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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인류학자 Sep 10. 2020

힘든 육아, 제비뽑기로 해 보실래요?

그게 더 나

발령이 나고 첫 3학년  담임교사 때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자리를 바꾼다. 새로운 짝꿍, 새로운 모둠이 되는 이날을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린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중요한 이벤트를  열정 넘치는 초임교사는 대충 할 수 없다. 아이들의 성격, 학업성취도, 기본생활습관, 성별 등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 낸다. 모둠별로 학습활동을 하며 경쟁을 하는 상황도 생기니 형평성 있게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협동 활동도 해야 하니 성향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갈등 상황 미연에  막기 위해서 아이들 성격이나 기질뿐 아니라 친한 정도도 고려해야 한다. 문제가 일어날 것 같은 아이들끼리는 떼어 놓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붙여 놓는 게 교사의 역할 아니겠는가...


담임이 되고 몇 개월 후 다시 자리를 바꾸는 어느 날,  깜빡하고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기대에 찬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급히 책상 위에 놓인 발표용 제비뽑기 연필꽂이 통을 사용했다. 남자아이들 이름이 쓰인 연필꽂이에서 두 자루, 여자아이들 이름이 쓰인 연필꽂이에서 두 자루를 꺼내어 모둠을 구성했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었다.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대로 발표했다.


그 달 우리 반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파악한 아이들의 요소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제비뽑기로 된 모둠이니 "난장판"이 되었을까?


답은 아니었다. 물론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직접 모둠을 구성했을 때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조합 속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들이 나왔다.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아이들이 친해지고, 내가 몰랐던 숨겨졌던 아이들의 기질이 새로운 조합을 만나 긍정적으로 발휘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것 이상의 효과들을 맛보고 난 뒤로는 모둠배치는 제비뽑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분께 기도를 하는 일이다.



휴직한 지 5년,

마지막 담임교사를 한지는 무려 8년이 지금 문득 제비뽑기의 경험이 떠올랐다.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이제 그만 힘을 빼라고 말한다. 제비뽑기 비유를 떠올리며 내 아이를 이제는 "제비뽑기의 마음"으로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밤 읽은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책에서 나온 칼릴 지브란의  <아이들에 대하여 >시에서 "제비뽑기 마음"을 발견했다.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화살처럼 날아간다.

그래서 활 쏘는 이가 무한의 길에 놓은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너희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나니"



엊그제 5년 간의 전업맘을 마치고 이제 막 워킹맘이 된 친구를 만났다. 하필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복직을 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여섯 살, 네 살 두 아이를 깨워 밥을 먹여 어린이집에 데려가고 이르면 5시 보통은 6시가 되어 아이를 찾는 일상을 들었다. '힘들겠다'라는 공감으로는 부족하다. '바쁘고', '정신없는'이라는 형용사로도 부족하다.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깨워야 하는 미안한 마음에 기분 좋게 깨우려 애를 쓴다.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둘째는 옷을 입다가, 밥을 먹다가 "수 틀리면"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고, 결국 다가오는 출근시간 때문에 협박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엘리베이터까지 실랑이를 하는 날도 여러 번이다. 등원시키고 돌아서서는 미안하고 서글퍼 울기도 한다. 매일 아침이  "전쟁" 같다며 매일 같이 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은경아 지금까지 정말 잘 해왔고 지금도  잘 되어가고 있어.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그 환경에서 네가 생각지도 못한 일과 만남을 겪으며 잘 자랄거야. 활 쏘는 그분이 너희 아이들을 과녁을 향해 빠르고 힘껏 날아가게 하실거야.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도, 불안해하지 않길 바래.


근데 은경아..

화살을 쏘는 그분은 화살인 아이들도 사랑하지만, 활도 사랑한대!

우리도 우리의 엄마라는 활이 구부려 날아간 화살이야. 우리도 활 쏘는 분이 겨눈 과녁을 향해 맘껏 날아가자!   


 


<아이들에 대하여>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 딸이니,  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 살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너희가 아이들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화살처럼 날아간다. 그래서 활 쏘는 이가 무한의 길에 놓은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너희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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