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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슈 May 19. 2022

잠이 안 오는 밤 05

그때 만났었던 남자 이야기 (홍콩 동갑내기 편)

잠이 안 오는 밤에 풀어놓을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느꼈을까 싶지도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느꼈으니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다섯 번째 남자의 특징 : 한국어가 조금 가능하며 무야호와 국밥송을 가끔 부르는 홍콩 국적 남자. 나름 유복한 가정이고 탐나는 엄마를 갖고 있음. 동갑내기고 모태솔로로 내가 첫사랑이자 첫 여자 친구, 가장 큰 특징으로 나랑 소울메이트.


한국 연하남을 군대에 보내고 내 삶을 곱씹는 순간에 찾아온 것은 모태솔로 건담 오타쿠였다.

우리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절친으로 매일 수업을 같이 들었으나, 나는 이성적 감정은 전혀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나에게 연간 행사로 고백을 해왔으며, 그때마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직도 기억하는 내 입으로 말한 충격적인 멘트는 이거였다.


거울이나 보고 말해라 좀. 그렇게 못생겨서 그런 말이 나오냐?



내 멘트를 듣고도 허허 웃더니 그다음 해 또 고백한 그 남자는 결국 나랑 사귀게 되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더 이상 나에게 돈을 내라고 더치페이하자고 요구하지 않았고, 똑똑했으며 끈질기게 나에게 구애했다. 또한 그의 엄마는 너무 탐이 나서, 그 엄마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남자랑 사귀고 싶었다.


내가 처음으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하고 그 당시 페미니즘 운동에 심취해 페이스북에서 폭주하고 있었던 시절... 나를 묵묵히 응원했었고, 내 원죄를 고백한 포스팅에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까지 달아줬다.

실제로 연구실 동기로, 페미니즘을 함께 공부했으며 현재도 나의 디베이트 상대이기도 하며 가정 내 논문 1차 점검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다.


그는 저돌적이지도 않았고 아주 미지근한 남자였다. 서서히 달궈지는 타입이 너무 답답했던 나는 그를 계속 쪼았고 모솔을 개조해서 그럴싸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이 남자의 흑역사는 존재했다.


남편 : 못생기고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들이 페미니즘을 하는 거야
나 : 그럼 너 최강 페미?


이 대화 이후로 그는 나와 페미니즘 공부를 함께했으며 못생김을 이유로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렸다.

나보다 요리를 훨씬 잘하며, 청소도 빨래도 잘한다.

그래서 나는 집안일을 정말 하지 않는데 여태껏 불평조차 없다.


사이좋은 우리도 공식적으로 서로 한눈을 판 사이가 있었다.

우리는 이 사건 이전을 전반전이라고 지칭하는데, 전반전에 대한 나의 교훈은 이거였다.


무해한 남자는 존재하지 않지만, 연애용 남자와 결혼용 남자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겉으로 똑똑하지만 유저 최적화된 남자와의 결혼은 잠시 두고 연애를 실컷 하는 방향, 즉 1.5명의 시대가 왔다.


이 교훈 이후로 우리는 전반전 종료를 선언하고 서로 다른 파트너를 탐색하기로 결정했다.


*딱히 만났던 남자들을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 남자들의 국적을 포함하여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경험과 통계에서 개인사를 바라보았고 이 땅의 여성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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