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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워플레이스 Feb 24. 2022

오버 더 레퍼토리

틀을 깨는 시나리오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내 얼굴이 노화되는 속도만큼 세상은 빠르게도 변해가는데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레퍼토리 말이다.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새벽에 남기는 문자 ‘자니..?’는 지겨울 만큼 진부한 레퍼토리이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강력한 한 방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남자 주인공이 헤어졌던 여자 친구에게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소금을 내던졌던 장면은 무척 신선하면서도 강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헤어진 연인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자니?’ 대신 분무기 뿌리는 연습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것이 바로 콘텐츠의 힘이 아닐까 싶다. 무수한 콘텐츠를 보고 자라는 요즘 세대들에게 조금 더 재미있고 건강한, 다채로운 인생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크리에이터들의 작은 의무라면 의무이기에, 지금까지 봐 왔던 진부한 레퍼토리에서 조금 벗어난 아이디어 몇 개를 분무기 뿌리듯 흩날려보려 한다. 치익 칙-


Unsplash Ⓒcherry laithang


혼자 있고 싶을 때는 Bar?


Bar에 가서 혼술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진정한 애주가이거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케이스라 짐작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희한하게 꼭 한 번씩 잠수를 타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을 발견하는 단골 장소는 다름 아닌 Bar 테이블. 멋지게 차려 입고 촉촉한 눈으로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처음 보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고, 그를 정중히 거절한 후엔 결국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한다. ‘자니..?’


Unsplash Ⓒaaron burden


이제는 진부한 자니의 마법에서 벗어나, 홀로 언덕 위에서 연을 날리는 주인공을 떠올려보자. 꼭 언덕이 아니더라도 바람이 잘 부는 공터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끝도 없이 풀어지는 실타래와 저 멀리 꼬리를 흔들며 춤을 춰 대는 연을 보면 주인공뿐 아니라 보는 이들까지도 가슴이 뻥 뚫리지 않을까? 혼술 대신 혼연. 얼마나 건강하면서도 건전한 취미인가. 이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은 홀로 있고 싶을 때 지하로 내려가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어질 것이다.


Unsplash Ⓒalisa anto


라탄 바구니 달린 자전거?


‘자전거를 탄 주인공’을 상상할 때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라탄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탄 주인공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특정 이온 음료 CF를 보고 자란 세대일 확률이 높다. 경험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긴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것은 생각보다 더 거추장스럽다. 게다가 라탄 바구니가 달린 파스텔 톤의 자전거라.. 도심 한가운데서 타기에는 조금 어색한 감이 있다.

그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자전거가 있다. 시내 곳곳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따릉이’. 긴 치마 대신 딱 붙는 쫄쫄이 바지를 입고, 8차선 도로 끝에 있는 자전거 도로를 허벅지가 터져나갈 정도로 달리는 주인공을 떠올려보자. 씽씽 달리는 차에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따릉따릉 달리는 주인공의 무모한 도전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로이자 모멘텀이 될지 모른다.


Unsplash Ⓒsam loyd


퇴근 후엔 반신욕?


일도 잘하고 카리스마가 좔좔 넘치는 커리어우먼이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부한 레퍼토리라면 화장대에 앉아 귀걸이를 뺀 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반신욕을 할 것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차도녀는 집 안에서까지 차도녀 여야만 하는 것인지!


Unsplash Ⓒallison archer


차도녀 이미지에 지쳤다면,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서랍장에 고이 보관해 두었던 공주공주 핑크핑크한 파자마를 꺼내 입어보자. 레이스가 사방팔방에 달린 공주 파자마를 입고 이불에 누우면 마치 내가 정말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날은 꿈 마저도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꽃잎으로 장식된 침대는 아니더라도, 예쁜 잠옷을 입고 폭신한 이불 속에 누워 두 손을 포개고 잠을 청하는 주인공의 모습.. 상상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은가?


각본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도화지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이다. 늘 봐왔기에 익숙한 레퍼토리는 우리들의 머릿속에 장착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더 이상 마음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콘텐츠들이 탄생되는 이 시대에 맞게, 뻔한 레퍼토리에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감 가는 시나리오가 세상에 많이 탄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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