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추억의 강냉이’는 만병통치약이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울적하고 불안할 때 이걸 먹으면 몸과 마음이 확실히 가벼워진다. A4용지 크기의 봉지에 담긴 강냉이는 후투티나 직박구리의 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들의 둥지에서 꺼내 온 자그마한 알들을 가을 햇살에 수십 번 말려서 단단한 결정체로 만든 고급 영양식. 나는 200그램의 강냉이를 세 번 나눠서 먹으니까 한 번에 몇백 개의 알을 씹어 삼키는 셈이다. 어떤 날은 불룩해진 뱃속에서 와글와글 새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서양 연금술에서는 현자의 돌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다지.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꾸거나 사람을 젊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은 돌. 내 엄지손톱만 한 강냉이들이 해변의 자잘한 몽돌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강냉이를 한 움큼 집어 입속에 넣는다. 얼굴은 됐으니 마음만 20년쯤 젊어지기를 바라면서. 새들의 알, 현자의 돌 같은 강냉이 두 개를 쪼그라든 손금 위에 올려놓는다. 생명줄이 짧고, 부모 복이 없으며, 손에 잔금이 많아서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던 잭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는 한때 손금과 관상에 빠져서 그쪽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었다고 했다.
“나는 대기만성형도 아냐?”
“그런 미래는 안 보여.”
“손금 아래 숨어 있는 팔자를 읽을 줄 모르네. 그게 독학의 한계겠지.”
습관적으로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채널마다 예능프로가 판을 치고 있다. 시답잖은 말과 헤픈 웃음으로 포장된 예능프로보다야 홈쇼핑 채널이 백배 낫다.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쇼호스트들의 목소리에는 스포츠 선수 같은 근성이 묻어 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그래서 기필코 ‘솔드 아웃’이라는 금메달을 거머쥐리라는 당찬 다짐. 롯데는 프로메가 알티지 오메가3, GS는 유기농 새싹보리 착즙 분말, NS는 제주도 은갈치, CJ는 실크테라피, 현대는 버버리 모노그램 울실크 숄을 선보인다. 텔레비전 화면 귀퉁이에 디지털시계가 마치 심장처럼 팔딱팔딱 뛰고, 그 심장박동에 따라 쇼호스트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상담 대기 고객이 육백이십칠 명입니다, 자동 주문으로 들어오세요!”
“고객님! 곧 매진된대요, 일단 물건부터 확보하세요. 마음에 안 드시면 반품하면 되니까요!”
쇼호스트들의 과장스런 몸짓에 이끌려 ‘주문하기’를 터치해서 빠르면 하루 만에 배달된 물건은 대개 화면과 다르다. 그래도 가격 대비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 집에 둔다. 쇼호스트들의 장사 수완에 매번 솔깃한 만큼 카드 대금이 늘어난다. 이제는 충동구매를 할지언정 조금이라도 흠이 보이면 바로 반품해 버린다. 달콤한 말에 혹해서 마음을 열었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첫인상과 다르다. 찝찝하지만 곁에 두기로 한다. 그러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인연을 끊어 버리면 된다. 곰곰 생각해 보면 홈쇼핑과 남녀 관계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단백질 성분이 강화됐다는 샴푸를 쇼호스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할리우드 스타들한테 사랑받은 제품이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세 통을 덤으로 주는 봄맞이 특별 행사라고, 이런 구성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오늘 이후 언제 또 방송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물량을 확보하느라 우리 스텝들이 애를 먹었어요” 쇼호스트들이 즐겨 써먹는 레퍼토리다. 윤기가 가득한 머릿결로 만들어 준다는 샴푸에 눈이 멎는다. 제품보다는 ‘손상된’ ‘회복’ 따위의 단어에 구매욕이 살아난다. 판매 종료 시간이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샘플을 넉넉히 드리니까 충분히 써 보시고 결정하세요. 저희 회사에서 반품률이 가장 낮은 제품이에요.”
한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떠들었을 텐데도 쇼호스트의 목소리는 짱짱하다. 남은 시간 38초. 나는 모바일 앱을 얼른 연다. 주문 완료.
베란다의 유리문이 흔들흔들, 사나운 바람결이 여실히 느껴진다. “빨리 문 열어, 이래도 열지 않을래?” 하면서 바람이 포악을 부리는 듯하다. 강풍주의보까지 내려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방에 커튼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달지 않았는데 오늘 같은 날에는 그 ‘보호막’이 아쉽다. 점심은 뭘 먹을까. 강의 자리를 얻은 기념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할까. 아니면 모처럼 요리를 해 볼까. 혼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대뜸 쓸쓸해진다. 사소한 일일수록 더 그렇다. 명절이나 무슨 기념일에 가족, 또는 연인을 떠올리며 외로움 따위를 느끼진 않는다. 이런 인간관계가 나를 자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일단 ‘트위스트런’에 올라탔다. 어떤 여배우가 이혼 후유증으로 체중이 불었는데, 트위스트가 예전의 몸매를 되찾아 줬다 해서 불티나게 팔린 운동기구다. 나도 롯데홈쇼핑에서 6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입했다. 다음 달이면 할부가 끝나 완전히 내 소유물이 된다. 어떤 물건이든 할부 개월 수가 남아 있다면 아직 내 것이 아니다. 지지난달에 바꾼 냉장고도 내 식구가 되려면 3개월이 지나야 한다. 색상, 디자인, 기능이 두루 만족스러운 트위스트런을 나는 생각날 때만 갖고 놀았다. 처음에는 욕심부리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30분씩만 꾸준히 사용하자고 다짐했는데 일주일도 못 갔다. 어떤 운동이든 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럴싸한 핑계가 줄을 잇는다. 그러다 운동기구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다. 집 안에 모셔 놓은 운동기구들의 숙명이다.
나는 트위스트런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몸을 흔들어 댔다. 트위스트런의 샛노란 플라스틱 발판에 올라서면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휘청거린다. 가로세로의 길이가 각각 두 뼘쯤 되는 발판과 발판 사이에 굵은 스프링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트위스트런의 운동 방법은 간단하다. 무릎을 살짝 굽힌 자세에서 스프링이 탄력을 받도록 허리를 좌우로 세게 움직이면 된다. 트위스트를 추듯이. 무릎을 굽히니까 엉덩이가 자연히 튀어나오고 그 상태에서 두 팔을 양쪽으로 휘둘러 대니 꼴이 우습지만 두 팔이 시동 모터이므로 어쩔 수 없다.
몸을 좌우로 오십 번쯤 움직였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그새 목덜미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자 경비 아저씨의 볼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온다.
“택배요? 주문한 물건이 없는데….”
“칠동 천삼백칠호라고 적혀 있어요. 집에 사람이 있는데도 꼭 경비실 앞에 던져 놓고 달아나. 얼른 가져가요. 취급 주의 딱지가 붙어 있는 걸 보니 귀한 물건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TV 홈쇼핑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한 기억이 없다. 김장 김치나 마른 생선 따위를 보내 줄 피붙이는 더더욱 없다. 어디서 날아온 택배일까. 경비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온 ‘취급 주의’라는 4음절이 왠지 강풍주의보처럼 위협적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