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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May 02. 2023

체크인 체크아웃

누구도 체크아웃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직장이란


직장을 아주 객관적으로 정의한 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의 캐릭터를 먼저 설명하자면 호불호가 꽤 명확하고, 좋은 날 크게 웃을 줄 알고, 결정적인 순간에 불 같이 화 낼 줄 아는 그릇 사이즈가 나름 있는 편이고, 관운이 좋아서 40 초반에 임원도 달고, 두 개 회사에서 CFO도 하고, 전혀 다른 업종에서 대표이사도 되고, 몇몇 월급쟁이 후배들에겐 좋은 롤 모델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40 중반 넘어서도 후배들보다 빠르게 쉼 없이 성장하던 선배는 늘 '운의 총량'을 경계했다.

누릴 수 있는 '운'이 무한하 지 않다는 것을 가끔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골프 경기를 하기 전 퍼팅 연습도 딱 몇 개만 한다. 그리고 "너무 많이 넣지 마라, 나중에 안 들어간다." 연습할 때 너무 많이 '운'을 다 쓰면, 본 경기에 쓸 '운'이 없을 수 있다는 얘긴데, 매번 유사한 맥락에서 하는 레퍼토리 같은 농담이겠지만 관운이 좋은 사람이다 보니 이런 얘기들이 꽤 괜찮은 철학처럼 들린다.


한 사람이 평생 먹을 수 있는 식사 량, 누릴 즐거움의 크기, 우연히 찾아오는 복의 빈도 이 모든 것이 한 인생을 놓고 보면 분명 '총 량'은 있는 것은 팩트에 가깝다. 물론 막연히 오늘 줄여서 먹고, 참고, 불운하다 하여 내일 복이 온다는 뻔한 얘기는 아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완벽하지 않고, 외부 환경이나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으며, 그 불완전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이라는 경기를 쉼 없이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통해 견뎌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허름한 노포에서 나온 띵언


그 선배가 시가총액 2조짜리 코스닥 기업의 대표로 임명되고 육 개월쯤  지난 어느 날, 이제는 상권이 다 죽은 방배동 카페 골목의 아주 소박한 오랜 단골 식당에서 소주 한잔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추억을 안주 삼아 격 없이 대화할 수 있었던 선배가 영전을 하고 나니 축하의 마음과 더불어 말을 좀 가려서 해야 할 것 같은 거리감도 들었다.


자전거 헛바퀴 돌듯 겉도는 얘기들이 빙빙 돌다가 문득 선배의 띵언이 나왔다.

"직장은 그냥 호텔이야, 숙박업소야. 누구도 호텔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5성 호텔에 묵던, 여인숙에 묵던, 언젠가는 다 Check out 해야 해. 5성 호텔이 아무리 좋아도 Check out, 누추한 숙소도 곧 Check out 다 때가 되면  Check in  하고 Check out 하는 거야. '나는 요즘 매일매일이 소풍이다' 생각하며 지낸다. 예전처럼 화도 안 내고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지낸다."


순간 그 의미 없이 헛바퀴 돌던 그 공간에 뭔가 괜찮은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지! 숙박업소였지, 좋은 방 예약했다고 Check out전에 필요 이상 아쉬워할 이유도 없고, 나쁜 방을 Check in 했으면 미련 없이 Check out 하면 그만인 것이지...'


사실 삶은 그리 간단한 함수는 아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련을 만날 수 있고, 사회적 책임이나, 가장으로서의 의무, 사건 사고와 같은 불가항력들이 꽤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본인  커리어의 화양연화를 보내고 있는 K-중년 남자의 입에서 제법 괜찮은 직장에 대한 명언이 탄생했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아브라카다브라


그 후로 나는 이 호텔론을 참으로 많은 자리에서 써먹었다.


무릇 직장이란 5성급 호텔이던, 2성급 여인숙이던 반드시 Check in후에 Check out 하는 숙소와 같은 것. 우연히 스위트 룸으로 업그레이드되거나, 오션뷰를 만나도 내 집으로 착각 말자. 창문이 없는 답답한 방을 만나도 끝이라 생각 말자. 언젠가는 Check out 하게 되니.


소주 좋아하고, 순댓국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CK.

그날 이후 형님 덕분에 내 것이 아닌 것을 혹시라도 내 것으로 착각하지 않는 삶의 정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오늘의 소명을 다하며 거침없이 Check in 후 미련 없이 Check out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5성 호텔 스위트룸 Check out 이후의 여정에도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드라마들이 펼쳐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아브라카다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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