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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e Oct 12. 2015

또 하나의 톱니바퀴

[2015 김동률 콘서트]

  *

  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2015 김동률 콘서트>


  이곳을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2008 김동률 콘서트> 때이니, 내가 이곳에 온 것도 그리고 김동률이 이곳에서 대형 콘서트를 연 것도 7년 만인 셈이다.     





  내게 ‘김동률 콘서트’는 주변 지인들마저 아는 공식 휴가다. 

  98년에 처음 간 이래로 2008년 이후로는 크고 작은 콘서트를 대부분 놓치지 않고 관람했다. 

  아, 올해 <동행> 전국투어 콘서트는 놓치고 말았다.

  그날 콘서트 장으로 가던 도중 갑작스런 업무 때문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 날 불발된 관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5년간 여름휴가도 모조리 반납하며 일을 해왔다. 이민을 가는 친구 송별 여행에서조차 기획서와 정산서를 들고 가 숙소 피시방에 앉아 하루 종일 서류를 정리했다. 그 제주에서의 2박 3일 동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고작 저녁 먹는 시간이 다였다. 그런 시간마저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이렇게 일이 있다는 것을 다행을 생각하자며 다독였는데…… 

  콘서트가 진행될 그 하루의 시간마저 가질 수 없는 그날의 나를 돌아보는 동안, 내 안 어디엔가 도사리고 있던 어둡고 깊은 구멍 속에서 울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연 시작 전, 체조경기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3일 동안 진행되는 공연 티켓이 거의 매진되었다고 했으니, 3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러 온 것이다.

  나는 티켓에 적힌 자리를 찾아 앉았다.     





  공연장의 빈자리들이 하나둘씩 채워지고, 장내가 정돈되는 사이, 

  그의 노래인 <The Concert>가 울려 퍼지고, 이내 그 노래 가사처럼 ‘불이 꺼졌’다.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시작된 그의 노래들.     




  내 인생의 첫 콘서트 역시 <김동률 콘서트>였다. 고3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크리스마스였나? 1998년 크리스마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유니텔 전람회 팬클럽 사람들과 미리 단체로 표를 구입하고, 공연 당일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연 당일,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일행을 찾기 위해 공중전화를 붙들고 ‘삐삐’를 쳤던 기억이 여태 남아 있다. 유니텔에 삐삐라니. 그렇다. 벌써 17년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전람회, 특히 김동률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와 친한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일 거다. 노래방에 가도 김동률, 술집에서 노래를 신청할 때에도 김동률, 길거리에서 음악을 들을 때도 김동률, 자취를 하면서 잘 때 음악을 틀어놓을 때도 김동률. 자취 시절 휴가를 나와 내 방에서 머물렀던 어떤 선배는 그때 내 방에서 김동률의 <벽>을 처음 들었는데, 2박 3일 동안 그 노래만 들은 덕(?)에 김동률이 싫어졌다고… (더 싫었던 것은 내가 양파 부분을 따라 부를 때였다고…)


  내가 김동률을 아니 정확히 전람회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내가 남 몰래 마음에 두고 있던 친구의 호출기로 전화를 걸면 전람회의 노래가 흘러나왔던 거다. 아마 어렸던 그 당시 내가 품고 있던 마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친구의 호출기에 전화를 걸 때마다 흘러나온 그 노래는 내 감성을 자극했다. 나는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에게 들려주며 물었고, 그 친구가 친절하게 그 노래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른 가수에 대한 평까지 내게 줄줄 들려주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마음에 둔 사람이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래는 전람회 2집에 수록된 <이방인>이었다. 그때부터 전람회에 대한, 뮤지션 김동률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김동률의 음악이 대체로 활발하고 신나기보다는 홀로 생각에 잠기게 하거나, 마음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그 무언가와 호흡을 같이 하는 음악들이라는 것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수긍하리라 믿는다. 하긴 이번 공연에서도 게스트인 이적이 나와 “이제 김동률 씨 콘서트 노래를 들으며 일어날 일은 없을 테니까, 관객분들 엉덩이에 땀띠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며 <하늘을 달리다>를 불렀을 정도니까.


  그의 음악들을 처음 딱 들었을 때 좋은 노래라기보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 횟수와 듣는 이의 경험과 시간 같은 것들이 덧씌워져 일종의 화음을 이루며 매번 새롭게 깊어지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린 시절에 전람회 노래들을 무한 반복해 들으면서, 어쩌면, 나는 무리를 지어 활발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데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학원 끝나고 혼자 근처의 바에 들러 칵테일 한 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당시에 생긴 습관이다.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음악은 어김없이 전람회였다. 그때 나는 전람회의 음악 외에도 영화에 중독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키네마 극장이나 씨네하우스, 뤼미에르 극장 등을 돌아다니며 주로 혼자 영화를 보았다. 그때 본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접속>. 영화 속 한석규와 전도연이 채팅을 하는 통신업체가 바로 유니텔이었고, 나는 다음날 바로 유니텔에 가입했다. 그리고 전람회 팬클럽에도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처럼, 지난날을 돌아보면 세상 모든 일이 단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무수히 많은 일과 요소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세상의 무수히 많은 공간을 다닐수록 톱니바퀴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더 견고해져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하는 거다. 


  마음에 두었던 친구의 호출기 멘트가 전람회의 <이방인>이었던 것,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책이 카뮈의 <이방인>이고 그 뒤로 내가 카뮈를 좋아하게 된 것, 채팅을 하다 만나게 된 한 친구가 내 호출기에 음성메시지를 저장하며 남기던 번호가 010이었던 것, 지금 내 이 메일 아이디에 대부분 <stranger>나 <010>이 들어간다는 것. 


  모든 일들은 단 하나의 이유로 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일어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그 시기에는 알아채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윤곽의 일부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바삐 움직여가는 세상에서 늘 경험과 시간은 매 순간 우리에게 또 다른 렌즈를 제공하는 법이니까. 


  그 뒤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김동률의 여러 앨범들과 수록된 노래들, 그리고 콘서트는 몇 년에 한 번, 혹은 매 순간, 내 인생의 톱니바퀴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 내 인생을 이루는 무수히 많은 시간과 사건들, 그리고 그동안 만나고 또 스쳐 지나간 사람들.


  그리고,

  내 인생의 또 다른 한 점인 2015년 10월 11일. 

  나는 또 한 번 <김동률 콘서트>에 오게 된 것이다. 


  아, 그 이후의 감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람회 시절의 노래부터 최근까지의 노래들을 부르는 동안, 함께 웃고, 열광하고, 푹 빠져 있으면서, 노래 하나하나에 담긴 기억들을 마주했던 거겠지.      

  김동률은 콘서트 때마다 기존 노래들을 편곡하여 새롭게 내놓는다. 그 음악들은 ‘편곡’했다기보다는 아예 새로 썼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의 시작을 장엄하게 연 <다시 떠나보내다 + 귀향>과 <여행+J’s bar에서>는 물론이고, 그리고 역시 이번 공연에도 함께 해준 고상지와 함께한 <배려>와 <Requiem>은 단연 최고였다. 고상지의 반도네온과 함께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까지도. 또한 이번 공연에서 나를 자극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새로 편곡된 <하늘 높이 + 고별>. 고등학생 때 홀로 밤거리를 걸으며 의지했던 <하늘 높이>와 가을에 흘러가는 낙엽처럼 길거리를 헤맬 때 듣곤 하던 <고별>이 합쳐져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앙코르곡 <그 노래>. 특히 후렴부에서 마이크를 떼고 체조경기장 1만여 관객을 향해 목소리 하나로 노래를 부를 때에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자신이 살아온 음악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때로는 자신이 지켜온 고집과 신념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회의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생을 위해 나아갈 것을 관객들과 약속하던 그.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처음에는 김동률에 열광하고,  그다음에는 지금 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과의 인연들을 떠올려보고, 그 인연의 앞뒤에 깔려 있는 또 다른 톱니바퀴들을 생각해보다, 지금 공연을 보고 있는 시간 역시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 사이에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어떤 순간들의 이유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 역시도 많이 흔들리고 있었던 거다.

  지난 한 달 사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또 지난 한 주 동안 어쩌면 내 인생을 결정지을, 아니 결정짓지는 못하더라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한 어떤 일에 대해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리고는, 사실 방황하던 중이었다. 해야 할 일은 눈앞에 쌓여 있는데, 손에 잡히질 않았다. 내 선택이 맞는 걸까,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닐까. 그런 초조함과 불안을 감추고 싶어, 즐거운 척 하기 위해, 그런 마음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일부러 더 유난을 떨며 찾은 공연이다. 그런데 그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문득 내 안의 시커먼 구멍 안에서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던 그 무엇인가가, 슬며시 다가와 미소 지으며 내 어깨를 토닥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김동률의 공연장, 객석을 꽉 채운, 언젠가 이곳을 스쳐 지났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 사이의 나.       

  우리가 갖고 있는 각각의 톱니바퀴가 돌고 돌다가 기적처럼 맞물리기도 하고 다시 떨어지기도 하는 거겠지. 인생의 톱니바퀴들이 붙었다 떨어진다 해도 그게 끝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우리들의 시간이 영원으로 남는 거다.      

  이걸로 된 거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지난 콘서트 앨범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쳐가는 풍경들을 지켜보다 조용히 눈을 감으며 되뇌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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