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하셨으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하룻밤이 마치 삼일 같았던 기다림이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덥석 받았는데 역시나, 지원했던 회사였다. 안 좋은 결과를 전하는 연락일 수도 있기에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차분히 듣던 나는 합격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네? 정말요? 저 합격이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어로 통화한 걸 보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한인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캐나다에 온 지 3개월 만에 취업을 한 나의 첫 직장은 소규모의 한인 회사이다.
한국에서 어떤 준비를 했나?
이력서
캐나다로 오기 전, 영어 이력서 작성 관련 강의를 듣고 1:1 첨삭을 통해 근사하게 북미 스타일 영어 이력서를 작성해 두었다.
가장 큰 걱정은 전공 관련 일경력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 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엔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해왔기에 내세울만한 전문성이나 꾸준하게 쌓아온 스킬이 없다. 빽빽하게 채운 나의 이력서와는 반대로 구멍이 송송 난 이력이다.
최후의 수단
만약 내가 캐나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풀타임 잡을 구하기 어렵다면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뛰며 바리스타로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사고뭉치이다. 컵을 깨는 것은 기본이고 바닥에 원두를 쏟거나 손님 가방에 음료를 쏟는 등 온갖 실수를 혼자 도맡아 해내며, 요식업은 나와 알맞지 않은 직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일하면서 다친 왼쪽 무릎이 현재까지 말썽이다.
캐나다에서 3개월, 어떤 노력을 했나?
일단 해보기
이왕 캐나다에 왔으니 당연히 영어 많이 쓰는 로컬 회사에 가야 하지 않겠어? 전공 관련 포지션으로 지원도 해보고, 짧지만 가구매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내세워 리테일 쪽으로도 지원을 해보았다. 그러나 서류에서 통과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은 온라인으로 이력서를 제출한 후에 그 매장을 찾아갔다. 매니저를 만나 나의 얼굴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정말 합격하고 싶은 마음에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날 매니저는 아니었지만 중간관리자급 직원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레쥬메를 넣었는데 프로세스가 얼마나 걸리는지 아니?”
그는 매니저에게 나에 대해 전해주겠다고 했다. 그에게 지원번호를 알려준 뒤 기대감에 부풀어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한 채 일주일 뒤 불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영어 공부 & 친구 만들기
취업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캐나다에서는 인맥을 통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다르게 공개채용이 거의 없다.
일단 네트워크를 만들고 자원봉사 일이라도 시작하기로 했다. 영어 말하기 능력도 키우고 친구도 만들기 위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English Conversation Circle을 등록했다. 7월부터 현재까지 두 달간 빠지지 않고 다닌 결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간접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면접 D-4
면접을 4일 앞두고 잡공고, 회사 홈페이지를 뒤적이며 정보를 모았다. 이 회사는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지원한 포지션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지 확실하게 숙지했다.
인터뷰 경험이 많은 남편은 나에게 목인터뷰(Mock Interview, 모의면접)를 제안했고, 이 인터뷰 연습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 왜 이 포지션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 영어는 어느 정도 하나요?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지만, 막상 대답을 하려고 하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말에 두서가 없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 때문에 장황하기만 했다. 남편에게 피드백을 받아보니 고용주 입장에서 듣고 싶은 정답이 존재한다. 솔직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불필요한 내용은 빼고 간결한 답변을 하는 게 좋다.
답변을 다듬어 가며 매일 같은 질문으로 목인터뷰를 진행했고 하루하루 좋아졌다. 남편은 자기가 고용주면 반드시 나를 뽑고 싶다고 했다. 자신감이 붙었다.
면접 D-day
오후 4시 면접이다. 면접관련하여 정리해 둔 노트를 살펴보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과 점심을 먹었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괜히 피곤하고 기운이 없어 침대에 송장처럼 누워있었다.
"인터뷰가 빨리 끝나면 좋겠다."
10분 전에 면접 장소에 도착해서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은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한 뒤, 이제부터는 영어로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아뿔싸 한인회사라고 너무 방심했다. 영어 답변은 준비하지 못해서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한 척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대답을 했다. 문법은 죄다 틀린 것 같고, 내용도 정리가 안되는데, 뭐라도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아무 말을 쏟아냈던 것 같다.
20여분 가량의 면접이 끝났다. 영어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해 합격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해서 그런지 아쉽기보다는 홀가분했다.
캐나다에서의 첫 직장
물론 캐나다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다. 캐나다의 기업문화와 혜택, 비즈니스 영어를 경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취직이 어려운 상황에서 매월 고정지출은 나가야 하는데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캐나다에서의 경력을 쌓는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하고, 쉬는 날에는 더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직장생활은 정말 오랜만이라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간 듯, 설레고 긴장된다.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있고, 욕심부리다 지치는 것보단 꾸준히 오래가자라는 마음도 있다. 합격의 기쁨과 감사함을 가슴에 품고, 회사에 잘 적응하는 것이 수습 3개월 간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