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동네에 살다
하늘 아래 첫 동네에 살다.
누군가 전자제품을 바꾼 모양인데 배달 온 기사가 길을 헤매느라 혼난 모양이다. 산골 마을로 들어서는 길이 좁고 구불구불한 데다 비슷한 마을이 서너 군데 존재하니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온 초행길 기사는 헤매기 마련이다. 힘겹게 목적지를 찾아낸 기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첫 마디를 뱉는다. 여기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내가 다녀본 마을 중에서 오지라 할 만큼 골이 깊어 보인다는 말과 함께.
산골에서의 낮은 짧다. 주어진 하루는 같으나 이를 마주하는 현실이 다르다. 다행히 산골임에도 오목한 분지처럼 오른쪽, 왼쪽 그리고 뒤가 큰 산으로 둘러싸여 큰바람은 피해가고 볕은 한나절 따스하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꼬불꼬불하고 좁지만, 일단 입구만 지나면 이후에는 넓은 항아리 모양의 아늑함이 반긴다. 마을은 장수하기로 소문 난 만수(萬壽)이고, 이름만큼이나 오래 산 사람들이 많다.
하늘 아래 첫 동네에 산다는 것은 불편함보다 남들과 다르다는 특별함을 선물해준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아침마다 느끼는 공기의 신선함으로 계절의 바뀜을 실감한다. 눈앞에 선명하지만,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는 실로 무상하다. 문자의 한계라 하기엔 표현력의 부족을 인정하는 말이라 내키진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써야 할 아름다운 모습은 존재한다.
인연은 도처에 있다.
라일락이 만개한 5월 어느 오후, 햇살은 부지런히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따스한 바람은 조용히 골목길을 돌아나간다.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위치한 마을 중앙에 한 모자(母子)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갓 스물 남짓한 남자가 작은 생명을 손안에 올려두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노르스름한 병아리 빛깔의 새끼 고양이다. 어디서 온 것일까?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아침나절의 평온함을 깨더니 기어코 남자의 손에 들려진다. 오후의 시작은 녀석과 함께다. 어미는 알 수 없지만 배고픔에 허덕이는 몸짓과 사람의 손길을 마다치 않는 순한 눈망울은 함께 살아가도 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멸칫국물에 밥을 으깨어 죽 비슷하게 한 그릇 만들어본다. 눈치는 보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오래전부터 가족이었다는 듯 당당하게 한 그릇 해치운다. 녀석의 이름은 순해 보여 <순둥이>라 명한다. 보통 야생에 길든 길고양이는 사람을 멀리한다. 먼발치에서 서로 대치하기만 했지 실제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는 않는다. 녀석의 어미도 마찬가지일 테다. 아마도 녀석과 비슷한 덩치의 형제도 존재할 테다. 사람의 손길을 타고 이제 녀석은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뉜다. 짐작하겠지만 남자는 바로 20대 초반의 나다. 나는 녀석을 안아 든 순간부터 우리가 가족이 될 것이라 직감한다.
작은 계기가 큰 변화를 이끈다.
생명을 보살피는 일은 마음만큼 쉽지 않다.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바라본다면 쉽게 지칠 수 있다.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으나 이에 준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대해야 한다. <순둥이>가 우리 집으로 찾아오고 가족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듯이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유 없는 사랑이 가장 완벽한 사랑이다.
작은 생명, 나를 만났다는 작은 계기가 생활의 큰 변화를 이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깜박하는 순간에도 녀석의 끼니를 챙기시고, 나 또한 자주 녀석에게 손길을 준다. TV를 보면서 가끔 웃지만, 그 외의 일상에서는 크게 웃을 일이 드물던 우리에게 <순둥이>는 복스러운 웃음을 준 고마운 존재다. 작은 나뭇잎에도 앞발로 장난을 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사랑스러움을 넘어서 충만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세상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게 할 정도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하루라는 시간이 흐름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 생명이, 작은 존재가 다른 한 생명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다. 햇살 한 줌과 아지랑이 여러 줄 그리고 조금 소박한 앉은뱅이 의자로도 이미 행복함에 감사해한다.
풍경이 삶의 전부일 수 있다.
삶의 터전을 이전하는 일은 이민과 같은 힘든 결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과 양식을 버리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대구에서 남해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아직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은 구상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여전히 행복한 이유는 처음을 대하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아직은 모든 게 낯설고 실수투성이지만 여전히 배워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와 있더라도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5월 눈 부신 햇살과 달콤한 라일락 향기 그리고 작은 생명 <순둥이>의 끼니를 챙기시던 어머니와 내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과 매일 지켜보던 풍경이 삶의 전부가 될 수 있음을 몸소 깨우친다. 대구에서 남해로 내려와 살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것도 어찌 보면 풍경 덕분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과 어쩌면 한적해 보이는 듯 무심히 펼쳐진 들판의 모습, 무심한 듯하지만 정겨운 이웃의 모습에서 남해가 가진 매력에 빠져가는 중이다. 사람은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풍경은 병풍처럼 여운으로 감싸는 어느 일요일 오후의 모습이 우리가 찾던 행복이다.
Written By The 한결
2020.12.20 대한민국 남해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