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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Jan 11. 2024

60평생 '절친'이었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옛날에 내가 읽던 책>

해가 바뀌면 어느덧 환갑(還甲)이 된다. 매해 갑을병정 등의 십간(十干)과 자축인묘 등의 열 두 띠로 그 해를 표시하는데, 그 10과 12의 공배수인 60, 즉 내가 태어나던 해가 6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예전에야 환갑 잔치도 하고 그랬지만, 요즘은 60이 됐다해도 지하철 경로석에 앉을 깜냥도 안 되는 시절이 돼버렸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100세 시대에 60은 'middle age' 축에 속하게 되었다. 그래도 60은 60인 것이다. 인생의 사이클을 한 바퀴 돌았다고 '인증'을 받게 되는 환갑 즈음에, 지나온 인생의 한 사이클을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 도서관 ⓒ 시공사


 


그림책을 매개로 글을 쓸 때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으로 나의 이야기를 푼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간서치(看書癡; 지나치게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거나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중)였던 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책을 보다 길을 잘못든 곳에 머물며, 그곳 도서관에서 일을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도 모자라 집을 온통 책 천지로 만든 그녀는 어느날 더는 집에 책을 들일 수 없게 되자, 가진 책 모두와 집마저 도서관에 기부하고, 도서관 다니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나머지 여생을 보낸다. 



말인즉 간서치라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흔들림없이 집중할 수 있었던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집을 줄여 이사를 하느라 가지고 있던 책을 거의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조차 읽지 않는 <도서관>을 챙겼던 것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뒤늦게 그림책 리뷰를 쓰면서 비로소 나란 사람에게 '책'이 가진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내 삶의 안전기지, 책 



이른바 '안전기지(애착 이론에서 만들어진 단어로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의미)'라고 나는 정의내렸다. 살아오며 이렇다 하게 누군가가 나의 안전기지가 되어주지 못한 시간에, <도서관> 속 그 소녀만큼은 아니지만, 책에 의탁해 살아오지 않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6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그토록 연연했던 인연들은 색이 바랜 채 저만치 스쳐지나가는 반면, 새록새록 그 시절 내가 봤던 책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런 대상이 음악일 수도 있을 테고, 영화일 수도 있겠다. 혹은 사람이거나 어떤 물건일 수도 있겠지. 단지 나에게는 책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동년배들에 비해 운좋게도 문자 환경의 혜택을 받고 살아왔던 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친척 집에 의탁해 살았지만, 부모님과 살던 때도, 친척 집에서 살던 때도 그곳에 책이 있었다.



심지어 나를 맡아주시던 이모님이 문방구를 하셨는데, 당시 문방구에서는 새소년문고라고 원통형 서가에 요즘 만화책 정도 사이즈의 책들을 팔았었다. 문방구를 본다는 핑계로 그 원통형 서가를 돌리며 여유롭게 책을 빼읽었었다. 



심지어 믿어보려 갔던 성당에도 도서관이 있어 책을 빌려보기도 했다. 책이 나를 따른 것인지, 내가 책을 따라간 것인지, 알쏭달쏭하지만 돌아보면 늘 어느 곳을 가던지 책이 있었다. 



안전기지라고 했던 책이기에 책을 통해 얻은 '말씀'에 꽤나 순수하게 내 마음을 열었다. 그랬기에 대학에 들어와 읽은 샤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불법' 도서에 연연해 하며, 그걸 읽었다는 선배들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였을 것이다. 



마치 알에서 처음 깨어난 새가 자신 앞의 대상을 어미라고 여기며 따르듯, 청년기에 들어선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가 받은 '사상의 세례'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삶의 지침이 되었다. 오랜만에 선배들을 만나면 희끗희끗해진 머리와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이 무색하게 80년대의 공간으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풍경이 여전히 되풀이될 정도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시간, 이제는 내가 읽는 걸 넘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한 권이라도 더 책을 읽힐까, 더 책을 좋아하게 만들까 하는 고민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더해 마흔 줄부터는 '독서 논술' 강사를 했으니 참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 싶다.



하지만 시절이 변해갔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며 더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그 예전 가장 고상한 취미였던 '독서'가, 이제는 당당하게 '책을 안 봐요'라고 말하는 시대로 돌변한 것이다. 아니 책조차도 유투브 요약본으로 보는 시대가 되었다. 군부대 독서 고칭의 목표가 '독후 학습'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은 병사들을 대상으로 허용된 시간 안에 책을 소화시켜주는 것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책을 본다. 아이들이 자라고 닥쳐온 빈둥지 증후군의 실마리도 책에서 찾았고, 나이듦의 지혜 역시 책에 의탁하는 처지이다. 그러니 60 평생 한결 같았던 절친을 들라면 책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 '절친'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찾아보니 자료조차 남지 않는 책들도 많다. 정작 남의 나라 책의 역사는 공부하는데, 우리가 봤던 책에는 인색한 세상이다. 그래도 나의 이야기인양, 내가 살아온 시절의 이야기인양, 그리고 우리 세대가 살아왔던 시절의 이야기인 양 '옛날에 내가 읽던 책'을 펼쳐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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