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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슈 May 22. 2022

잠이 안 오는 밤 06

그때 만났었던 남자 이야기 (파리에서 만난 그 남자 편)

잠이 안 오는 밤에 풀어놓을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느꼈을까 싶지도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느꼈으니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섯 번째 남자의 특징 : 190cm에 가까운 훤칠한 키와 외모. 파리 몽쥬 공원 앞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됨. 이름과 나이, 직업만 알 뿐 자세한 정보는 모르나 친척이 알프스 근처에 사는 것은 안다. 이틀짜리 남자친구였음.


전 남친 현 남편과의 전반전을 종료하고, 우리는 오픈 릴레이션쉽의 형태로 지내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결혼은 서로 할건데, 지금 결혼하면 어느 누구도 재미를 못 누리고 살 것 같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었고, 결혼을 하기로 한 채로 서로 다른 파트너를 탐색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졸업여행을 하기로 한 때라서, 나는 유럽으로 향하는 티켓팅을 하고 짐을 싸서 유럽으로 떠났다.


사실 유럽여행에서 틴더밖에 하지 않았다.

여지껏 해외여행이라고는 남친 혹은 가족이랑 함께 했거나, 너무 나이가 어렸기에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원빈이 노숙자인 이 도시들에서 무엇을 못하겠는가.

틴더 스와이프를 미친듯이 돌리며 여행지 남친 혹은 애인을 찾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미친놈을 떼놓고 파리에 당도했던 나에게 느껴진 것은

로맨틱함이었다. 어쩜 도시가 그렇게 로맨틱한지, 심지어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마저 로맨틱했다.

파리에 도착한 첫 날, 12월 31일, 베니스에서 만나서 수다를 떤 잘생긴 친구와의 약속이 캔슬되고 나는 몽쥬 공원에서 멍을 때리며 평소와 동일하게 틴더를 미친듯이 돌리고 있었다.


혹시 시간 있으시면 차 마시러 갈래요?


벤치에 앉아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어떤 잘생긴 남자가 함께 차를 마시러 갈거냐고 물어봤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지금 당장 차가 마시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조깅하던 그는 나를 데리고 사무실에 들러서 자기 집에 데려갔다.


사실 모르는 사람의 집에 함부로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를 함부로 대하고 싶은 흑심이 가득했기에 함부로 갔다.

사실 너무 잘생겼거든.

정말 말 그대로 차를 한 잔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했다.

그는 전여친 이야기를 하면서 신세한탄을 했고, 한국의 페미니즘 이슈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의 전여친이 한국인이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12월 31일.

코로나 이전의 2019년 카운트 다운을 했던 그 날, 우리는 새 해 첫 날 다시 마주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의 집에서 정말 차만 마셨다는 것이 포인트.


그 날 밤, 그에게 온 문자를 보고 거의 기절할 뻔 했으나 애써 태연한 척 다음 날을 준비했다.


몽쥬 공원에서 만난 나의 천사, 내일 만나자.


사실 못생기거나, 별로인 남자가 했던 멘트라면 당장이라도 토가 나올 것 같았는데....

너무 잘생긴 애가 그런 말을 하니 감동해서 기절할 뻔 했다.


우리는 1월 1일에 다시 그의 집에서 만났고, 나는 그가 나를 오래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심에 노란 장미를 한아름 사들고 갔다. 우리는 일본영화를 봤으며 조곤조곤 노곤노곤 오래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정말 별로였다.

완전 뚝딱이였다.

정말 얼굴과 피지컬을 제외하고 최악이었기에, 파리 여행 속 기간제 남친으로 정의했다.


나는 다음날 런던으로 떠나야만 했었기에, 그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그와의 여행은 재밌었고, 로맨틱함의 한복판에서 잠시 느낀 신기루였다.


나는 오늘 런던으로 떠나. 덕분에 즐거웠어!


나의 문자를 받은 그는 나에게 미친듯이 전화를 했으며...

자신의 티켓을 사줄테니 파리에서 다시 머물다가 조금 뒤에 돌아가면 안되냐는 말을 했다.

파리지앵들이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렇게 ... 미련할지는 몰랐기에... 덕분에 재밌었다는 말을 전하고 조용히 차단했다.


1.5명에서 0.5명의 자리를 주고 싶었으나, 그와의 물리적 거리와 더불어 뚝딱거림은 용서할 수가 없었기에

파리 여행 한구석의 추억으로 그를 남겨두었다.


이틀짜리 파리지앵 기간제 남성이 준 교훈은 별 것 없었다.


여행지에서 심심하시다구요?

잠시 함께 할 운명적 상대를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틴더를 돌려보세요.

진수성찬과 함께 뷔페가 차려진답니다!


아! 해의 마지막 날, 그것도 파리에서,이름 모를 분위기 좋은 카페 앞에서 한 키스는 최고였어요!


*딱히 만났던 남자들을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 남자들의 국적을 포함하여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경험과 통계에서 개인사를 바라보았고 이 땅의 여성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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