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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Nov 14. 2020

할 게 없다면 농사라도 짓는다

할 게 없다면 차라리 때를 기다려라

할 게 없다면 농사라도 짓는다.


부끄럽지만 3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농사짓는 일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그저 몸만 부지런하면 어떻게든 살길은 열릴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언어는 실행력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러한 말버릇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야 잘못된 것임을 몸소 깨닫는다. 시대가 바뀌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농촌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음을 경험해보고서야 급하게 궤도를 다시 수정한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탁 트인 공간을 찾다 보면 어느덧 시골의 한적한 들판 위를 서성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여기에 산을 등지고 강이나 바다를 마주한다면 금상첨화다. 태풍, 폭우, 폭설 같은 자연재해만 아니라면, 평소의 잔잔한 물결이 안겨다 주는 위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느린 발걸음으로 내가 거머쥔 것과 앞으로 놓아줄 대상을 헤아리곤 한다. 줄곧 그 생각으로 살아온 날도 어느새 오십 해에 가깝다.


명함이 나의 전부가 아니다.


놓아준 대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명함이다. 소속이 어디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작지만 압축된 한 장의 명함 속에서 누군가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해보곤 한다. 아주 짧은 시간에 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명함은 그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한다. 나와 비슷한 계통의 일과 관련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전혀 다른 분야라면 새롭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누군가를 만나고, 서로를 소개하고, 이야기하고, 조금씩 아는 것이 늘어나면서부터.


오랜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던 것은 상실감이다. 명함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많은 일 중 하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격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일이란 경제적 능력의 연장선에 있다.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 은행을 방문해 상담하면 몸소 배우게 된다. 명함은 일을 대변하며 나아가 하나의 금융지표의 가늠자로 쓰인다는 현실을. 물론 실제로 대출을 실행하기에 앞서 직장이나 사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서류는 필수로 구비해야 할 테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과장하나 싶지만, 현실이 그렇다. 경제적 논리가 지배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기에 신용을 대변하는 뒷배는 필요한 법이다. 회사에서 벗어나 명함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명함 이외의 것으로 나를 표현해야 하며, 금전적인 압박감이 주는 현실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스스로 찾는 일이다.


할 게 없다면 차라리 때를 기다려라.


지금은 단지 나의 완벽한 시간이 아닐 뿐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언제나 소리 없이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나는 법이다. 삶과 일 그리고 여유가 함께 조화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난 어떤 형태의 삶을 살든 그 안에서 일을 찾고, 그 일로 인해 여유로우며,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나아가고자 한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딱히 하나에 머무를 필요도 없다. 블라인드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그 빛 내림 사이로 퍼져나가는 먼지마저 하나의 섬광처럼 빛날 때, 우리 삶은 그래도 살아봄 직하지 않을까. 머무는 모든 순간에 의미가 있음을 잠시 숨을 고를 때에야 알 수 있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할 게 없으면 농사라도 지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골행을 선택한다면 살림이 거덜 나는 것은 잠시다. 뚜렷한 목표나 이유, 소득원이 없는 상태에서의 정착은 그간 열심히 모아둔 재산을 야금야금 까먹는 것을 뜻하니까. 하지만 느린 삶을 추구하고자 검소한 삶을 실천하고 적지만, 꾸준히 소득을 창출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시골행을 선택한다면 언제든지 환영이고 이들을 응원한다. 실제로 내 지인은 귀농해서 결혼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다만 새벽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 수고로움은 필수라는 점이 쉽게 따라 하기가 어려운 점이지만.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나를 응원한다.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을 누군가 해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부러움이 아닌 질투에 가깝다. 나와 다른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 누군가는 해내지만, 나는 해내지 못한다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게 만든다. 이는 기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만 그 일과 내가 맞지 않은 까닭인데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람은 결핍이라는 공간에 갇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탁 트인 공간으로 튀어 나가고픈 의지가 저절로 생겨나니까.


글은 타인을 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엔 자신을 위한 일이 대다수다. 스스로 위하고자 눌러온 감정을 자판 위에 새기고 하얀 종이에 하나하나 찍어낼 때 응어리진 마음은 어느새 조금씩 풀어진다. 그간 써 내려온 지난 시간과 만남은 한때는 슬픔을, 때로는 기쁨을 안겨다 준 고마운 선물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막막했는데 막상 첫 문장을 완성하고 보니 나머지는 시차를 두고 내 곁에 피어난다. 나는 글 짓는 농사꾼이다. 글도 논, 밭에서의 노동에 비해 쉬운 일은 아니다. 글은 쓰는 것이지 짓는 것이 아니라는 평소의 어법과는 조금 어긋나지만, 오늘은 약간의 예외사항으로 허락한다. 시간을 담는 공간에 또 무엇을 담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삶, 이 또한 여유를 아는 자의 참살이라 믿는다.



Written By The 한결

2020.11.14 대한민국 대구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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