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문구 <서울 모닝단> 전시 후기
<서울 모닝단>은 소소문구에서 새로 런칭한 ‘모닝북’ 노트에 아침 글쓰기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다. 덕수궁길 ‘소정동’에서 진행 중인데 전시관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덕수궁의 가을이 아침을 더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모닝북’은 8주간 매일 3페이지의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다. 구성을 보면 인트로 페이지에 시작과 끝 날짜를 적고, 본문 내지는 63일 치의 모닝 페이지를 담는다. 매일 날짜, 시작과 끝 시간을 적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한 귀퉁이에 아침 해가 그려져 있는데, 한 페이지씩 채우다 보면 아침해가 조금씩 차오르는 디테일이 귀엽다.
전시장에는 모닝북 노트의 특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해당하는 내용의 디테일이 패널 아래에 비치되어 있다.
질문지를 뽑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나중에 글쓰기 체험을 한 후 열어보게 된다.
노트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벽 한쪽에 '아침을 여는 물건들'이 큐레이션 되어 있다. 여기에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아서 한참 살펴보았다. 그리고 저 사과 문진을 결국 샀다...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전시관 중앙에 자리 잡은 커다란 테이블에서 모닝북을 직접 써보는 체험을 한다. 나는 이 경험이 가장 좋았다. 두 명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실제 예약도 시간당 2명까지만 가능하다. 나는 혼자 관람하여 더 차분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각각의 자리엔 아침을 깨우는 물건들과 모닝북의 샘플 페이지가 놓여있다. 물건들을 감상하고 만져보고 나의 아침을 상상해보고, 그다음에 글을 썼다.
세 페이지가 많다고 느껴졌는데, 쓰다 보니 채워졌다. 생각보다 몰입하며 쓰게 되었다. 고개를 들면 덕수궁이 보였고, 이 공간엔 나 혼자만 있었고, 새소리와 물 따르는 소리 등 ASMR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줬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위에 뽑았던 질문지를 펼쳐본다. 내가 뽑은 2개의 질문지는 "오늘 쓴 느낌표의 개수는?"과 "'해야겠다'로 끝나는 문자이 있나요?"였다. 질문을 받고 흥미로웠던 건 느낌표는 하나도 없다는 거였고, '해야겠다'는 문장을 5개 썼는데 그중, '책상을 사야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는 점이다. 이건 전날 들었던 팟캐스트의 영향이 있던 것 같은데, 이 질문지를 뽑고 나니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시관을 나오며 남편한테 책상을 사겠다고 통보했다. (다음 주말에 사러 가기로 했다.)
이건 내게 중요한 발견이었는데, 차분하게 글을 쓰다 보니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모닝북의 태그라인 '새로운 발견은 나의 기록으로부터'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며 나의 아침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아침에 키워드를 붙인다면 #허겁지겁 이라고 써주고 싶다. 나의 아침은 '해치우는' 시간에 가깝다. 아이가 일어나면 화장실에서 쉬-를 시키고, 아침밥을 차려주고, 나갈 채비를 돕고, 나도 후다닥 나갈 채비를 한다. 모닝단 공간에서 경험한 차분한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아침을 보내고 있다.
더 나아가 어떤 아침을 보내고 싶은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아침을 보내려면 내가 어떤 습관을 기르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도 같이 생각했다. 나는 현실적으로 그런 아침을 보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디깅노트의 전시 <아임 디깅> 전을 관람하면서도 느꼈지만, 소소문구는 단순한 문구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전달한다. 디깅노트 전시에서는 '쓰는 사람을 위한 도구'로 17명의 '쓰는 사람'의 100일간의 기록을 쓰는 예시로 보여줬다. 그리고 이번 <모닝단> 전시에서는 관람자에게 직접 써볼 수 있게 체험형으로 기획했다. 아침 글쓰기를 혼자 하기 어렵다면, 함께 해보라고 '모닝단'이라는 모임도 꾸렸다. (전시관에서 신청할 수 있다.)
<모닝단> 전시에서 유도한 총체적인 경험을 하고 난 후 모닝북을 구매하면, 단순히 노트 한 권을 산 것이 아니라 아침 루틴, 나만의 기록, 발견의 시간, 몰입감 등 다양한 가치에 대한 다짐과 기대감을 함께 가져간다. 확실히 체험형 전시가 주는 만족감과 몰입감이 남다르다.
*디깅노트 <아임디깅> 전시 후기: https://brunch.co.kr/@sooscape/81
책상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이 마음을 증표로 남겨두고 싶었다. 내 책상에 이 사과를 올려두면 작업 효율이 높아질 것 같은 알 수 없는 샤머니즘적인 믿음이 생겼다. 영롱한 빛깔도 아름답고, 역사적으로 사과와 다양한 관계를 맺었던 천재들과 어떤 연결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이 긴 후기를 남기고 반전은 모닝북을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 샘플 페이지를 세장 써보니 정말 좋은 경험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나의 아침에는 매일 그 분량을 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침에 기록을 남기면 좋을 것 같다는 점에는 설득이 되어 나의 아침 기록을 위한 노트를 한 권 구매했다. 소소문구의 데일리 로그 선라이즈 노트는 아침에 간단히 할 일을 적어두고 옆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게 내 라이프스타일과 더 맞아 보였다.
노트를 사자마자 전시에서 받은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두었다. 아침에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끄적끄적 오늘 해야 할 일과 오늘의 다짐과 간단한 생각과 감정을 적어보았다. 요정도는 매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시는 12월 5일까지!
예약하기: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02259/items/4149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