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내 방에는 당연하게 책상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책상이 없어졌다. 내 방도 없어졌다. 신혼집은 방 2개에 거실과 부엌이 있었다. 큰 방은 침실로 썼고, 작은 방은 수납을 위해 썼다. 창고 같은 방이었다. 나도, 남편도 독방이 없어진 셈이다. 그 후 이사를 해서 우리는 이제 방이 3개인 집에 살고 있지만, 그 사이 가족이 한 명 늘면서 방 하나는 아기 방이 되었고 나와 남편은 여전히 독방이 없다.
그래도 남편은 이사를 하며 책상은 생겼다. 이사를 하던 무렵 회사를 그만두며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상을 사게 되었다. 여전히 방은 따로 없어서 거실에 한 공간을 내어주고 그곳에 남편의 책상을 두었다.
나는 책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혼집엔 내 방도 없고, 공간도 부족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업무는 회사 사무실에서 했고, 집에 오면 쉬어야지 책상에 앉아 일을 하게 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끔 있긴 해도 식탁에 앉아서, 혹은 소파 앞 티테이블에 앉아서 처리했다. 취미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트를 만들거나 가죽공예를 할 때도 나는 책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도 식탁에서 일했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나는 이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책상이 없었다. 하지만 책상이 없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고, 별로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전 듣똑라 팟캐스트를 듣다가 하이킥 시리즈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전부 책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 그랬네. 여자 고등학생도 방에 책상이 없어서 화장대에서 공부를 했고, 여자 한의사도 방에 화장대는 있는데 책상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많은 드라마에서 집에서 사색하는 장면이 나올 때 기혼 남성은 서재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기혼 여성은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지우거나 거울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사색, 연구, 성찰 등 책상에서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을 생각해보면, 책상 없음이 상징하는 것이 너무 서글펐다. 화장도 안 하는 내가 왜 화장대는 두면서 책상은 없는 걸까. 우리 아이가 자라 책상 없는 엄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키울까.
그리고 며칠 뒤 서울 모닝단 전시를 다녀왔다. 덕수궁의 가을이 보이는 큰 책상에 혼자 앉아 글을 쓰며, 나는 아침에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겐 책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모닝단 책상에 놓인 사과 문진과 몇몇 소품들을 보며, 나도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날의 글쓰기에 책상을 사야겠다는 이야기만 3번을 썼다.
그날 전시장 책상에 놓여있던 사과 문진은 결국 사버렸다. 원래 이런 류의 물건은 잘 안 사는데, 그냥 그날의 결심을 기념하고 싶었다. 책상을 꼭 사서 이 사과를 책상 위에 올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과가 내 책상에 놓여 있으면 뭐든 잘할 것만 같았다.
이날 전시장을 나오며 남편에게 책상을 사야겠다고 통보하였고, 오늘 드디어 같이 사 왔다. 안방에 쓰지도 않던 화장대를 처분했고 그 자리에 책상을 넣었다. 그리고 내 책상에서 처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책상을 샀다는 글을. 이 가구 하나로 나는 오늘부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늘 생활하는 이 공간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진다. 책상 옆에 놓인 사과 문진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설렌다. 나는 앞으로 좋은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주말에 썼던 글인데 '오늘'이라는 표현을 남기고 싶어서 수정하지 않고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