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이비 글라스 Jun 20. 2020

힘내자 동생아!

일상 속 감상

나의 동생이 법대를 졸업하던 날 온 가족이 웃으면서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우리 집 피아노 위에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올라와 있다. 


나는 한 살 아래에 남동생이 있다. 그는 나의 유일한 동생이다. 나와는 한 살 차이고,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남자라 어릴 때부터 듬직했고, 동생이지만 의지가 되었었다. 지금은 동생이 결혼을 해서 예쁜 아내가 있고, 내게는 귀여운 조카인 남자아이 한 명과 여자아이 한 명이 있다. 나와는 달리 20대의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한 동생이 어떤 때는 더 어른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는 결혼 전에 다니던 재무 회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결혼 이후 아내는 임신을 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회사에서 영업팀에 일하던 동생도 나중에 회사의 재정문제로 그만두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 동생은 재무 회사 영업팀에서 1년에 9천만 원씩 벌었던 적도 있었다. 당시 그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던 중일 때라 바쁘게 살았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나오게 된 이후 그는 보험회사를 전전하다가 외벌이로는 도저히 아이 2명을 키우기에 돈이 부족하다며 몇 달씩 조선소에 들어가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하기도 했고, 월급이 일반 사무직보다는 많을 거라며 지방의 대형병원에서 야간 경비직을 하며 병원에서 화재사고가 날 뻔했는데 그것을 막다가 몸이 상하기도 했었다. 그 이후로도 대리운전을 하면서 고객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내게 전화를 해서 밝게 웃으면서 

“우리 아가들 예쁘지 누나? 나는 얘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말하곤 한다. 


최근 몇 년간 동생은 법원 경매회사에서 영업을 하다가 최근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으로 갔고, 인원 감축으로 이어졌다. 

“누나, 나 택배기사로 일하게 됐어.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서 많은 직종들이 잘 안 되고 있어서 못하는데 다행히 택배 쪽 일을 겨우 하나 구했어. 거기서 택배 화물차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서 타야 한대서 타면서 5년간 일하면서 갚기로 하고 그 차로 물건을 싣고 다녀.” 


그에게는 집 월세비와 아기들에 들어가는 비용, 4인 가족 생활비, 할부로 구입한 택배 화물차 때문에 매달 들어갈 돈이 많았다. 하지만 당장 월급이 나올 곳이 없었다. 대기업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택배일이었지만 대기업은 개인 화물업체에 관리를 맡겼고, 그 업체에서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량 구입을 직원 개인에게 부담시켰고, 그래서 그것은 돈이 없는 급한 상황에서 고스란히 직원들 각자의 빚으로 남아있다. 그런 데다가 월급은 일한 지 2달 후부터 나온다고 해서 당장 필요한 생활비를 아내에게 가져다줄 수가 없는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서 그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 2달 동안 택배일 이외에 다른 일까지 해서 당장 들어가는 화물차의 기름값과 아기들 키우는 생활비, 집 월세를 충당해야 했기에 업무 이외의 시간은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느라 잠잘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서 하루에 2시간을 자는 것도 빠듯했다. 


그는 택배일을 추가로 2회를 일하면 기본 월급에서 40만 원을 추가로 더 받을 수 있다는 회사의 말에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1회 차,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2회 차 업무를 했다. 그러고 나서 오후 내내 대리기사 일을 닥치는 대로 맡아서 고객들에게 달려갔다. 어떤 때는 탁송이라고 해서 고객의 집이나 직장까지 빈 차를 몰아다 주는 일도 했다. 그 일은 대부분 탁송 어플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수수료를 반 이상 가져가서 막상 일을 한 건수가 많아도 본인에게는 적은 돈만 가져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오후 내내 일을 하고 저녁에 집에 잠깐 들어가 쪽잠으로 겨우 1~2시간 정도 눈만 붙였다가 다시 밤 11시에 또 일하러 나가는 일정으로 생활했다. 밥은 나가 있을 때는 거의 바빠서 못 먹고 집에서 일터로 출발하기 전에 한 끼를 급하게 먹고 다시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서 그렇게 예뻐하는 사랑스러운 아기들 얼굴도 거의 못 보는 날이 많다. 어떤 날은 오전 시간에 내게 연락이 와서 받아보면

“누나, 잘 지내지? 나 지금 2회 차 배달 가는 중인데 오늘 맡은 건수를 고객들이 배송받기를 원하는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해. 근데 잠을 거의 못 자서 너무 졸리다. 그래서 잠 깨우려고 누나한테 전화했다.”

나는 그가 수십 건을 몇 시간 안에 배송하는 업무를 하기에 혹시 피곤한 몸으로 멀리까지 운전을 하다가 사고라도 날까 봐 그때마다 조마조마했었다. 그나마도 배송을 해도 고객이 물건의 상태나 배송에 대한 불만을 회사에 말하면 그가 맡은 배송지의 경우는 개인의 월급에서 다 물어줘야 해서 처음 일을 하는 달에는 고객들 보상비로 월급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깎아진 월급마저도 2달 후에 받게 될 것이었다.       


어느 날 그가 절뚝거리며 우리 집에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 멀쩡하게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걸었던 동생이 살이 갑자기 5kg이 빠졌고, 하얗던 얼굴과 온몸은 검은빛으로 탔고, 볼에는 없었던 점이 마치 별자리처럼 보일 정도로 많이 생겼다. 그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로 된 유니폼을 입고 현관문을 들어오는데 몸이 다쳐서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일하다가 유니폼이 찢어져서 엄마에게 바늘로 기워달라고 했다. 엄마는 금지옥엽 최선을 다해서 키운 자식이 고생하면서 사는 것을 보고 충격에 쓰러졌다. 얼마 전까지 퇴직을 하신 후에 몸이 쇠약해져 암투병을 하고 있던 아버지가 이번 일로 쓰러진 엄마를 간병하느라 집안은 쑥대밭이 된 것 같았다.      


동생이 다치게 된 것은 큰 생수통 배달을 주문한 어떤 고객의 집이 달동네 언덕 꼭대기인데 그곳은 골목이 좁아서 차가 들어갈 수 없어서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그 꼭대기 집에서도 또 옥탑에 있었기에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런데 밀려있는 주문량이 많아서 바쁘게 다른 배송지에도 가야 했기에 그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늦게 배송하면 고객들이 실망해서 회사에 불만을 접수할 것이고 그러면 아기들을 키우기 위해 아내에게 갖다 줄 생활비가 그나마도 점점 줄어들 것이 예상되었을 것이다. 생수통은 물이 가득 차있고, 3병이 아닌 3세트였다. 그것은 너무 무거워서 30대 성인 남성이 한꺼번에 들고 갈 수가 없었지만 다음 주문 배송지까지 시간이 촉박했고, 그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주문받은 생수통 전부를 무리해서 어깨, 등, 손에 지고 땀을 흘리면서 달동네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에 다 올라가 옥탑에 올라가는 좁은 철계단을 올라가다가 계단의 녹슬고 약한 부분을 잘못 디뎌 생수들과 함께 떨어졌다. 온몸이 다쳐서 피도 났지만 그는 그날 일을 못하면 그날 가족들이 먹고살 수가 없기에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이 다음 배송지로 향했다고 했다.


아직도 동생은 월급이 나오지 않아서 다친 몸을 하루 종일 쓰고 있다. 그래도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일자리를 잃지 않아도 된다고 다행이라며 기쁘게 웃는 모습을 보면 하루하루 기적처럼 버텨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많이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나는 동생이 택배업,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부터 생활에서 많이 마주하는 택배기사들을 볼 때 내 가족을 보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있기에 내가 편하게 물건을 받을 수 있고, 그 일을 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이든지 생각하면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사회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기쁘게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가족 같은 마음으로 

"우리 힘냅시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새처럼 하늘을 날아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