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자욱한 길을 지나고 수없이 많은 터널을 지나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눈으로 뒤덮인 풍경에서 겨울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이만큼 살아온 세월의 감각으로 이미 봄날의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9시 15분에 피를 뽑고 늦은 아침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면서 사실 피검사 수치가 걱정이 되었다. 스테로이드를 끊은 후, 손가락 부기가 예전보다 가라앉는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새벽이면 부어서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지지 않았다. 왼쪽 두 번째, 오른쪽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 늘 이 손가락들은 나의 큰 과제다.
더욱이 3달 전보다 맨발 걷기도 못하고, 활동량이 줄다 보니 몸무게도 더 늘어 있는 상태였다. 만약 손가락 부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았다면 걱정은 많이 하지 않았겠지만 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료 시간이 되어 들어가 보니, 선생님이 먼저 몸 상태를 물어보셨다. 난 매치론정을 끊은 후에 손가락 부기가 가라앉는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수치는 정상 범위에 있지만, ESR(적혈구 침강속도)이 올라 있다고 하셨다. 나중에 검사 결과지를 받고 비교해 보니, 12월에는 7이었는데 17로 올라 있었다. 류마티스 인자인 RA factor는 8월에는 2.95였던 것이 10월에는 10.48이어서 걱정이었는데, 이번에는 1.46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의 걱정과는 달리 선생님은 RA 수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고, ESR이 올라간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더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부어 있는 손가락을 눌러보시면서 아직 관절이 부어 있다고 하셨고, 매치론정을 2~3일에 반알씩 먹어 보자고 하셨다. 사실 스테로이드를 끊고 싶고,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ESR이 올랐다고 말씀하시니 얼른 수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수치는 몸의 염증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류마티스는 이 염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3달 전에 받았던 매치론정 10알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10알을 더 처방해 주셨다. 총 20알을 반으로 나누면 40알, 그 약을 이틀에 한 번 먹으면 80일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는데, 늦게 오신 분이 버스 시간 때문에 바쁜데 먼저 하면 안 되겠냐고 물으셨다. 사실 3달 치의 약을 제조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런데 내 기차 시간은 그분보다 조금은 여유 있어서 먼저 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내 옆에 앉으신 분은 나에게 연이어 고맙다고 하셨고, 난 류마티스 내과를 다니시냐고 물었다. 그분은 60대로 보였고, 5년 전부터 류마티스 약을 드셨다고 말씀하셨다.
경남에 사신다는 그분은, 5년 전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관절이 다 아팠고 화장실도 두 달간 스스로 갈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무엇을 먹고 죽어야 하는지만 생각하셨다고 한다. 근처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도 듣지 않던 차에 지금 다니는 병원을 알게 되셨는데, 처음에는 2주 분량의 약을 처방받으셨고, 증세가 너무 심각했기에 스테로이드를 하루에 7알을 드셨다고 했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화장실을 혼자 갈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엄청난 양의 약을 복용했지만, 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한 알 정도 약을 복용하고 있고, 아픈 곳은 없다고 하셨다.
내 손가락을 만지시면서 처방받은 약을 무조건 잘 먹으라고 하셨고,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의 6개월치 약이 나와 인사를 나누고, 나도 3개월치의 약을 들고 약국을 나왔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출발 전에 식사를 하고, 스테로이드 한 알을 반으로 잘라 얼른 먹었다. 반알이라 바로 효과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 잠결에 손가락을 구부려보니 자연스럽게 주먹이 쥐어졌다. 스테로이드 반알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테로이드는 과용해서는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약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약국에서 만난 그분의 말씀처럼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잘 복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류마티스 진료를 기다리다 보면, 류마티스 질환의 몸 상태가 어디까지 심각해질 수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된다. 한 젊은 남자 환자는 한쪽 신발은 신지 못하고 땅바닥에 맨발로 절뚝거리며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내가 진단을 받았을 무렵, 나의 상태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한 여성분은 무릎 관절이 모두 아파 의료기에 의지해 걷고 계셨다. 병원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그분들에게도 완벽하지는 않아도 곧 자연스러운 일상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류마티스를 진단받고 난 후, 나는 분명 절망했으며 그 시간들은 힘들었다. 하지만, 염증 수치가 줄어들고 일상생활이 자연스러워지는 과정에서 평범한 삶과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블로그에 질병 상태와 감정에 대한 기록을 시작하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아들은 방학 동안 내 부족한 글을 묶을 수 있는 책 표지를 그려주었고, 나는 그런 응원에 힘입어 전자책을 만들었다. 몇 번 검토하고 수정했는데도 불구하고, 노트북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한 문장에서 반이 날아간 참사를 발견했으나 이미 발행된 시점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부족한 사람은 역시 무엇을 해도 부족한 결과를 만들어내는구나 싶었다.
올해 겨울, 브런치 스토리 작가 신청을 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었다. 사실 난 문학을 좋아하지만, 문장 쓰는 일은 늘 자연스럽지 못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문예반 활동을 했고, 수상도 많이 했지만 늘 매끄러운 글을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학원 때도 졸업 논문을 쓸 때, 교수님께 비문 지적을 받았는데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게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었던 시절이 감사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눈도 침침해지고 좋은 생각도 많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글자를 이용해서 내용을 만들어가는 매력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마음을 구체화하는 일이며,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을 시도해 보는 용기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제는 3개월 전에 꾸었던 희망 즉, 약을 더 줄여보겠다는 꿈은 깨어졌지만, 나의 오류를 알게 된 의미 있는 진료였으며, 약에 대한 생각과 내 질병에 대한 앞으로의 의지를 다지는 소중한 하루였다. 더욱이 약국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그분의 진심 어린 조언과 위로 덕분에 절망하지 않고 더 노력할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되었다.
오늘은 딸과 함께 개학 전, 미용실을 방문하기로 했다. 딸은 예쁜 단발로 자르고, 나는 단발에서 커트로 바꾸려고 한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이유도 있지만 10년에 한 번씩 커트로 자르고 싶을 때가 찾아오는데, 그 시기가 오늘인 것 같다.
또다시 새로운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