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마다 ‘소설창작세미나’ ‘소설창작연습’이라는 강좌 이름으로 대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치는 내 강의 방식은 이렇다. 학생들은 정해준 날짜까지 습작소설의 초고를 제출한다. 분량은 A4 용지로 5장 내외. 어떤 소설가가 말했듯 ‘초고는 걸레’이므로 힘들게 많이 쓰지 말라는 뜻이다. 어차피 기초공사를 다시 해서 갈아엎어야 하니까. 참고로 단편소설은 보통 원고지로 80매 내외, A4 용지로는 10~11장이다. A4 용지 5장 분량의 초고에서는 굵직한 밑그림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구체적인 정보(나이, 직업, 생활형편, 가족관계 등등), 내가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어느 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주제나 심리를 드러내는 ‘상징물’,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공간’을 그 밑그림에 배치한다. 어떤 학생이 5페이지까지 쓰고서 “뒤에 사건이 나와요” 라고 말한다면 플롯 짜기에 실패한 것이다. 내가 강조하는 ‘어느 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즉 소설의 핵이랄 수 있는 사건 또는 갈등을 가급적 빨리 보여줘야 가독성이 생기므로. 이런 뼈대를 갖춰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등장인물의 동선에 따라 ‘묘사’를 하면 된다. 풍경묘사, 심리묘사, 외양묘사, 배경묘사, 성격묘사…… 이 중에서 으뜸은 심리묘사다. 소설은 결국 인간학이니까. 영화가 시작되고 20분 이내에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어느 영화평론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데, 소설에서는 A4 용지로 5장 정도가 그 20분이다.
학생들이 습작소설을 제출하면 순서를 정해 합평한다. 보통 3시간 강의에 세 명씩 발표하는데, 소설의 이론을 배우고 기성작가의 작품을 읽는 시간을 남겨둬야 하므로 한 학생의 습작소설에 30분 정도만 쓸 수 있다. 하지만 30분은 너무 짧다. 이상하게 학생들의 초고를 놓고 잔소리를 하다보면 30분이 3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의 원고 뒤에 이런저런 조언과 작품이 나아갈 방향을 빼곡하게 써준다. 빨간 볼펜과 형광펜을 사용해 비문이나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는 문장까지 바르게 잡아주면서. 그야말로 ‘걸레’가 되어버린 초고를 받아든 학생들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는다. 나도 소설가가 되기 전에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까. 학생들은 충격이야 받지만 나의 ‘첨삭본’을 귀히 여기는 눈치다. 첨삭본을 토대로 수정한 작품에 성적을 매기는데 환골탈태한 퇴고본을 읽을 때면 쾌감 비슷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예비 소설가들의 초고에 공통적으로 빠져 있는 것이 ‘음식과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있는데 이 사람이 어디에 살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어떻게 먹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투명인간이다. 학생에게 “화자의 나이가 몇 살쯤 됐어?” “이 여자는 뭘 먹고 살아?” 라고 물어보면 자기가 창조한 인물이면서도 머리를 옆으로 살살 흔든다. 이런 판국인데 인물에게 어떤 공감을 느끼겠는가. 음식도 마찬가지다. 5페이지까지 읽는 동안 학생들이 내세운 등장인물은 도통 뭘 먹지 않는다. 하다못해 커피조차도. 내 눈이 포착한 어떤 사회문제나 사회현상을 중심에 두고 언어로 ‘나는 세상을 이렇게 보았다’를 그리는 게 소설이다. 각자의 손과 머리가 주변에 있음직한 어떤 세계를 만들어 내니까 소설에 ‘허구’라는 말이 붙는 것이다. ‘말짱 거짓말’이라는 뜻의 허구가 아니다. 그런데도 후자의 뜻으로 착각하고 ‘소설이니까’ 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을 펼쳐놓는 습작소설이 의외로 많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소설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니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 구체적이면 당연히 현실감이 살아난다. 학생들은 대체로 ‘나는 두부와 감자가 든 된장국을 후루룩 마시고 밥에 계란을 얹어 억지로 쓸어 넣듯이 먹고는’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냥 ‘점심을 먹었다’라고 쓴다. 이 차이는 크다. 음식의 얼굴을 드러내고, 또 먹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면 작중인물의 심리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인물형상화에 일조하는 것이다. 습작소설에 나오는 어떤 음식에 굳이 상징성을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주인공이 뭘 먹었는지 가볍게 써줘라, 이렇게 떠들어대야 겨우 얼굴을 내미는 음식들.
학생들의 초고를 첨삭하면서 ‘음식 실종’을 언급하다 보니 그 반대로 ‘정체불명의 음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쩌면 이 말을 하려고 사설이 길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문화재 답사를 다녀왔다. 미련 없이 이사한 경주, 이 도시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건 ‘박물관대학’ 때문이다. 나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속한 박물관대학의 연구반 학생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고고학 강의를 듣고 일요일에는 답사를 떠난다. 박물관대학의 기초반 답사 지역은 경주를 비롯한 인근 도시였다. 고고학 이론을 통해 만난 유적과 유물을 직접 확인하는 알찬 나들이. 기초반 1년 과정을 마치면 연구반으로 올라간다. 이건 선택이다. 연구반은 답사의 폭이 넓다.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까지 연구반 학생들의 발길이 닿는다. 어제 춘계 답사를 다녀왔다. 지리산 근처였다. 우리 문화재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동기들의 얼굴에 생기가 흘렀다. 출발 시간은 오전 8시였는데 미리미리 도착해서 5분 일찍 답사지로 향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약속시간을 지켜 얻은 ‘5분’ 때문에 더없이 유쾌했다. 문화재와의 만남은 타임머신을 타고 백제나 신라, 또 고구려로 떠나는 색다른 여행이란 생각에 여름을 닮은 봄이 좀 더웠어도, 설령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제 답사 지역은 국보 2개, 보물 8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오늘날 인구가 현저히 줄어 문을 닫은 상가도 많고, 거리가 썰렁했지만 전국적으로 소문난 축제가 열리는 달에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빛나는 가치를 품고 있는 석탑이나 석등, 단청 등을 눈여겨보면 이름 모를 장인들의 섬세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내 빈약한 묘사력으로는 그 불심(佛心) 가득한 창작물의 자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 문화재에 조예가 깊은 해설사가 “이런 석탑은 제 설명을 듣기보다 가만히 감상하시는 게 더 나아요” 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삼층석탑의 안내판에 적힌 ‘마치 나무를 다루듯 돌을 섬세하게 조각한 모습’이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맞다, 맞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문, 그래서 석가탑 상륜부를 만들 때 모델로 삼았다는 삼층석탑. 이 국보가 자리한 절에서 ‘절밥’을 먹기로 했다. 절친한 동기들은 답사 일정에 포함된 절밥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절밥,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겉치레를 하지 않은 단순한 얼굴. 그 한 끼를 먹고 나면 속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개운해지는 느낌에 젖어드는 묘한 위안. 내가 즐겨 다닌 절들의 절밥은 도시의 먹거리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과 맛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리 일행은 ‘공양간’이란 팻말이 걸린 한옥 앞에 줄을 섰다. 뷔페식으로 밥을 가져다 먹는 것 같았다. 절에서 하룻밤 묵은 듯한 가족이 족구를 하고 있었다. 공과 발이 탱탱 부딪히면서 들리는 소리가 눈부신 햇살에 섞여 평화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내 순서가 다가왔다. 근데 어디선가 카레 냄새가 났다. 카레? 머릿속에 그려진 절밥의 그림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 몫의 밥을 챙길 차례였다. 아…… 순간 나는 멈칫했다. 커다란 밥통에 윤기 없는 쌀밥이 담겨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대접에 밥을 담아 그 위에 카레를 얹고 반찬을 가져가면 됐다. 무언의 지시를 따랐다. 카레는 미지근했다. 반찬은 단무지와 군내가 살짝 풍기는 묵은 김치, 달착지근한 상추겉절이였다.
아쉽다 못해 의아한 절밥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내 경험상 절밥의 얼굴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절밥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카레밥도 아니고 비빔밥도 아닌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선종을 개창한 유서 깊은 절인데 절밥을 이런 모양새로 내놓아야 했을까. 인원이 많아서 그랬다고 변명할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갑자기 들이닥친 게 아니잖은가. 소설창작에 빗대면 절밥은 절의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다. 무심코 찾은 절이었는데 그 절밥에 반해서 또 발걸음하게 만드는 상징적인 도구. 소설창작에서 인물과 사건이 핵심 요소이듯 절에서 절밥도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삼삼하기 그지없는 절밥을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도록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