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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e Sep 22. 2015

어느 크리스마스 이야기

[술과 음악과 사람이 있는 풍경 #2]

  <풀 하우스>라는 이름의 바가 하나 있다. 

  약 스무 개 정도의 크고 작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고, 출입구 정면으로는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바가 붙어 있다. 이 가게에서는 병맥주뿐만 아니라 생맥주도 팔았는데, 술을 즐기는 내가 지금까지 마셔본 생맥주들을 전부 놓고 볼 때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맛이다. 바에 앉으면 술만 주문해도 괜찮지만 테이블에 앉으면 꼭 안주를 함께 주문해야 하는데, 같은 생맥주 한 잔이라고 하더라도 바와 테이블이 각각 그 양이 다르다. 그러니까, 이 가게의 룰인 셈이다. 


  이 가게의 룰은 또 있다. 절대 가요를 틀지 않는다는 것. 사장은 음악 마니아답게 카운터 쪽 벽 한 면을 온갖 음반으로 가득 채워놓고 음향기기를 잔뜩 설치해 놓았으나, 가게에 가요가 울려 퍼진 적은 없었다. 가끔 사장과의 친분에 은근한 기대를 걸고 가요를 신청하는 손님들이 있다. 그때에도 사장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이 가게를 지금까지 운영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절대 룰을 어기지 않는다는 거야. 바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거든. 그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이 바를 운영해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절대 깨지지 않는 룰이 있기 때문이야.” 


  사장이 문학과 음악, 영화 등 전반적인 문화에 대해 소양을 갖추고 있는데다 손님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해 혼자 바에 들르더라도 심심할 일은 없었다. 만약 대화보다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문제없다. 슬쩍 다가서서 손님의 마음 상태를 파악한 뒤 혼자 생각할 수 있게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는 센스까지 갖추고 있으니까. 손님에게 무작정 말을 거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가게가 아닌 것이다. 


  나는 종종 그 가게에 들렀다. 그러는 동안 가게 사장은 물론 직원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중 바 안쪽에서 바텐더 일을 하는 두 명의 친구와는 꽤나 친해졌는데, 둘 모두 공연 계통 일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그 두 친구와는 그들이 가게를 그만 둔 뒤에도 드문드문 교류가 있었는데, 한 친구는 가끔 거리에서 만날 때마다 형님, 형님, 하면서 아는 체를 하거나 안부를 전했고, 다른 한 친구는 자신이 스태프로 있는 공연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장은 물론 직원들과도 친해지다 보니 어쩐지 그 바가 더욱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잠시 휴식을 느끼고 싶을 때는 물론 지인들과 술 한 잔을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흔히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감기를 몹시 심하게 앓을 때, 나는 종종 가게를 찾았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에도 나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크리스마스여서 주변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들떠있었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하로 통하는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가는데, 가게에 틀어놓은 음악소리와 특유의 방향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그날 그곳에서 반가운 손님들을 만났다. 한참 전에 그만둔 몇몇 직원들이 놀러 온 것이다. 우리는 나란히 바에 앉아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늘 직원의 신분으로 이곳에  들락날락했던 그들은 손님의 입장이 되어 바에 앉자 내심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었다. 가게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특별한 날인만큼 가게의 주요 손님이던 대학생들이 연인 혹은 단체로 신촌이나 강남, 홍대 같은 주요 유흥가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사장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그곳에 있던 손님들에게는 적당히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바에 붙어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이 출입문을 향해 어서 오세요,라고 소리 지른 것은 열 시 즈음이었다.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출입문으로 들어와 우리 일행이 앉은 바로 뒤의 빈 테이블에 앉았다. 한 손에는 잘 포장된 케이크가 들려 있었고, 다른 일행을 기다리는지 주문은 미뤄두었다. 그녀는 포장을 뜯지 않은 케이크를 테이블 한 가운데에 놓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드문드문 문자를 보내거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바에 앉아 있던 우리 일행들은 어느 새 그 여인에게 신경을 쓰게 되었다. 삼십 분, 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자는 주문은 하지 않고 여전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지만 정작 통화는 되지 않는 눈치였다. 손님이 별로 없는 데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은 터라 바에 앉아 있던 우리의 목소리는 더 크게 울려 퍼졌고, 동시에 우리의 뒤편에 앉은 그녀의 처지는 더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우리가 그녀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맥주를 한 병 주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병, 그리고 또 한 병의 맥주를 비워버렸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다 흘끗 그녀를 쳐다봤는데, 그녀는 테이블에 가지런히 앉은 채 비 맞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결국 그녀의 상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맥주를 마시던 내 옆으로 상자 하나가 불쑥 지나갔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마시던 맥주를 도로 뱉어낼 뻔했다. 뒤에 홀로 앉아 있던 그녀가 나와 내 옆 사람 사이로 불쑥 케이크 상자를 들이민 것이다. 여자의 돌발행동에 놀란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멍하게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케이크 나눠 드세요.”


  바텐더를 비롯한 직원은 여자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했다. 물론 정중하게 사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에게는 더 이상 이 케이크가 필요 없게 되었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요.” 


  그래, 그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리고 아까부터 지켜보니 이 자리가 굉장히 재미있게 보이네요. 저도 합석하면 안 될까요? 이 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요.”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느낀 것이 나 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소라면 한 마디로 손님을 제지했을 바텐더나 직원들도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었다. 여자의 상황을 아는 터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그 누군가에게 바람 맞은 여자를 또다시 바람 부는 어딘가로 내쫓는 것은 너무 모질지 않은가. 그렇다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관계의 거리를, 그것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한 걸음에 성큼 건너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여자는 조금은 취해 있었는지 주변의 이목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내 옆으로 의자를 끌어 오더니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나도 내 옆에 앉았던 일행들도 이쯤 되자 다들 어느 정도는 내버려두자는 눈치였다. 여자가 어느 정도 취해있었기에 곧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몇 병의 맥주를 비워내고, 잔을 부딪치는 동안에도 여자는 쉽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 더 신나서는 여차하면 소주라도 한 잔 더 하자고 나설 태세였다. 


  더 난처해진 것은 그 다음이었다. 


  나와 술을 마시던 일행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따로 송년회를 한다며 일제히 일어나버린 것이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면서 내게 미안한 표정을, 또 한편으론 짓궂은 장난 끼가 가득 묻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감싸고 있던 동질감에 선 하나가, 그것도 바로 내 앞에 주욱 그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누굴 탓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들과 나는 옛 직원과 손님이라는, 구분이 분명한 명찰을 차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거니까.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예기치 않은 사건은 또 다른 예상 못한 사건들을 불러 온다. 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무조건 피하고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그런 상황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기심에 그런 상황으로 뛰어들 나이도 지나 있었다. 그런 상황들이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나는 그 미지의 상황이 풍기는 냄새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가 내게 알려준 프로필에 따르면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섯, 들으면 누구나 알만 한 대학교의 대학원(생물학 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에 재학 중, 이쪽 학교와 자신이 다니는 학교 사이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학교가 약 이삼십 분 거리에 있었으므로 통학에 지장을 주지는 않음, 친구가 이쪽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 자주 찾아오는 편이라는 것 등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우리가 타인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그 미지의 존재들이 비록 멀리서 볼 때에는 뭉뚱그려진 추상화 같지만, 제 각기 아주 사적이고 구체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는데 그녀가 내 프로필을 요구했다.


  “저도 그쪽처럼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나이는 그쪽보다 많고 사는 곳은 경기돕니다.”

  “경기도요?”

  “예. 늘 학교를 집인 듯 보내는 데다 왕복하는 시간도 있고 해서 대부분의 사적인 활동도 학교 근처에서 해결하고 있죠. 그래서 지금도 이 자리에 있는 거고요.”

  “그럼 아까 그 사람들은요? 일행 아니었어요?”

  “일행이라고 느꼈었는데, 아녔나 봅니다. 뭐 사는 게 그렇죠. 지금 당장은 내편이거나 절대 떨어지지 않을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는데 막상 어느 순간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쪽과 나도 일행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니까 한 덩어리.”


  나는 짐짓 못 들은 체 하며 담배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가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네요, 반덩어리씨. 메리 크리스마스!” 라며 맥주잔을 들어 내 잔에 부딪쳤다. 어쩐지 이런 식으로 끌려가면 안 되겠다 싶어 선을 그으며 대꾸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일행처럼 볼지라도 여길 나가면 서로 가던 길을 갈 거라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여기 세 사람이나 있습니다. 나, 그쪽, 그리고 저기 서 있는 바텐더요. 그리고 이제 슬슬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실을 알려줄 때가 된 거 같네요.”

  “왜요? 사람들한테 방송이라도 하려구요?”

  “아니요. 이제 슬슬 나가 볼 참입니다. 막차 시간도 다 되어가니까요.”

  그녀는 잠시 시계를 들여다봤다. 

  “그러지 말고, 우리 나가서 한 잔 더 해요.”


  그녀가 몸을 이쪽으로 기울여오며 내게 말했다. 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네요.”

  “왜요? 이렇게 우연히 만나 술 한 잔 하는 게 나쁜 건가요?”

  “좋고 나쁜 걸 떠나서 하는 얘깁니다. 모든 존재에게는 룰이라는 게 있죠. 이 가게에도 룰이라는 게 있어 세상에 넘쳐 나는 바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잘 버텨왔던 겁니다. 저에게도 그 룰이라는 게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넘쳐 나는 온갖 사건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휘청거리고 실수도 하지만 여태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죠. 지금 말한 그건 그 룰에 위배되는 일이어서 하는 얘깁니다.”

  “그것뿐이에요?”

  “뭐 그렇다고 해두죠.”

  “그럼 됐어요. 룰 따위는 집어치우고 쿨 하게 나가서 술 한 잔 더해요. 룰은 그 다음에 다시 정할 수 있는 거니까.”

  “지금 그쪽이 하는 행동에 동조해 줄 수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 쿨 하다는 말을 저는 무척이나 싫어하거든요. 그 쿨 하다는 범위가 사람마다 달라 어느 정도까지를 쿨 하다고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또 그 쿨 하다는 합리화 아래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랬더니 그녀는 노인네 같은 소리는, 이라며 술을 들이켰다. 나는 말하는 김에 이젠 정말 선을 확실하게 긋고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날 방도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쪽 처지는 잘 모르겠지만 외로움의 끝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서 이렇게 떼를 쓰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는 거죠.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막에서 극심한 갈증에 눈앞의 물을 모조리 들이켰는데, 결국 더욱 갈증만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어쩌면 다음 날 보니 그 물이 썩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구요.”

  “삼장법사의 해골물을 얘기하는 건가요?”

  “원효대사겠죠.”

  “내가 외로워 보여요? 아니면 불쌍해 보여요?”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혹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대꾸가 없어 슬쩍 옆을 돌아보니 그녀는 반쯤 눈을 깔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방금 말한 것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사람은 이런 식으로 잔인해지는 것일까. 이렇게 될 거였으면 애초에 동석하지 않은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어째서 배려한답시고 시작한 일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걸까. 어째서 이토록 서툴기만 한 걸까.

  게다가 나는 모든 말들을 내뱉고 나서야 그 말이 그녀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한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턱을 괴고 멍하니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담배만 피워댔다. 그러는데 그녀가 말했다.


  “룰이라니…… 나는 아무런 룰도 없는 여자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앉아 있는 거 같아요?”

  “……”

  “가끔 사람들을 보면 운동선수 같아요. 경기시간 내내 자기만 룰을 지키고 뛰어다닌 것처럼 요. 상대가 어떤 지는 보려 하지 않아요. 그 상대가 함께 뛰고 있는 같은 편 선수이거나 감독이거나, 아니면 경기 내내 숨죽이며 자신을 응원한 관중일 수 있는데, 마치 자신만 그 경기를 짊어지고 온 것처럼…… 이기적이에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말을 꺼냈다.

 

  “그냥 같이 나가서 한 잔 해요. 크리스마스잖아요. 게다가 난 차비도 없다구요. 집에 가서 지갑을 가져 나올게요. 내가 술을 사면되지요.”


  크리스마스…… 일 년에 하루 밖에 없는 날, 그래서 뭔가 들뜨게 하는…… 그러나 그때마다 휩쓸리며 살아간다면 어쩐지 내 삶이라는 것이 절대 내 것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냥 절대 납득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젓는 대신 지갑에서 버스카드를 꺼내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게 뭔지를 한참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지 못하고 마냥 앉아 있다가 화장실로 갔다. 그게 최선의 방법인 듯했다. 

  자리로 돌아와 보니 그녀는 가고 없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남아 있던 술을 들이켰다. 앞에 있던 바텐더는 굉장히 죄송하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과연 바텐더가 내게 미안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그녀가 내게, 내가 그녀에게 미안해야 할 일인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계산을 하기 위해 바텐더를 불렀더니, 옆에 앉았던 그녀가 모두 계산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연인들이 혹은 혼자인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크리스마스였다. 평소와 비슷한 풍경일 텐데, 크리스마스여서 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 테지.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 새벽, 그곳에 아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다신 만난 것은 그로부터 약 두  달쯤 뒤였다. 만났다기보다는 봤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학교에서 세미나가 끝난 뒤 늦은 송년회 겸 사람들과 근처 시장 쪽 정육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자리를 옮겨 간단히 맥주를 마셨다. 생각보다 자리가 길어졌고, 시간이 더 흘러 나는 막차 시간에 맞춰 먼저 밖으로 나왔다.

  거리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비였다. 사람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가게 간판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아무래도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다. 나는 우산을 사기 위해 편의점 쪽으로 뛰었다. 작은 우산과 담배를 산 뒤 밖으로 나오는데,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려던 커플로 보이는 남녀와 잠시 문을 밀었다 당겼다 하는 접촉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까닥였는데, 조금은 경계하듯 쳐다보던 여자의 얼굴이 어딘지 낯이 익었다. 그녀가 크리스마스 때의 그녀였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조금 뒤였다.

  버스정류장으로 한참을 걸어와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조금 전 커플이 버스정류장을 지나 원룸들이 밀집한 언덕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우산을 기울인 채 서 있다가 내 곁을 지나는 그들을, 아니 정확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살짝 들어 올린 우산 사이로 나를 쳐다보더니 혀를 쭉 내밀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옆에 선 남자의 팔짱을 더욱 꽉 끼면서 걸어갔다. 어쩐지 이유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고개를 돌려 언덕 위쪽을 보았다. 우산 아래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한 덩어리인 듯 보였다. 




  그 뒤로 나는 그녀의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마친 뒤 제주도로 가 오래 머물렀다. 흐르는 시간 사이에서 어쩌다 한 번씩 그녀를 떠올렸던 때가 있다. 그때에도, 맞아, 그런 일도 있었지, 정도의 회상이었다. 

  제주에서 지내던 어느 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생겨 서울로 올라왔고,  일을 마친 뒤 <풀 하우스>에 잠시 들렀다. 그곳도 예전 같지 않았다. 사장은 그대로였지만 매니저와 바텐더 등 직원들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사장님과 잠시 안부를 주고받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 칵테일 한 잔을 마셨다. 테이블은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바에도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혼자 온 여자 손님은 새로 온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는데, 바로 그녀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따로 아는 체 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산을 하러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은 어색하게 소리 없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는데 이렇게 우연히 보는 것도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저 멀리 미래에서 텔레파시를 보내듯 불현듯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잠시 앉아 있다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 내 자리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바텐더에게 누가 이 자리에 다녀갔냐고 물었더니 바텐더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우두커니 앉아 있다, 술을 한 잔 더 주문하고, 그러다 계산서를 정리하고 있는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 <전화카드 한 장>이라는 노래 틀어주시면 안 돼요?” 


  그러자 바쁘게 일을 하던 사장이 분주하던 손을 멈추고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미쳤군. 몇 개월 떠나 있었다고 가요를 절대 틀지 않는다는 우리 가게 룰을 잊은 겐가? 게다가 그건 민중가요잖아!”


  사장은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면 눈이 나빠진 겐가?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된 거야? 버스카드를 들고 전화카드 한 장을 틀어달라니, 쯧쯧.”


  나는 의미 없이 그냥 웃으며  그러게요,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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