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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Dec 20. 2023

마음이 시끄러운 날

조용히 끄적여보는 하소연

 새벽부터 내린 듯한 눈이 날리지 않고, 제법 소복하게 쌓이고 있다.

눈이 내리는 창밖 풍경을 보며, 난 "오늘부터 시험 기간이라, 늦으면 큰일인데, 도로는 괜찮겠지?"를 중얼거리고, 아이들은 등교 길에 눈을 뭉칠 생각으로 스키 장갑을 챙긴다. 얼마 전 겨울  날씨가 맞나 싶게 15도를 웃돌아 이상 기후를 걱정했는데, 뼛 속까지 시린 추위에 진정한 겨울의 맛을 느낀다. 날이 추우니 마음이 얼어버린 건지,  마음이 얼어붙어 몸이 더 춥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맞닥뜨릴 때, 일단 이러한 일이 생긴 이유를 알아보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상대방의 입장을 살피느라 내 의견을 말할 타이밍을 놓치며 살아왔다. 특히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대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불편해서 피해왔다. 올해 초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연말까지 지속되며 혼자 있을 때나 자기 전, 눈 뜬 직후까지 나를 괴롭힌다. 잠을 잘 못 자 퍼석한 얼굴, 감정이 요동쳐 하루에도 수백 번 널을 뛰는 마음, 이 일로 내가 많이 힘들구나.


협의가 아닌 통보가 요즘 같은 시대에도 먹히다니 놀랍다. 다들 이 사안들이 불합리하다고는 생각되지만 내 일이 아니면 굳이 나서서 욕먹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에 구경만 한다. 허나 용기를 낸들 소수의 당사자가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공동체 안에서, 내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해보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인데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복도에서의 우연한 마주침. 웃으며 다가오는 A,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불길하다.

이번에 성과급 등급이 좀 낮아도 이해하란다. 수업 시수도 더 받고, 겸임까지 나갔는데... 이건 또 무슨... 명확한 기준하에 산정된 거라면 이해하지만 불합리한 몇 가지 부분은 다시 짚어야 했다.

" 내년에도 우리 과에서 교과 외 수업을 더 받아야 하나요? 올해 지원했으니, 내년에는 다른 과에서 지원되도록 해주시지요."  

또 납득되지 않은 말로 얼버무린다. 늘 이랬지. 한 주에 15~16시간 수업을 하는 과가 있다. 우리 과는 18시간에 겸임, 2시간 교과 외 수업까지 추가되어 있는 상황이다. 몇 차례 확인을 부탁했으나 답변은 늘 없었고, 흐지부지 일 년을 보내더니 내년에도 이대로 지속할 작정인가 보다.

" 여러 건을 말씀드렸는데 하나도 반영이 되질 않으니, 좀... 사기가 떨어집니다."

평소 안 하던 말을 했더니 마음이 두근거리고, 하루종일 찝찝하다.




 2년 전, 이곳에 발령받았을 때 함께 이야기하고, 협의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문화에 감탄했다. 스승의 날 모든 선생님들의 축하 속에 한 선생님이 교육감 상을 수상하셨고, 진심으로 박수를 쳤던 따뜻한 기억이 무척 그립다. 그때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께 우리 학교를 자랑하며 전입을 권하기도 했다. 올해 업무팀이 대거 바뀌며 교육과정, 행사, 여러 상 추천까지 쉬쉬하며 결정되었고 통보만 받을 뿐이었다. 마지막 4년 차의 익숙함을 포기하고, 몇몇 분들이 전출 내신을 썼다. 같은 교권 심의건에 처리 과정이 다른 것을 보고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그 기준은 믿고 싶지 않지만 친밀도가 자명해 보인다. 동의할 수 없는 피드백이 쌓이고 구성원들의 의욕은 바닥을 찍었다. 나도 이곳엔 더 이상 희망이 없구나. 탈출을 마음먹었으나 만기자 현황 파일을 열어 쓸 곳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씁쓸한 한숨을 쉰다.


 어려움을 토로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고, 서로 의견을 조율해 가는 분위기 속에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일하고 싶다. 이 공동체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며 가르치는 본업에 대한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얼마 전 극장에서 본 <서울의 봄>이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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