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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까 Mar 08. 2021

포르보 여행

포르보는 패키지 여행으로 핀란드에 와서는 흔히 방문하지 않는 도시이다. 도시라는 단어가 민망할 정도로 아담한 마을인데 나는 오늘까지 세 번째 방문도장을 찍었다. 처음에 혬은 포르보에 딱히 흥미가 없어 보였지만 혬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주 좋아하게 될 공간임을 100프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내 바람대로 도착하자마자 혬은 ‘와 정말 예쁘다! 와 정말 귀엽다! 와 정말 알록달록하다!’를 외쳤다. 나는 포르보 곳곳에 있는 경치 좋은 전망대, 사진찍기 좋은 골목, 분위기 좋은 카페로 그녀를 안내했다. 거주허가증을 가지고 핀란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혬은 마치 여행을 온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여행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일상? 집? 나에게도 핀란드가 일상이자 집이었던 때가 있었으나 버스로 1시간 남짓의 포르보행이 의심의 여지 없이 여행인 나에게 혬의 말이 부럽게 느껴졌다.     


 포르보에는 작은 공방들이 많다. 미니어처 소품, 장난감, 엽서, 초콜릿 등 귀엽고 예쁘지만 주로 쓸모없는 것들을 팔고 있다. 나는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오늘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수염이 달린 인형, 자동차 열쇠 주머니(나는 자동차가 없다), 마을이 그려진 나무 마그넷 따위를 샀다. 숙소로 돌아와 혬의 룸메이트 민과 보에게 수염 달린 인형을 주고 자동차 열쇠 주머니는 엄마에게 주고 마그넷은 내가 가지겠다고 생각했다.

 몇 개의 공방 중 내가 좋아하는 공방이 있다. 거기엔 말이 많고 친절한 할머니가 주인이다. 작년 겨울,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쭈뼛거리며 좁은 가게를 구경하던 나에게 한국에서 왔냐며 자기 아들이 ‘ㅅ’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본인 아들의 학력, 거주지역, 직업, 결혼생활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한 핀란드 청년의 생에 대해 나는 꽤 잘 알게 되었다. 가게 한 켠에 있는 열쇠고리를 보고 여기 뭐라 적혀있냐 묻자 가족호칭이라며 그것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고 나는 20분 만에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족호칭을 마스터했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반가워하며 들어가서는 작년에 여기 와서 당신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아들 이야기를 또 들려주었다. 그는 1년 새 코펜하겐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는 새로운 소식도 얻었다. 혬이 열쇠고리를 만지작대자 우리에게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족 호칭을 가르쳐 주었다. 종종 핀란드어를 섞어서 말을 했기 때문에 대화의 완성도는 70프로 언저리였지만 나는 그녀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면서 말과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그녀를 오랫동안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겪지 못한 것보다 이미 겪었던 것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작년에 포르보에 왔을 땐 눈이 오고 너무 추워서 날씨 좋은 날 포르보에 또 오겠다고 했는데 오늘도 흐렸고 눈이 왔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가게를 떠나는 혬과 나에게 Nice to see you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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