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악과 사람이 있는 풍경 #4]
캐빈에 컴퓨터가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2006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 날, 가게에 있던 사람들은 바 옆에 설치된 컴퓨터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21세기에 컴퓨터를 보고 신기해하다니.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도 캐빈에서는 낡은 오디오로 <별밤>과 같은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거나 몇 장 되지 않는 음악 시디를 반복해서 틀었던 것이다. 음악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고, 선곡한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컴퓨터로 음악을 선곡하는 사이, 지금까지 컴포넌트 안에서 수백만 번은 돌았을 시디들은 바 안쪽의 수납장에 넣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캐빈에 출입하게 된 것은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였다.
맥주 생각이 간절했던 어느 날, 언젠가 아는 선배가 소개해 준 술집이 생각났다. 생맥주가 맛있고 가격이 저렴한 데다 분위기도 좋은 곳이라고 했다. 선배의 말이 떠오른 나는 망설이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게 2005년 12월의 일이다. 선배는 술집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고, 다만 골목 어디쯤에 있는 지하 술집이라고만 말했다. 선배가 말한 골목에 이르자 'CABIN'이라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작은 가게였다. 테이블은 다섯 개밖에 없었고, 열댓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바가 가게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었다. 바 가운데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맥주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막 쏟아 부은 얼음들이 조명에 반짝였다. 손님은 나뿐이었다. 실내 분위기는 조명 때문에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주인은 중년 여성이었다.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 일행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혼자라고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술은 세계맥주와 생맥주 두 종류인데, 저기 바에 있는 맥주를 뽑아 드셔도 되고, 생맥주를 주문하셔도 돼요. 안주는 기본 안주가 나가고요.”
출입문에서 멀리 떨어진 바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낡은 스피커에서는 한참 전에 유행했던 김경호의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주인은 내게 맥주와 안주, 재떨이를 가져다주고는 이내 카운터에 앉아 낡은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를 시청했다. 나는 그날 한 마디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다 한 시간쯤 뒤에 가게를 나왔다.
이런 시간들은 그 뒤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캐빈에 찾아가면 여전히 김경호가 자신의 철 지난 히트곡을 반복해서 불렀고, 사장님은 맥주와 안주를 내온 뒤 텔레비전을 보거나 카운터 뒤에서 책을 읽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따로 인사를 한 적이 없음에도, 좁은 공간에서 자주 맞닥뜨리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즈음, 나는 무슨 일인가로 심히 지쳐 있었고, 자극적인 공간보다는 차분히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시끄럽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반복되는 음악이 귀에 익는 동안 내 마음과 육체도 캐빈에 길들여졌다. 어두운 붉은 조명과 삐걱거리는 나무의자. 그리고 외부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화장실에 갈 때마다 풍기던 건물 1층 기름가게의 석유냄새가 좋았다.
사장님이 가게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캐빈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몇 주쯤 지나 서다. 사장님은 내가 첫 손님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원래는 전주에서 오랫동안 중국집을 운영했고, 서울에 올라와 우연히 가게를 인수하게 되었다고 했다. 술집을 운영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나는 자주 가게를 찾았고, 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이 고등학교 때까지 문학소녀였다는 것부터 사장님 남편이 프러포즈를 한 이야기, 운동선수인 아들의 대학 진학과 관련한 고민들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처음 가게에 발을 들였던 날의 이야기까지.
“혼자 들어오는데, 표정이 엄청 어두워 보였어요. 사실 가게를 맡은 뒤 혼자 오는 손님은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술집이니까 그럴 수도 있나 보다 했죠. 중국집에 혼자 찾아와 조용히 자장면을 먹고 가는 사람이 있듯 여기도 그렇구나 하고요.”
사장님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손님들끼리도 친해졌다. 사장님은 이 시기 캐빈에 출입하던 손님들을 1기 멤버라고 불렀다. 사장님이 인수하고 처음 발을 들인 단골들이라는 얘기다. 사장님은 단골 관리 겸 손님들에게 가끔 문자를 보냈다. 새해 인사나 이벤트를 알리는 문자들이었다. 내용은 늘 달랐으나 마지막 문구는 변함이 없었다.
늘 행복하세요 - 캐빈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김경호는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전에도, 그 전에도 반복해서 불렀던 노래들을.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서 캐빈에 차츰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가게가 꽉 차 그냥 돌아서야 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
어느 날인가, 나는 CD 한 장을 들고 가게에 찾아갔다. 이왕이면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듣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몇 곡의 노래를 시디에 담았고, 그 음악이 흐르는 동안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가게에 시디를 들고 간 뒤로 변한 게 있다면, 김경호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과 내게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시디를 들고 갔는데 사람들이 따라 부른다거나 그 노래에 대해 호감을 표할 때, 나는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남몰래 미소 지었다. 물론 모든 반응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The Blower's Daughter>가 흘러나올 때, 노래를 듣던 손님 중 하나가 자기 일행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야, 이 노래 나오는 영화 봤어? 클로져인가 하는 영화인데. 열라 짜증 나. 보는 내내 짜증 나서 미치는 줄 알았어.”
그 말이 어쩐지 나를 평가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맥주를 들이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시디를 구워오기 시작했다. 서로 음악 취향이 비슷하면 그 손님들끼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지기도 했고, 그러다 손님들끼리 술을 더 마시거나 노래방에 찾아가기도 했다.
오래전 선배가 내게 일러준 술집이 캐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선배가 말한 술집은 골목 더 안쪽에 있는 다른 가게였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사소한 실수라는 것도 인연과 운명의 다른 모습인지도 몰랐다.
“오빠는 왜 늘 혼자와요?”
“어! 나 사람들이랑 자주 오는데…….”
“어휴. 그런 말 아닌 거 알잖아요. 대부분 혼자 오니까 묻는 거죠.”
한 번은 이것저것 묻기 좋아하는 S가 특유의 높은 톤으로 불쑥 말을 걸어왔다. 나는 혼자 앉아 있었고, S는 다른 일행 세 명과 함께였다.
S는 캐빈에 출입하던 또 다른 손님이었다. 그때 스무 살이었던 S는 캐빈 근처 큰 병원의 종합검진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뜻밖의 질문에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S의 일행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나도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 내가 정식으로 인사한 것은 S 뿐이었지만, 나는 늘 S와 함께 가게에 찾아오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긴 생머리를 등 언저리까지 기르고, 늘 창백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 S와 다른 일행들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게, 항상 듣기만 하거나 가끔 호응해주기만 하는 사람. 그녀와는 늘 눈이 마주치곤 했다.
“어쩐지 혼자인 게 편해서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면 늘 그들의 시간에 맞춰야 하잖아요. 나는 이 만큼 마시면 됐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어떤 의무감 같은 게 나를 무겁게 짓눌러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도 느끼고…… 그냥 혼자 음악을 듣고, 생각하면서 마시는 걸 좋아해요.”
나는 S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말했지만, 내가 말하는 동안 S 옆에 앉은 그녀가 나를 슬그머니 쳐다보고 있으며 또 내 말이 끝났을 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대화를 한 뒤에 그네들의 화제는 다시 그들의 병원 이야기로 돌아갔다. 나도 그쪽에 관심을 끊고 내가 구워온 시디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사장님은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다 가끔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봤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2주쯤 뒤였다.
어쩐 일인지 가게에 손님이 없었다. 사장님이 내 앞에 재떨이와 맥주를 내려놓는 사이, 나는 시디를 골라 오디오에 넣었다. Eva cassidy와 Elliott Smith…… 담배를 피워 물었고, 깊게 빨아들인 뒤 길게 내뱉었다.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캐빈의 출입문이 열리고 그녀가 가게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이런 바를 혼자 찾은 게 처음이었는지, 그녀의 표정에서 조금은 경직되고 어색한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앞쪽에 앉았다. 정면은 아니고, 의자 두 개 정도 비낀 자리였다. 그녀는 데낄라 슬래머를 주문했다. 사장님이 그녀에게 맥주를 가져다주는 동안 그녀와 내 시선이 어색하게 마주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낮은 음악소리와 사장님이 보고 있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목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급기야는 시디가 다 돌아가 음악마저 끊겨버렸다. 이상하게 조용하네요. 나는 사장님에게 말을 꺼냈다. 사실 나는 좀 허둥대고 있었다. 다른 시디를 꺼내 오디오에 넣은 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 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기타 반주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그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몇 마디 주고받게 되었다. 한 공간 안에서 몇 번이나 마주친 사람들끼리 가능할 소통이었다. 둘 사이의 어색한 간격은 드라마 시청을 마친 사장님이 채웠다. 사장님에게는 그녀나 나나 다 같은 단골이었다.
“클로져라는 영화 좋아하세요?”
그녀가 불쑥 질문을 했다. 좋아했던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인상적인 영화라는 생각은 했지만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영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그 영화를 봤던 순간들 - 조금은 추웠던 실내, 짓눌러 꺼버린 담배꽁초와 부유하는 담배연기 같은 것들. 그리고 내 어깨에 드리워진,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어떤 이의 그림자.
“그냥 애증관계라고 해둘게요. 이 음악을 들으면 사랑과 고통이 함께 느껴져요. 사랑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이제 거의 다 지워졌다 여겨지는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람은 때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훗날 기억이 될 어떤 시간들을 다른 대상에 투영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밀번호를 찾기 위한 질문과 답처럼. 비밀번호는 바뀌더라도 질문과 답은 변하지 않고 따라온다. 나 또한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 노래에 투영된 대상은 이제 없지만, 노래 그 자체는 기억에 채워진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처럼 남아 있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어쩐 일인지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걱정거리를 떠올린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약 이십 분쯤 뒤에 나는 계산을 하고 나무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밖으로 나갔다.
거리는 조용했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잔뜩 웅크리며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캐빈 출입구 근처 담벼락에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어쩌면 오래, 그 어둠을 응시했다. 고백하자면, 그 순간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그 초겨울부터 봄까지였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내가 어둠을 응시하던 그 순간에 예상했던 것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아니, 그때에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녀와 지낸 시간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게다. 우리는 아주 가끔 만나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고, 그러고 나선 내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이런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나 S, 그리고 캐빈 사장님에게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장님은 알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관계를 확정 지은 적은 없지만, 나는 그녀를 내 기억의 틀 안에 넣었던 게 분명하다. 대상 없는 질문과 답, 자물쇠와 열쇠가 공허하게만 느껴졌던 탓이리라. 공허를 견디지 못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워버린 나는 분명 어렸다. 그러나 그녀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던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고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 그때 문득 이렇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
우리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기 얼마 전쯤에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도무지 우리 관계를, 그리고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이다. 그때 나는 그녀가 말해준 덕분에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만나온 남자에 대한 이야기, 예정된 그와의 결혼, 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그 와중에 불쑥 나타난 나라는 사람,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내뱉은 말들. 이런 삼류 드라마 같은 이야기,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
“그 말은 오래전에 알던 사람이 했던 말이거든. 사랑과 고통의 무게에 대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 나를 누르고 있는 것들을 모두 벗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우리가 헤어지기 얼마 전, 나는 잠시 외국에 다녀왔다. 나는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 그녀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
방금 전화했는데 받지 않네요. 아니면 휴대전화 벨소리를 줄여놓아서 못 듣는 것일 수도 있지요. 우리가 이야기할 시간은 이제 없을 거 같군요. 혹 내가 내일 전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당신은 잠들어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깨어 있어도 비몽사몽 상태겠죠. 내 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공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소음과 시간에 등 떠밀려 간신히 간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고작이겠지요. 그래서 편지 씁니다.
점점 빗줄기가 거세집니다. 이 비가 그치면 온 세상이 따스해지고, 이제 봄이 오겠지요.
최근 며칠이 내게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늘 고통 속에 아파하면서 그리던 꿈같은 시간들. 그런 만큼 나는 너무 복잡하고 또 어지럽습니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 걸까요. 행복하면 그걸로 끝이라면 좋을 텐데, 어째서 나는 내 안의 욕망과 욕심 때문에 스스로를 어지럽히는 걸까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당신은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돌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너무 무서웠습니다. 나도, 당신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존재라면, 그 부유하는 존재들이 만났을 때에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나는, 당신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이 편지를 쓰는 내내 당신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바닥에 떨어진 이 빗물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요. 어떤 것들은 바다로 가고, 어떤 것들은 땅 깊숙이 스며들어 자연 속 생명들의 근원이 되고, 또 어떤 것들은 공기 중으로 증발하겠지요. 당신을 향한 마음은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말고 내 안에 고이 머물러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편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계는 나아질 것이 없었다. 모든 일이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녀는 기억 속의 방, 대상은 사라진 채 사랑과 고통이라는 단어만 떠돌고 있는 방에 나를 넣어놓았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지금의 혼란 속에서 길을 찾고, 어둠을 밝히고, 사랑과 고통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던 걸까?
그 당시에 나는 그것에 대해 아니라고,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나의 단단한 기둥을 붙잡고 서 있어도 휘청거리는 게 인생이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그것은 일종의 투정이었고, 푸념이었고, 나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으려 한 말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내 기억과 경험의 틀 안에서 비롯한 것들이었다. 더 이상 대상을 잃고 싶지 않아서, 대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그리고 대상을 잃은 뒤 찾아올 공허를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그 해 봄, 그러니까 이런 관계를 통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또한 혼란 속에서 길을 찾고, 어둠을 밝히고, 사랑과 무게를 가늠하는 것은 더 불가능하며, 하나의 단단한 기둥을 붙잡고 서 있어도 휘청거리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그에게 돌아갔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한 번도 그녀를 그녀 자체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내 과거의 기억과 담벼락에 드리워진 어둠을 노려보며 예상했던 것들을 통해 그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지난 시간이란 언제나 한 인간에게 또 하나의 렌즈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것을 아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뒤인 것이다.
그녀가 떠나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캐빈에 갔다. 캐빈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그리하여 손님들의 시디가 모두 수납장에 넣어진 이후의 일이다.
나는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저 옆쪽에는 오랜만에 S가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나는 S의 친구들의 얼굴을 훑어봤다. 그녀는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지경이 되었다. 혹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에 그녀는 등장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S와 그녀의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는 모양인지 S가 카운터로 가까이 걸어왔다. 그런데 사장님이 그녀의 이름을 대며 안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순간 움찔하며 사장님을 쳐다봤고, 그 순간 사장님은 나와 마주쳤던 시선을 슬며시 돌렸다.
“그 언니 유학 간다고 했는데, 갔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뒤로는 연락이 없어요.”
내가 들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당연히 이미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녀는 정말 유학을 간 걸까? 아니면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와 결혼을 한 걸까? 그러나 이런 것들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또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사랑과 고통의 무게를 미리부터 짐작하고 움직일 필요 없고, 또 그럴 수 없는 것처럼.
S가 가게를 나간 뒤 다른 손님들도 하나 둘 가게를 떠났다. 덕분에 나는 오래도록 침묵과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처음 찾은 이후 오랜만에 맛보는 캐빈에서의 한산한 시간이었다. 아마 곧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러는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장님이 시선을 화면에 둔 채로 내게 불쑥 물었다.
“왜 봄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하는 걸까요?”
내가 왜 그런 것 같으냐고 되묻자 사장님이 대답했다.
“나 자신이 더 초라해져 보이잖아요. 세상은 이렇게 따뜻하고 밝고 아름다운데, 나는 점점 더 초라해지는 것 같으니까.”
사장은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려 내게 동의를 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런가요?라고 대답하고는 말았다. 그 답이야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봄은 내게도 아름답지만 문득문득 세상을 가득 채운 환한 빛과 유난히 붉은 꽃과 그녀와의 대화,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그 날의 봄만 아련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은 봄 이외의 것들 - 여름, 가을, 겨울까지 불러일으키고 또한 담벼락에 드리운 그림자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며, 내게 열쇠처럼 남은 음악들, 그리고 그 음악을 듣던 나 자신까지도 불러일으켜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는 한다.
그리고 조금 다르게 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영영 오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 얼굴을 보고 확신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영영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꾹꾹 아려오기도 했다.
컴퓨터 음악 검색창에 <The Blower's Daughter>를 써넣었다. 나는 이 노래를 한동안 듣지 않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동안 잠시 생각했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리고 혹 언젠가 이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캐빈 출입문이 열리며 그녀가 들어온다면, 그때는 내 기억의 테두리가 아닌 온전한 그녀 자체만을 쳐다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