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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그네를 타세요

by 이생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는 구절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문득 바라보는 창밖으로 오늘도 함박눈이 내렸다. 이내 그쳤다가 다시 내리는 그런 날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분주함 속에서 수업을 들어가면서도 비는 시간이면 틈틈이 해당 업무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해야 했다. 복잡할 수 있지만, 잘 풀어가다보면 답이 보이기도 한다. 일이라는 것은 해결점을 향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잘 해결해야겠다는 마음가짐만 가진다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답이 풀리게 마련이다.

하루를 보내고 오늘을 되돌아보니 참 아름다운 풍경들이었다. 아이들의 얼굴도 그렇고, 선생님들의 농담 섞인 이야기들도 그렇고, 향기로운 커피향도 그랬다. 그 사이 틈틈이 창밖으로 영화처럼 눈이 내렸다.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삶들이 유한하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날들이 내 인생의 책 몇 페이지 쯤인지 모르겠지만, 즐겁고,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손가락은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는 날은 조금 편안했다가 다음 날은 조금 더 붓고 뻣뻣하기도 하다. 그래도 바쁘다보니 손가락에 덜 신경을 쓰게 된다. 때로는 이런 방식이 현실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류마티스 질환을 앓은 선생님은 내가 휴직을 하려고 할 때, 그러다보면 더 마음이 가라앉고 힘들어진다고 하셨다. 슬픔의 감정은 쉽게 전염되고, 익숙해질수록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머물러서 안 된다. 의식적으로 멀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소를 지어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 그리고 글을 쓰고, 운동하기, 그리고 신나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일들로 슬픔을 씻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감정도 그네타기가 필요하다. 한없이 내려갔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감정을 극복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슬픔의 양은 있게 마련이다. 어느 책에선가 같은 양의 소금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짠맛이 다르다고 했다. 작은 컵에 담으면 더없이 짠 소금을 커다란 강에 뿌리면 그 짠맛이 너무나 미비한 것이다. 슬픔의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슬픈 감정에 내 일상이 녹아들지 않도록 내 마음의 크기를 넓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물론 생각만큼 이겨내기 힘든 슬픔도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행복한 삶들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다가올 봄날이 유난히 더 따뜻하기를 바란다.

어제 아들은 전화로 기부단체에 한 달에 한 번 소액이지만 기부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걸어가다가 기부단체의 설득으로 하게 되었지만, 누군가를 위해 기부를 하고 싶었기에 동의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투명하지 않은 단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취소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만류에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소액일지라도 기부를 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에는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나중에 기안84처럼 단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직접 기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기안84가 하는 100만원 챌린지에 대해 겨울 방학 때 함께 얘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육원 아이들 60명의 통장에 100만원씩 지원하는 기안84를 보면서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며,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입학한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하면서 상처주었던 말과 상처입었던 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난히 생각이 깊어보였던 한 학생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동생에게 장애가 있어서 자신은 많은 것을 참아낸다는 의미였다. 그 학생은 그걸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도 그것을 힘들어하기 보다는 자신이 이해해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그 아이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그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누군가에게는 솔직히 말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을 정확히 표현해 내는 일, 잘못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사과할 수 있는 일. 그런 다양한 표현들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그저 쉽게 절망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싶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그래서 얼마나 눈부시고 행복한 순간이 많은지. 배꼽 빠지게 웃으며 살아내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싶다. 자신의 삶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발견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난 병을 앓고 난 이후, 몸에 조그만 증세가 나타나도 건강염려증처럼 그 증상의 최악의 질병을 상상하곤 한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모든 일상이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그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게 된다. 삶이 무거워진다. 이럴 때면, 학창시절 야간자율 학습을 마치고 빡빡한 버스 안에서 들려오던 노래들을 떠올린다. 그 때 당시에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노래들도 지금에 와서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곡이 되어 버린다. 내 방식대로 잘 살아갈 방법을 터특할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너무 많은 메뉴얼이 있다. 다 지켜내기는 너무나 어렵다. 내게 맞는 것을 선택해서 소소하게 살아가기로 해야겠다. 내일도 눈이 내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리는 눈발을 사진으로 남겨둬야겠다. 봄이 오기 전, 마지막 눈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내일도 부디 평온한 나날이 찾아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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