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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Kim May 21. 2019

To send, or not to send?

청첩장, 한 때 소중했지만 조금씩 멀어진 인연들에게



용기 내 건넨 청첩장 때문에
추억까지 퇴색된 관계가 있고
반대로 면구스러운 맘에 선뜻 전하지 못한 탓에
더 멀어진 인연도 있다.



얼마 전 이런 게시글을 보았다. 오래전에 친했다가 멀어진 친구가 몇 년 만에 전화해서 대뜸 사과를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결혼을 앞두고 있더라는, 이 결혼식에 가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은 비난 일색으로 대부분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니 절대로 무시하라는 내용이었다. 비난의 핵심은 만나서 청첩장을 주지 않고 전화로 얘기했다는 것이었는데, 어쩐지 나는 이러한 접근은 위험해 보였다. 전화를 택한 사정이야 모르는 것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전화를 끊고 나서 글쓴이가 묘하게 불쾌하고 석연찮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 아닐까.


결혼을 앞두고 연락하는 친구들에 대한 괴담에 가까운 경험담들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여기 내 경험담이 있다. 4년 전 결혼을 앞둔 나는 고민에 빠졌다. 한 때 친했고, 소중했던 인연이지만 취업 준비를 하고 밥벌이에 천착하면서 조금씩 멀어진 인연들. 이들에게 청첩장을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주자니 그 흔한 ‘결혼식 앞두고 연락하는 친구’ 괴담의 가해자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안 주자니 내 딴엔 소중한 인연을 ‘결혼식도 초대 안 한 사이’가 되어 영영 놓칠 것만 같았다.



그들 중 몇몇은 고맙게도 결혼 소식을 알리는 내 SNS 게시글에 먼저 댓글을 달아주었다. “결혼 축하해, 지영아. 나도 꼭 청첩장 줘!” 눈물이 핑 돌만큼 고마웠다. 그리고 또 다른 몇몇에게는 용기를 내어 먼저 연락을 했다. 뜻밖에 반갑게 맞아주는 그 마음들이 고마워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청첩장 주는 사람’의 예의 예절이 그렇듯, 1차, 2차까지 계산을 하고 벅찬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한 친구의 장난 섞인 마지막 말이 나를 찔렀다. “너 축의금 받으려고 연락한 거 아냐?”


지금이라면 ‘너 없어도 입사 동기만으로도 결혼식장은 꽉 들어찰 것이고, 네가 낼 축의금 5만 원 중 4만 원은 네 식대로 들어갈 것인데, 내가 오늘 너에게 밥과 술을 산 비용만 근 10만 원이다!’라고 따져 물었을 텐데, 당시에는 그저 아팠던 것 같다. 너무 상처 받은 나머지 그 후로는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는 일체 청첩장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뒤, 나는 뜻밖의 뒷얘기를 들었다. “걔 결혼했다며? 어쩜 초대도 안 하니?” 과연 내가 결혼 전에 연락을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이러나저러나 욕먹기는 매 한 가지인 ‘청첩장 주는 사람’은 그저 서글플 따름이다.


용기  건넨 청첩장 때문에 추억까지 퇴색된 관계가 있고 반대로 면구스러운 맘에 선뜻 전하지 못한 탓에 더 멀어진 인연도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때아닌 햄릿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To send, or not to send? 참 어렵다.


더러는 정말로 하객 수를 채우기 위해서 혹은 축의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오래된 인연을 소환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분명 당신과의 놓친 인연의 끈을 다시 이어 보고자 결혼을 계기로 용기를 낸 이들도 있다. 그러니 잊혀진 번호로부터 결혼 소식을 전해 듣더라도 너무 노여워만 말라. 어쩌면 그에게 당신은 결혼식장에 오지 못해도 축의금을 내지 않아도, 그 핑계로 다시 잡아보고 싶은 손일 수도 있다. 물론 얇아지는 지갑은 어쩔 수 없는 별개의 이슈지만 말이다.




*동아일보 2019.05.21자 게재글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63/3/70040100000163/20190521/956162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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