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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인류학자 Mar 04. 2020

상가의 추억

나의 살던 고향은

큰 아이 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친청에 며칠 다녀왔다. 전라북도 군산시. 개발되지 않은 도시가 '백 년 전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곳'이란 이미지로 오히려 유명 여행지가 된 곳이다. 우리 친정집은 구암동 현대아파트 000000호. 처음에는 000000호에 살다가 6년 전에 같은 단지 33평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이사를 했다. 올해로 이 아파트도 27살이고 우리가 이곳에 산지도 27년이 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주인집이 같이 살고 있는 주택에 있는 단칸방에 살았다. 주방은 방과 붙어있지만 신을 신어야 나갈 수 있는 곳이었고 화장실은 집 밖으로 나가야 있었다. 내 기억 속에 그런 집에 살았던 적이 두 곳이었고, 그다음 집이 3층 연립주택인데, 그래도 거실과 방 두 칸, 주방과 화장실이 다 함께 있는 집이었다. 여기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보냈다. 그리고 내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우리 엄마 아빠는 방 3칸짜리 24평 아파트를 장만을 했다. 그 당시 '현대'의 정주영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현대건설사 아파트를 저렴한 분양가로 내놓았고, 구암동에 군산시청과 법원이 옮겨진다는 이야기에 부모님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대출을 받아 분양을 받았다. 핑크색 침대, 핑크 톤 침구와 커튼으로 꾸며진 나만의 방을 갖게 된 기쁨을 잊을 수 없다. 이사하기도 전부터 몇 번을 오가며 쓸고 닦고 구경을 다녔는지, 그때 당시 꼼꼼히 살펴보았던 몰딩과 벽지 무늬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 속에 있다.

단지 내 상가는 이마트와 같은 대형마트도 없던 시절, 열세 살의 나에게 유명 복합몰과도 같았다. 귀찮기만 했던 엄마의 심부름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는 신나는 일이 되었다. 롤러스케이트장만큼이나 매끈매끈한 바닥이라 심부름 기회가 되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갔다. 1층에 문구점, 세탁소, 호프집, 베이커리를 지나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반찬가게, 정육점, 과일가게, 생선가게를 지나 슈퍼로 부르기에는 너무 큰 마트로 들어가서 가지런히 잘 정리된 진열대들 사이를 롤러로 가로지른다. 두부 하나 콩나물 하나 들고 나와도 그 많은 가게들과 상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은 부풀었다. 좋은 동네 백화점에 갔을 때 나도 같이 부자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그때도 느꼈던 것 같다. "나 이런 동네 사는 아이야~"

그랬던 단지 상가를 오랜만에 다녀왔다. 너무나 서글프고 허망한 감정들이 차올랐다. 지하에 있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마트와 정육점만 영업을 한다. 그간 식료품 가게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분식집으로 업종을 변경했었는데 다른 세입자를 못 구했는지 결국 간판과 자제들이 남은 채로 문을 닫았다. 그 으리으리했던 마트도 이제는 너무 작고 허름해 보인다. 정육점 주인아저씨는 잘생기고 체구도 좋으셨는데 그 사이 할아버지가 되셨다. 정육점 진열대의 신선한 고기들 마저도 왠지 세월을 먹은 듯 보인다. 떼 돈을 벌었다던 용화루 중국집, 너무 장사가 잘되어 주인이 직접 장사를 하려고 내쫓았다는 베이커리, 스승의 날만 되면 가서 선물을 고르던 수입상가와 화장품 가게, 양약과 한약을 같이 팔던 장약국, 작지만 없는 게 없던 문구점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장약국, 문구점, 수입상가는 업종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고, 중국집과 베이커리는 주인이 몇 번 바뀌다가 문을 닫았다. 용화루 중국집 사장님은 작은 아버지 친구인데 권리금을 많이 받고 다른 일을 하시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어린아이들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때 그 간판이 빈 가게에 그대로 붙어있다. 핸드폰 가게, 반찬가게, 음악학원은 간판을 새로 붙인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보이는데 가게는 텅 비어있다. 그러니 이 상가를 보는 것 만으로 허망하고, 서글프고, 무섭기까지 하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 고향
"고향에 간다" 정겹게만 느껴졌던 이 말이 오늘은 다르게 다가온다. 40층이 넘는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내내 느끼지 못했던 것들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하게 된다.
2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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