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온 이후, 스테로이드를 이틀에 한 번, 반알씩 복용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스테로이드제를 먹었는데도 턱관절이 뻐근해서 예전에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입을 벌리고 턱 스트레칭을 했더니 마치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뻑'하는 무서운 소리가 났다. 마치 달라붙었던 턱관절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조금 있다가 괜찮아졌지만, 손가락 또한 유달리 뻐근했다. 아마도 전날 퍼머를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퍼머나 염색을 했을 때, 이틀 정도 컨디션이 평소보다 좋지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화학제품이 몸에 이롭게 작용할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며칠 지나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오늘은 스테로이드를 먹지 않는 날이라 어젯밤 잠들면서 혹시 컨디션이 오늘보다 좋지 않으면, 스테로이드제를 반알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히려 어제보다 손가락과 턱관절이 불편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어제 새벽 4시에 잠깐 깨었지만, 그래도 금방 다시 잠들어 7시까지 수면을 충분히 취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3개월 전 진료 때, 선생님은 몸이 아프면 약을 더 챙겨줄 테니까 먹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아프다'는 것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견딜만하면 버티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 헷갈렸다. 그래서 손가락이 평소보다 조금 더 뻐근한 날도 '괜찮겠지' 하면서 버텼던 것 같다. 사실 '아프다'는 것의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고, 어제와 오늘도 미세하게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진료 후, 증세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것이 약을 적게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테로이드제가 물론 유해한 부분도 있지만, 분명 류마티스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는 중요한 약이다. 염증을 가라앉힐 때 제대로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장기간 스테로이드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정량을 쓰는 것이 필요하고 처방받은 약을 제대로 먹는 일이 중요하다. 어쩌면 조금 손가락이 더 불편했던 날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면 지금보다 손가락이 더 좋아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아프다'는 것은 어느 정도를 의미하시는 건가요? 견디기 힘든 날을 의미하는 건가요?"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평소보다 더 손가락이 붓는 것처럼 느껴질 때를 의미하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미련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때로는 잘 참아내는 것이 자신을 더 해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스테로이드를 끊고 손가락이 잘 안 구부러질 때 도침을 두 번 맞으러 갔었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인대와 관절을 때어주실 때면, 사실 엄청 아팠지만 그 순간 내 영혼은 몸을 이탈해 있다고 생각하면서 통증에서 연연해 지려고 노력했다. 진료를 끝낸 선생님은 내가 일제강점기 태어났다면,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오늘은 3.1절,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서슴지 않았던 조상들을 떠올렸다. 그분들이 지켜낸 나라를 미래 세대를 위해 잘 이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로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다. 태평성대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 살아가야 하는 일, 가슴 아픈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하고 고통받은 그들의 삶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지 못한 채 지나가는 시간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철저한 자기희생을 통해 지켜내려는 것을 잘 보존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부끄럽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 제대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재미없거나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문학을 우리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일.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그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희생한 삶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켜낸 나라가 그들이 꿈꿔왔던 것처럼 안정되고 평온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느덧 시간은, 봄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다. 황토 주변에 있던 눈들도 이제는 다 녹아내리고 차가운 기운도 떠나가 버리는 듯하다. 보름 후만 되어도 맨발걷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눈이나 비 예보가 있었는데, 아직 눈이나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아마도 내린다면 포근한 기운으로 비가 올 것 같다. 얼어있던 땅을 깨우는 첫 번째 비가 될 것 같다.
오늘의 따뜻한 기온처럼 앞으로의 시간들이 모두 포근하고 따뜻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에게 봄 같은 희망적인 일들이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