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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톡부부 Jun 15. 2020

[프롤로그] 말할 수 없는 비밀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남들처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능을 준비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수강신청을 통해 4년간 수업을 듣고 취직 준비를 하며 졸업과 동시에 원하는 회사에 취업도 했다. 회사생활을 하며 그다음 단계인 결혼을 생각했고 1년간의 결혼 준비 후 2014년 12월에 부부가 되었다. 결혼 후에는 적응할 때로 적응한 회사생활을 이어나갔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저녁에 마시는 맥주 한잔과 정신없는 TV 소리에 흘려보냈고 이게 맞는 삶인지 고민할 새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날의 연속이었다.

평범하지만 그 뻔한 루틴이 싫었다. 싫었지만 벗어나는 방법도 몰랐다. 무의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 인생의 내가 없는 느낌이랄까. 무엇 때문에 우린 이렇게 매일 회사를 나가고 돈을 벌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랐다. 남편과 저녁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아이를 낳으면 행복해질까?” 질문을 들은 남편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 하고 “요즘 힘들어?” 이렇게 다시 되물었다. “남들도 다 비슷하게 사니까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이 삶이 전혀 행복하지가 않아” 솔직하게 말했다. “한 달만 쉬고 싶다. 한 달만 유럽여행 다녀올까?” 무심결에 내가 던진 이 한마디에 남편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당장 여행을 떠나자는 대답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여행을 통해 달래고 싶었나 보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편은 “그럼 퇴사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현실적인 대답을 했다.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군 나를 위로해주려고 했던 걸까. 그다음 이어진 말이 너무 놀라웠다. “한 달 유럽여행 말고 세계여행 가자!” 말도 안 되는 대답에 처음엔 피식 웃음만 나왔다. 남편은 진심이었다. “당장 떠날 순 없겠지만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어. 아이가 생기기 전에 우리의 삶을 한번 살아보자. 그동안 미래를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우리를 위해 쓰자!”


생각만 해도 좋았다. 여행? 그것도 세계여행?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평범하게 살아온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 얘길 듣는다면 분명 뜯어말릴 게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둘이서 하나씩 정리하고 준비해서 떠나기 전에 모두에게 서프라이즈로 놀라게 해 주려 했다. 심지어 부모님들께도 전부 비밀로 했다. 당장 떠날 게 아니었기에 맞벌이하며 계속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책으로 세계여행 정보를 얻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루트는 어떻게 할 건지, 비용은 얼마나 가져갈 건지 얘기를 나눴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 하는 시간조차 너무 소중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덩달아 회사 생활도 즐거워졌다. 한 점포의 점장(영양사)으로 있으면서 매일 여사님과 실장님과 영양사와 고객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 보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나누고픈 마음이 절로 생겼다.


퇴직서

퇴사 날짜를 정하고 회사에 통보했다. 나는 성실한 회사 직원이었기에 팀장님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내가 임신 계획 말고는 휴직이나 퇴직 뉘앙스를 전혀 내비친 적이 없었기에 더 머리가 복잡해지셨을 테다. 한두 달만 다녀오면 다시 복직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계속 설득하셨는데 남편은 이미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더 이상 붙잡지 않으셨다. 퇴사 사유는 ‘세계여행’. 한동안 직원들 사이에 나는 이슈거리가 되었다. 후임자가 정해지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업무내용을 인수인계를 했다. 심지어 쉬는 주말에도 나와서 마감 일을 처리하고 업무를 알려줬으니 정말 아쉬움 없이 깨끗하게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부모님께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사실 고민만 하고 여행 준비에만 집중하고 아무런 어떤 액션도 취하질 않았다. 그냥 평소와 같이 만나서 웃으며 밥 먹고 헤어지고 그렇게 변함없는 딸. 누가 뭐라 해도 엄마가 하는 이야기는 철썩 같이 믿는 딸. 가끔은 티격태격해도 친구처럼 지내는 딸. 나는 그런 딸이었다. 사실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 워낙 부모님 속 썩임 없이 얌전히 커온 딸이라 실망을 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애초의 계획대로 모든 걸 정리하고 여행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말씀드리려 했다. 그래야 우리의 계획이 원하는 대로 진행될 것만 같았다.


무심결에 남편이 인스타그램에 세계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은 SNS를 잘 모르시니까 올려도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촉이 좋은 엄마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계획을 대충 눈치채신 것 같았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으니 지켜보고만 계셨던 것이다. 오빠가 퇴사했다는 걸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순간, 엄마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첫마디부터 날카로운 목소리로 버럭 화부터 내셨다.

‘너희 지금 둘 다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간다는 거야?’

어떻게 알았지? 아직 얘기한 적이 없는데? 우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둘만 계획했던 모든 일들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할 타이밍이 와버렸다.

엄마, 우린 세계여행을 떠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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