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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원 Apr 21. 2023

당신이 원하신다면

  S는 뽀얀 행주를 힘껏 짰다. 그리고 툭툭 털어 싱크대에 걸쳐놨다. 설거지를 한 후 행주를 짤 때면 어떤 글을 쓰면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 든다. 성취감 비슷한 감정이 생기면서 몸이 가벼워진다. 햇살을 흠뻑 머금고 있는 식물들에게 물까지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싶어 베란다로 걸어가는데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떠오른 ‘아버지’란 세 글자를 보는 순간 설거지, 행주, 햇살, 물이 거무튀튀하게 뭉개졌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집요하게 요구하거나, 잊힐 만하면 무슨 사고를 치거나, 평생 백수로 지내며 처자식을 가난의 늪에 빠트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삶을 살았던, 게다가 한 여자의 지독한 불행을 온전히 떠안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S는 언제라도 불편하고 거북스러웠다. 숨기고 싶은 죄의식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텅 빈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휴대전화에서 들려왔다. 조금 전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고, 잠깐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보자’가 아니라 ‘볼 수 있겠느냐’는 표현이 S를 망설이게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슨 말을 하든 딸을 최대한 배려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질긴 뿌리 같은 ‘미안함’이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부녀는 서로에게 이런 마음의 빚을 갖고 있었다. 


  S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엄마는 술을 가까이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알코올에 축축이 젖은 몰골을 하고는 배시시 웃었다. 주말이면 슬그머니 나갔다가 며칠 만에 해쓱한 얼굴로 돌아왔다. 누구랑 어울려 문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방랑자처럼 혼자 그러고 다닌다는 아버지의 말이 믿겼다. 원래 엄마는 ‘친교’ ‘친화’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으니까.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대로 엄마는 집 안에 고이 잠겨 주부로서 만족스런 삶을 살았다. 아버지의 애정을 야금야금 받아먹으면서. S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너희들 모르게 가슴 속에 담아둔 원한을 이제 풀어버리겠다는 듯 술과 손을 잡았다. 

  어느 순간부터 S는 발악 대신 침묵했다. 아버지도 체념한 얼굴로 아내의 탈선을 지켜봤다. 그러다 결국 아버지는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S는 굳이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폭력도 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거미줄을 쳤다. 엄마가 취한 날이면 S는 재빨리 칼이나 가위를 숨겼다. 내 손으로 목숨을 끊어버리겠다고 울부짖는 엄마의 모습을 목격한 후부터였다. 어느 의학 드라마에서 레지던트가 볼펜을 응급 처치의 도구로 사용하는 장면을 접한 뒤로는 필기도구까지 감췄다. 볼펜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죽이기도 할 테니까. 마침내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S의 집이 실로 오랜만에 평온을 되찾은 시기였다. 

  엄마가 병원에 있든 말든, 아버지 혼자 환자를 돌보며 끼니를 해결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S는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즐겼다. 그 무관심은 벽이 됐다. 아버지에게는 띄엄띄엄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그 사이 엄마의 정신적‧육체적 병은 점점 깊어졌다. 아버지는 달마다 S에게 생활비를 보내줬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액수였다. 매달 한 번씩 아버지의 이름이 찍힌 입금 내역을 확인할 때면 팽팽한 줄 하나가 툭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병든 엄마를 떠넘기고 도망치듯 고향을 등졌다는 생각까지 기어올라 그날은 폭식했다. S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대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후부터는, 취업하지 못했어도 생활비를 받지 않았다. 왠지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은 4년으로 족했다. 아버지가 생활비를 보내주면 덩달아 떠오르던 엄마도,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부터는 희미해졌다. 엄마는 알코올성 치매가 심해져 대소변도 혼자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2년 가까이 살다가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동서울터미널 안에 자리한 분식집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있었다. 실내가 한산해서 아버지를 금방 알아봤다. 하긴 손님이 많았어도 대번 눈에 띄었을 것이다. 너무 궁상스러워 보였으니까. 의복이 해결할 수 있는 궁기가 아닌데도 얼른 데리고 나가 옷부터 사주고 싶었다. 

  “너도 국수 먹어봐.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무슨 일 있어요?”

  S는 추궁하듯 물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만 드시고 일어나세요. 서울까지 올라와서 무슨 국수예요.”

  “가긴 어딜 가. 서울은 어딜 가든 복잡하고 답답하다. 겨우 하루 있었는데 일 년처럼 느껴져.”

  “누가 돌아가셨어요?”

  S가 알기로 아버지는 친척이나 지인의 장례식이 아니면 상경할 일이 없었다. 근데 오늘은 그 목적이 아닌 듯하다. S는 아버지와의 느닷없는 만남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당신은 잔치국수의 국물까지 죄다 먹고 일어났다. S가 터미널 입구의 아담한 쉼터로 방향을 잡았다. 청명한 하늘을 보자 오히려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너는 언제쯤이나 결혼할래.”

  “옛날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잖아요. 전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이에요.”

  “너무 삭막하다, 너의 생각이……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봐야지. 자식은 물수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바싹 메마른 입을 적셔주는…… 인생이 이렇게 긴데 그런 물수건 하나 없이 어떻게 버티냐.”

  “저도 아버지한테 물수건이었다는 거네요?”

  S가 헛웃음을 터뜨리자 아버지는 무심한 눈길로 쉼터를 둘레둘레 쳐다봤다. 분명 아버지는 딸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발걸음 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아버지의 고백이 뭘까. 

  “거처를 옮기려고 한다.”

  “어디로요?”

  “숨어 사는 외톨이가 되고 싶은데 거처를 알려주면 그게 어디 숨어 사는 거냐?”

  “숨어서 어떻게 먹고 사시려고요.”

  “도랑에서 가재 잡고, 들에서 나물 캐서 먹지. 그래서 자연이 좋은 거 아니냐. 입에 풀칠이야 해주니까…… 이거 받아라.”

  S는 얼떨결에 은행 로고가 찍힌 봉투를 손에 넣었다. 

  “고향집이랑 이것저것 정리했다. 그동안 엄마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쓴 돈이 적잖아서 남는 것도 별로 없더라. 너한테 얼마라도 챙겨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이만 갈란다.”

  오후 3시 15분에 출발하는 표를 끊었다면서 아버지가 갑자기 서둘렀다. 휴대전화를 열어 보니 오후 2시 43분이었다. 내가 대답할 차례인데 곧 고속버스가 출발한다니? S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서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당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걸었다. S는 자석에 이끌리듯 아버지를 따라갔다. 

  아버지는 ‘충주’라고 적힌 승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고향으로 내려가시는구나, 당장 어디론가 숨어들지는 않아…… 안도감이 밀려왔다. 창가에 앉은 아버지가 살짝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소가 저렇게 슬퍼 보일 수도 있네…… S는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드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라고,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어서 이제야 비로소 얻은 자유를 욕심껏 즐기시라는 뜻으로. S는 멀어져가는 충주행 고속버스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설마 이게 우리의 마지막 장면은 아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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