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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워플레이스 Dec 02. 2021

꿈 대신 멍, 호접멍

자기 전 10분, 멍 때리기 좋은 콘텐츠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사는 사람이 있다. 휴대폰 속 스케줄러에 늘 일정이 빽빽하고, 매일 해야 할 to do list 틈새에는 아주 사소한 것들(ex. 장 볼 리스트 따위)까지 메모와 알람을 해 둬야 지만 안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 같은 사람. 


해야 할 일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많아, 하루가 더 길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하루가 36시간, 48시간이라 한들 별반 다를 게 없다. 시간을 쪼갤 수 있을 때까지 쪼개고 스스로를 쥐어 짤 수 있을 때까지 쥐어짜다가 지쳐 쓰러져 잠 드는 게 루틴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생각이 든다. 하루 일과를 용케 소화해 내고 지쳐 쓰러져 자는 잠 말고, 하루를 무사히 마친 나를 다독이고 격려하면서 편하게 잠을 청하고 싶다고. 하루 중 잠시라도 나에게 진짜 ‘쉼’의 시간을 주고 싶다고. 


쉬는 게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나에게 잠들기 전 10분간 멍 때리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하루 종일 짊어지고 있었던 그 어떤 책임감도. 멍하게 앉아만 있으면 되는 이 시간 동안은 모두 내려놓고 쉬기로 한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10분. 지친 일상 속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기 전 10분 동안 멍 때리기 좋은 콘텐츠를 소개한다. 



세계적인 불멍 맛집 - Slow TV


구독자들은 말한다. 전 세계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장작 타는 소리는 이 집이 최고라고. 잘 들어보면 타닥타닥 자작나무가 타는 소리 중간 중간에 미세한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데 이것 역시 영상의 킬링, 아니 힐링 포인트다. 10분 동안만 바라보며 불멍하려 했는데 영상이 끝날 때까지 1시간 동안 멍을 때리고 말았다. 마치 이불 속이 따뜻하게 데워진 듯 내 공간에 온기가 가득 찬 느낌이다. 



비멍은 역시 텐트에서 - dreamy sound


비 오는 날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유난히 잠이 잘 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일정 간격으로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톡, 토도독’ 소리 때문이리라.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자동차 썬루프에서 춤을 추는 듯한 빗방울, 한옥의 툇마루에 앉아서 보는 빗물 등 ‘비’ 하면 떠오르는 각자만의 장면이 있다. 필자의 경우, 캠핑 도중 갑작스레 비가 내려 텐트 안으로 대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은 빗소리가 무척 운치 있었다. 이 영상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이 촉촉하게 떠올라 지금 내가 누워있는 곳이 내 방 침대인지 텐트 속 침낭인지 헷갈릴 정도다. 



취하는 소리술멍 – 가만히, 10 TV


뽁, 뽁 소리를 내며 막걸리가 발효되는 중이다. 분명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듣고 있는데도 살짝이 취하는 느낌이다. 밤 늦은 시간에 방송되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영상을 보며 결심한다. ‘내일 점심은 파전에 막걸리다..’. 이뿐 아니다. 맥반석에 김 굽기, 기름에 호떡 굽기, 통메밀 볶기, 인절미 콩고물 묻히기, 고등어 구이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카메라 앞에서 약 10분가량 반복적으로 구워지고 튀겨지며 볶아진다. 영상 외에는 그 어떤 설명도 자막도 배경음악도 없기에, 방송 초기에는 시청자들에게 방송 사고가 아니냐는 항의 전화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멍TV를 보기 위해 자정을 넘긴 시간에 ebs로 채널을 돌린다. 물론 먹거리만 방송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기억 속에 먹거리만 남아있을 뿐.. 



이 밖에도 숲멍, 물멍, 향멍, 바람멍 등 하루 10분, 또는 그 이상 멍 때리기에 좋은 콘텐츠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하루 10-15분 정도 멍 때리기를 하면 심장 박동 수가 안정되고 뇌를 쉬게 할 수 있어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꼭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멍을 때리는 것은 아니지만, 멍 때리는 시간이 생산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니 하루 10분이라도 멍 때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호접몽(胡蝶夢)

 

조금 진지하게 들릴지 몰라도 멍을 때리고 있다 보면 나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가 있다. 불을 보고 있으면 내가 불인지, 불이 나인지. 멍하니 비를 바라보다 보면 내가 비인지, 비가 나인지.. 하면서 말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나를 좀 더 어필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현대인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가끔씩 꿈을 꾸면 좋겠다. 꿈을 꿀 수 없다면 멍이라도 때리면 좋겠다. 나비가 되는 멍, 불씨가 되는 멍, 빗방울이 되는 멍.. 그러다 보면 몸과 마음이 조금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아, 막걸리 효모나 구운 고등어를 보며 때리는 멍은 다음 날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데 큰 도움이 되므로 이 점 업무에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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