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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인류학자 Apr 21. 2020

천국에서 쫓겨난 어른들, 천국에 사는 아이들

판단하지 않는 능력

하루는 길가에 서서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면서 아이와 손을 잡은 채 내내 스마트폰을 하는 엄마를 보았다. 나는 그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에그,, 그 짧은 시간인데 이제 곧 헤어질 아이랑 눈 마주치며 얘기나 하지. 그 새를 못 참고...'


그 엄마는 어쩌면 아이 아빠에게 아이가 아픈데 어린이집을 보내지 말아야 할까라는 문자를 보내며 버스를 태우기 직전까지 고민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고, 비판까지 한다. 나도 잘 그러면서 말이다.

그런데 낯설게 보이는 건 아이의 반응이다. 그런 엄마에게 '엄마는 왜 스마트폰만 보는 거야?!'라고 책망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에게 그렇게 판단할 지적 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판단하지 않을 능력'이 있다고 보였다.


나도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스마트폰을 할 때가 있다. 아이는 놀이에 열중해 있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하면서 장단만 맞춰준다. 그러다가 왜 놀이에 집중하지 않느냐고 비판을 받을 만한데, 그런 엄마 모습에도 나무라지 않는 아이 모습에 정신을 차린다. 판단과 비판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어른들의 세계에 익숙한 내 몸이 판단하지 않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낯설음을 느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이내 내려놓는다.

성경에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묻는 이야기 있다. 그 물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엄마가 되고 만 1~2세의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에덴동산에서 살던 하와에게 뱀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길이라고 유혹했다. 선악과를 먹고 선과 악을 알게 되자,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입사귀로 몸을 가렸고, 두려움이 생겨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 그리고 더 이상 에덴동산에 살 수 없었다.


선악을 알게 된 삶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마치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과 화아 같다. 나는 수없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그건 하면 안 된다. 그건 잘못한 행동이다. 그건 참 잘했다"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떠한 기준으로 자신을 또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아니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즐거운 일에 그저 즐거워하고, 힘든 일에 그저 울고 화를 낼 뿐이다. 그들은 천국에서 살고 있다. 천국은 그런 곳 아닐까? 누구도 잘못했다고 비난받지 않는 곳. 모두 다 인정받고, 사랑받는 곳.

아이들을 보면서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이미 어른이 된 나는 아이처럼 아예 판단을 하지 않을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 

문득 '불평없이 살아보기'라는 책이 떠오른다. 다시 한 번 들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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