이 우리 어머니 세대에게는 살아오며 가슴에 맺힌 '사연'들이 너무도 많다. 고생에 고생을 하며 살아오신 인생, <고독의 맛>에 린 여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분들의 특징이 고생을 하신 만큼, 그 고생을 하게 만든 '대상'에 대한 원망 역시 깊다. 린 여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혼 서류를 던지다시피 딴 여자와 자신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이 깊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닮은 듯 '부박'한 인생을 하는 듯 보이는 맏딸도 한심하다. 자신 몰래 아버지와 연락을 해오는 듯한 막내 딸 역시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세 딸을 여보란듯이 잘 키워내고, 식당도 번창시킨 린 여사이지만 그녀 미간의 주름만큼 그녀에게 현실은 어쩐지 마땅찮은 것들 투성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그녀가 사는 곳에 와서 죽었다. 살아서도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 죽어서 까지 말썽이다. 

결국 장례식의 절차는 공식적인 아내인 린 여사의 '주도'? '고집'?아래 진행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남편의 의향과 달리, 장례식장을 잡아서 치루려는 린 여사의 장례 일정은 여의치 않다. 

 

 

영화는 린 여사의 고희연 날에서 부터 남편의 장례식까지의 며칠 동안 벌어진 해프닝을 다룬다. 몇 십 년 전에 바람이 나서 떠나버린 남편, 그런 남편 대신 가장으로 살아온 아내, 하지만 그녀는 고희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혼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바람난 남편을 찾아 아이 둘을 데리고 식칼을 들고 여관방을 두르렸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못마땅해 하면서도 자기 고집대로 장례 일정을 치루려고 한다. 이른바 '조강지처'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여전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아내'로서의 당당함이 정작 그녀가 키운 아이들과 부딪친다. 아빠가 떠날 당시 유치원생이던 막내 딸 자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주었듯 오랫동안 아버지와 연락을 해왔던 처지이다. 아버지가 함께 살던 '메이린'을 아줌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린 여사가 그녀가 믿는 '도교' 방식대로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데 대해 아버지가 '불교'를 믿었다며 반발한다. 

늘 아빠를 닮았다며 그 '바람'같은 성정을 못마땅해 하는 딸은 장례식장을 지키지 않고 떠돈다. 그녀를 닮아 야무지게 공부를 해내 의사가 된 둘째 딸은 자기 자식 걱정이 더 앞선다. 남편 없이도 의연하게 자식들 키우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그 '자부'심이 정작 남편의 장례 앞에서 '무력'해진다. 

 

  

가족, 그 동상이몽 속 '고독'
<고독의 맛> 속 린 여사의 모습은 우리네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이다. 의지할 바 못되는 남편, 그럼에도 '가정'을 자신의 힘으로 버티고 견뎌온 '어머니', 하지만 그 '어머니'의 자부심이 정작 남편의 죽음 앞에서 '의문'이 제기되어진다. 

영화 속 린 여사는 딸 들 앞에서 말한다. 평생을 너희를 키워왔는데 정작 너희는 죽은 아버지의 편이구나. 그들을 애써 키워온 어머니보다, 딸들이 마치 그녀들을 돌보지도 않았던 아버지와 더 '애착'을 가지는 것 같아 서운한 것이다. 

그런데 린여사의 서운함은 누군가의 편의 문제가 아니다. 죽은 아버지 앞에서 세 딸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암이 재발한 큰 딸, 고생하는 어머니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한 마디 못한 채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었지만 만족하지 못한 채 딸의 유학에 매달리는 둘째 딸, 어머니의 식당을 물려받았다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영향력이 큰 식당에서 자리잡지 못한채, 아버지와, 그리고 아버지의 여인이 메이린과 감정적 유대를 느끼는 막내 딸은 각자 자기 앞의 삶이 버겁다. 장례식을 매개로 벌어지는 린 여사와 딸들의 갈등은 동상이몽의 가족, 그 자체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저 마다 삶의 과제에 몰두해 있는.

영화의 제목 '고독의 맛'은 고희연에서 린 여사가 부르려고 했던 노래 제목이다. 고희를 멋들어지게 맞이한 '축하연'의 노래로 선택되었지만 정작 린 여사는 그 노래를 본래의 가사로 부르지 않는다. 동시에 노래 제목인 '고독의 맛'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저마다 봉착한 삶의 과제로 인한 '인생의 쓴맛'을 의미하기도 한다. 124분의 런닝 타임 동안 영화는 70의 어머니에서 부터 세 딸들 저마다가 느끼는 '고독'이 페이소스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마도 이 영화가 대만에서 흥행을 한 이유는 70대의 어머니에서부터 젊은 딸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린 여사의 서운함은 딸들에게 향하지만 결국은 그녀가 '남편'과 해결하지 못한, 아니 보다 본질적으로는 그녀가 70 평생 해결하지 못한 삶의 숙제로 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녀 딸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빌어 서로에게 섭섭해하고 서운해 하지만, 그건 결국 각자 삶의 '과제'로 부터 비롯된 딜레마이다. '가족'은 공동체이지만 그 공동체는 개개인의 삶으로 채워진다. 영화는 가족 영화이지만 영화의 서사는 올곧이 '가족' 속 개인이 마주한 삶의 화두에 천착한다. 가족이지만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기에 '고독의 맛'이다. 

 '가족'을 매개로 서로에게 빚어지던 갈등은 저마다 개인이 마주한 삶의 '과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 할 때  실마리가 제공된다. 뒤늦게 찾아온 남편의 장례식에서 딸들에게 섭섭해하던 어머니는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허울뿐인 '조강지처'의 자리를 내려놓고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어머니가 자유로워짐으로써 그녀를 서운하게 만들었던 가족을 딜레마로 묶였던 끈이 풀어진다.  '고독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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