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전화 속 앨범에는 너의 사진이 51장 담겨 있다. 나는 어디서든, 또 누굴 만나든 가급적 카메라의 셔터 버튼을 누르지 않으므로 51장은 상당히 많은 양이다. 이따금 앨범을 뒤적이다 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고, 그 사진 속의 시간이 되살아나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죄다 잠을 자고 있는 사진이네’, 의아해 하며 사진을 살펴보니 너는 어느 시점부터 눈을 꼭 감고 누워만 있었다. 햇살이 만들어 놓은 노란 그림자 안에서, 빨간 체크무늬 방석에서, 소파에서, 내가 누워 있던 침대 아래서, 또 연두색 이불을 덮고 무슨 정물처럼 잠겨 있는 너. 나는 그 ‘잠’이 왠지 불길했다. 제때 챙겨주는 밥을 잘 받아먹고, 하루 세 번씩 일정한 시간에 걷거나 뛰고, 숨을 건강하게 쉬는데도 너의 잠든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병적으로 보였다.
엄마의 건강 상태가 나빠진 뒤로 되도록 자주 고향에 내려가자고 다짐했다. 너는 그때마다 숨이 넘어 갈 듯 나를 반겨줬지. 무심코 고개를 돌리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네가 사랑스러워서 찰칵, 눈길을 걷다 말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네가 어여뻐서 찰칵, 한낮이 되면 베란다 가까이 생기는 ‘햇살 방석’에 앉아 골똘히 어떤 소리를 듣는 모습이 귀여워서 찰칵, 이래서 찰칵, 저래서 찰칵…… 그렇게 사진을 찍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사진 속의 너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 고여 있기만 했다.
“얘는 왜 이렇게 잠만 자?”
“나이 들어서 그래.”
5월의 마지막 답사지는 전남 구례였다.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의 면면을 살펴보는 코스다. 오전 7시까지 집합. 이른 아침인데도 어디 하나 그늘진 곳 없이 완벽하게 화창했다. 답사 동문들의 표정도 그랬다. ‘신라관광’의 트렁크에 차곡차곡 실리는 먹거리도 풍성했다. 서대구분기점을 통과해 도착한 논공휴게소는 향락객들로 북적거렸다. 웃음소리, 활기차게 떠드는 소리가 부풀대로 부풀어 어느 순간 휴게소가 빵 터질 것만 같았다. 나 혼자만 어둡고 칙칙했다. 그들 사이에서 나만 싹 도려낸 듯이. 이럴까봐 동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수시로 후회가 밀려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스님들이 승병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왜군들에 의해 불태워졌다는 연곡사, 대웅전보다 큰 각황전을 의식한 가람배치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때문에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화엄사, 지리산 계곡에 자리 잡고 있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천은사. 역사적인 공간에 발길이 닿을 때마다 내 안에 어떤 열매가 열리면서 툭툭 터지고, 그 과즙은 온몸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씨앗을 만든다. 문화재 답사란 이런 것이다. 구례 답사지에서는 유독 탑이 눈에 들어왔다.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승탑,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화엄사 오층 쌍탑, 수많은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사자탑, 네 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떠받치고 있는 사사자 삼층석탑…… 석탑은 ‘무덤’의 다른 모습이면서, 번뇌를 없애 주십사 머리를 조아리는 기도의 조형물이다.
너는 5월 7일 저녁에 쓰러졌다. 엄마가 저녁 산책을 나가자고 불렀더니 간신히 일어나다가 이내 주저앉더란다. 엄마가 애써 충격을 가라앉히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동물의료센터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수술이 가능한 상태인지 보려고 심장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에 시작한 수술은 오후 3시 45분에 끝났다. 거의 6시간이 걸린 수술이었다. 엄마는 수술실 밖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며 네가 수술 도중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지. 수요일 오전 10시, 너의 수술이 시작될 때 나는 강의실에 있었다. 정확히 10시에 출석을 부르는데 ‘지금 이 순간 예리한 칼이 너의 몸 어딘가를 가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어지러이 뿌리를 내렸다. 왜 하필 수요일 오전 10시인가. 너와 나는 이토록 끈끈히 이어져 있구나.
답사 일행을 졸졸 따라다니며 듣고, 감탄하고, 먹는 와중에도 네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에겐 받기만 했다.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 대신 변함없이 엄마의 말벗이 되어준 명백한 사실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떤 존재를 빈틈없이 그리워하고, 견주로서의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던 경험을 근래 처음 해봤다. 구례에서 이리저리 발길 닿는대로 걸으며 마음속으로 줄기차게 불러댄 이름, 멍구.
“멍구가 누워 있는데 플라스틱 같더라. 어쩌나 보려고 발로 엉덩이를 툭 건드리니까 꿈틀대지 않고 그대로 밀려나. 평소에 발가락 털을 깎으려면 손도 못 대게 으르렁대잖아? 그렇게 싫어하는 이발기로 발바닥을 건드려도 반응이 없어. 눈꺼풀도 마비가 됐는지 깜빡거리지 않고, 까만 눈이 딱 멈춰있어…… 나는 케이지에서 뻣뻣해진 멍구를 꺼낼 때 의사가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강아지 벌써 죽었어요…….”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린 엄마가 들려준 그날 너의 모습이다. 너는 죽었다 살아났구나. 어떤 미련이 남아서? 아니면 너는 이제 그만 영영 떠나고 싶은데 할 일이 좀 더 남았다고 하늘에서 되돌려 보냈나?
행운이가 신자들에게 주는 선물
지난 토요일 특전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갔다. 어느 때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미사 말미에 신부님이 잠긴 목소리로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마당에서 꼬리를 기운차게 흔들며 신자들을 반겨주던 행운이가 며칠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거였다. 순간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지난주에 봤을 때 기력이 없는 모습이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하늘로 떠날 채비를 하느라 그랬구나. 행운이는 거의 죽어가는 상태로 성당에 와서 7년을 살았다고 했다. 7년 전에 죽었을 아이인데 기적적으로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으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자고, 신부님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당부했다. 그러면서 행운이가 여러분에게 주는 선물을 받아가라고 했다. 성당 입구에서 신자들이 떡과 음료수를 나눠줬다. 거기에 이런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 마당 한편, 마음 한편 내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댕댕천국에서 행운이가.
어느 출판사의 편집장이 자신의 반려견을 하늘로 보내며 이런 말을 했다. 강아지들은 네 발 달린 성자라고.
멍구야, 너는 여름에 태어났다고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밤, 너는 우리의 품에 안겨 가족이 됐다. 올해는 여름이 일찍 찾아왔고, 그 계절의 들머리에서 너는 큰 고비를 넘겼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맴돌며 무척 고통스럽고 외로웠지.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몸으로 소리로 표현하거나, 아니면 끝까지 꾹 참고 견디는 강아지들. 너는 후자에 속하는 아이였어. 평소에도 참을성이 많았지. 이제 보니 스스로 통증을 견디느라고 가만히 누워 잠만 잤던 건데 나이 탓이라 여기며 무심히 넘겼다…… 2023년 여름에 다시 태어난 멍구야, 악착같이 버텨서 행운이처럼 더도 덜도 말고 7년만 꼬리를 흔들어주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