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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새댁 Jun 26. 2024

밴쿠버 똥파리와의 전쟁


캐나다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반 정도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현재의 집은 저층 콘도로, 바로 앞에 운동장과 도그파크가 있어 창밖을 바라보기만 해도 생동감이 넘쳐 기분이 좋아진다. 이웃분들도 좋고(스몰톡은 아직 많이 어렵지만) 주변에 산책하기도 좋아 여러모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비극은 5일 전, 집 앞 도그파크 주변으로 공사가 시작되고부터였다. 원래 있던 펜스를 제거하고 흙을 정비하고 풀을 다시 심는 공사로 보였다.


낮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창문에 스무 마리 가량의 똥파리가 붙어있었다. 기괴한 광경을 보고 우리는 기겁했다. 그리고 태양열로 뜨끈하게 데워진 창가에만 와글와글 모여있는 것이 의아했다.


처음에는 파리가 생길만한 원인이 집 안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화장실, 주방 후드, 쓰레기통을 뒤졌지만 파리가 전혀 없었다.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는 편이라 음식물을 방치해 둔 것도 없었고, 집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놈들은 음식에 달려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유입되었을까?


파티오 문은 잘 열지 않고, 방충망이 있는 한쪽 창문만 열고 살고 있어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었다.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안고 마트에서 버그킬러를 사 왔다. 일단 들어온 놈들이라도 제거하자. 그런데 창틀에 앉은 파리들을 향해 버그킬러를 뿌리는 과정에서 창틀 아래로 파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육안으로는 창틀 사이의 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샤시와 외벽 사이가 완전히 밀착되지 않은 걸까?


2일 차. 파리들은 좀도둑처럼 우리가 집을 비운 낮시간을 이용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단체로 창가자리를 차지하고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이날도 역시 어디서 오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집주인에게 최근 들어 집에 파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렸다. 어쩌면 주인은 이런 문제를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집 어딘가 파리가 들어올만한 곳을 안다면 도움을 받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파리가 생긴 원인이 세입자인 우리에게 있을 거라 여길까 봐 두려웠다.


입주해서부터 한 달가량을 살았지만 그동안 파리는 전혀 없었다. 집에서 본 건 갈색개미 몇 마리가 다였다. 집주인에게도 도그파크 주변으로 공사를 시작했는데 딱 그날부터 파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집주인은 트랩을 설치하고 파티오 문을 열어두지 말라는 뻔한 답변을 주었을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옆집 할아버지를 붙잡고 할아버지 집에는 파리가 없냐고 물었다.


- 할아버지는 집에 파리 없어요? 저희 집에는 며칠 전부터 파리가 많이 들어오네요.

- 파리? 파리는 전혀 없는데. 우리 집은 청소를 자주 하는 편이야. 다만 갈색 개미는 가끔 바닥에 기어 다닌단다. 너희도 한번 집을 깨끗하게 해 보렴.

- 아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이것이 우리 집만의 문제였다니. 그리고 우리가 깨끗하지 못했나? 한번 되돌아보았다. 우리 집은 먼지 한 톨 없이 완벽하게 깨끗한 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파리가 꼬일 만큼 냄새나고 더럽지는 않다.


그 누구에게서도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정답은 얄미운 파리 녀석들만 알고 있을 거다.


3일 간 매일 남편과 힘을 합쳐 똥파리들을 죽이고 시체를 처리했다. 4일 차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방충망이 있는 창문까지) 아예 열지 않고 에어컨을 틀고 지냈는데, 이 날은 단 두 마리의 파리만 발견되었다.


큰 변화였다. 집 앞의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서인지, 내가 창문을 닫고 지내서인지, 상황이 호전된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파리가 줄고 있는 추세일 거라 믿었다.


그리고 5일 차인 오늘, 파리가 단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집이 다시 쾌적한 컨디션으로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뻤다. 남편과 나는 이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사라진 원인을 여전히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초기 방역을 잘했다고 재잘댔다.


귀여운 파리헌터


작년에 B가 고층 콘도에 거주할 때는 여름철에 방충망이 없는 창문을 열어두어도 벌레 한 마리가 들어오지 않았기에 이번 일이 더 놀라웠다.


파리로 고통받는 와중에 도움을 받고자 한인 커뮤니티를 살펴보아도 파리 얘기는 거의 없었다. 다만 오래된 하우스에서는 실버피쉬(좀벌레)나 거미가 많이 발견된다고들 한다. 끔찍한 경험담을 읽어 내려가면서 집을 고르는 기준 하나가 명확해졌다.


이번 파리 습격 사건을 제외하곤 이곳에서 비교적 재미있게 지냈다. 매일 저녁 열리는 학생들의 야구경기와 잘하지 못해도 즐거운 남녀노소 아마추어 동호회의 경기를 언제든지 즐길 수 있었고, 도그파크에서 무섭게 내달리는 개를 보곤 깜짝 놀라 도망치는 우리 고양이가 마냥 귀여웠고, 짧은 영어로 건넨 인사도 환하게 받아주는 이웃들을 만났다. 이제야 이곳에 적응한 것 같은데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7월에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앞두고 있다. 그곳에서도 즐거운 경험,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기대하며, 부디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 벌레와는 되도록이면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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