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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새댁 May 29. 2024

새로운 시작, 놓지 못한 것들

Prologue 3.


함께 캐나다로 넘어가기로 결정한 후, 가장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짐을 정리하기였다.


한국에서 3n 년을 살아오는 동안 자질구레한 짐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20대에 자취를 해본 적도 있고 기숙사 생활을 해본 적도 있는데 보통은 풀옵션 집에서 월세를 살았기 때문에 큰 짐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번 내 손에 들어온 것들을 웬만하면 놓아주지 않는 맥시멀리스트 & 추억러버로서 자잘한 과거의 아이템들은 오름 하나를 만들 수 있을 양이다.


예를 들면,

(외출할 때는 마땅히 입을 옷이 없고, 정리하려고 하면 버릴 옷이 없는, 평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일기(라고 시작했지만 일주일을 못 가는 쪽글들), 취미로 했던 무용복과 무용신발, 소품(언젠가 또 할 수도 있잖아), 애플 제품 케이스(이건 대체 왜 이렇게 버리기 힘든 걸까?), 소형가전제품이나 액세서리 보증서, 초등학생 때부터 1년에 한 번씩 찍었던 것 같은 증명사진다발(한 장씩만 남기기로 결심했다), 심지어 영수증 다발(그때그때 안 버리면 버리는 것이 큰일이 되고 만다)

대개는 “언제가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하고 남겨둔 것들이다. 실제로 난 필요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꺼내서 사용하긴 한다. 그 주기가 3~5년이라 그렇지.






정리정돈이 어려운 이유

그날이 성큼 다가왔다. 그런데 집에는 짐이 왜 이리도 많은지. 내일 우리 캐나다 가는 거 맞지?


일단 모든 짐을 바닥에 죄다 늘어놓으니 거실과 주방이 가득 찼다. 미리미리 정리하고 버려야 되는데, 나란 인간은 게으른 천성 덕에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전날밤을 꼬박 새우게 생겼다. 아니 이건 밤을 새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나에게 가장 잔소리를 많이 했던 것도 청소, 정리정돈이었을 정도로 난 정말이지 버리는 일에는 젬병이다.


내가 쌓아둔 모든 물건에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정리정돈을 시작하면 물건들을 쭉 펼쳐놓고 앉아 하나하나의 추억을 스스로에게 혹은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다들 의미 있는 물건들이라 결국 버리지 못하고 끝난다. 그러므로 청소는 영원히 끝이 안나는 것이다.




물건들을 떠나보내는 법

출국을 앞둔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이민가방, 24인치 캐리어, 기내용 백팩이다. 여기에 안 들어가면 다 버려야 한다. 물건을 버리는 것이 마치 소중한 친구와 이별을 하는 듯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막상 버리면 잠깐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다음 이별을 마주하며 힘겹게 정리를 이어나갔다.


2019년에 이케아에서 구매한 골든레트리버 인형은 워낙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다. 난 잠이 안올때마다 이 친구를 꼭 끌어안고 자곤 했기에 애착이 있었다. 게다가 더 외로울 타지 생활을 앞두고, 자리가 남으면 함께 가고 싶은 후순위 후보로 끝까지 방바닥에 남아있었는데 결국 헤어지기로 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찔끔 났다.


힘들어하는 나를 본 B는 "나도 내가 다 산 물건들이라 애착 있고 버리기 싫어. 그렇지만 그동안 나에게 충분한 역할을 해주었으니 고마웠다고 말하고 보내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래,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보내주자.


그동안 날 많이 위로해 줬던 너, 참 고마웠어




양손 무겁게 떠납니다

엄마는 1주일 여행 가는 것처럼 짐을 싸라고 했다. 오 그렇게 하면 간단하겠는데? 하지만 캐리어를 펼친 나는 자연스럽게 10년은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 짐을 욱여넣고 있었다. 캐나다로 넘어가서 하나하나 살려고 하면 다 돈이니 정말로 필요하고 사용할 거라면 챙겨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잔뜩 담았는데도 바닥엔 잡동사니들이 꽤 남아있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미련 때문에 캐리어에 넣어둔 옷들을 몇 개 끄집어내고 그 자리에 책과 계란찜기 그리고 손톱깎이와 족집게를 야무지게 넣었다.


린 결국, 양쪽 어깨가 빠질 듯 무거운 백팩과 지퍼를 겨우 잠근 기내용 캐리어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새로운 시작이 그다지 홀가분하지는 않다. 이 짐을 짊어지고 한 달 반을 지낼 임시 거처로, 또 다음 집으로 옮겨 다닐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온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리지 못한 잡동사니들 일부는 엄마 집에 미리 옮겨두었다. 나로선 끝끝내 못 버린 아이템이라 엄마라도 써주면 좋겠지만 이제는 내 손을 떠났으니 엄마가 대신 처분해 주더라도 감사할 일이다.







집 앞마당만 왔다 갔다 했는데요




출국 전날 75L 종량제 쓰레기봉투 10개와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소파와 테이블 2개를 내다 버렸고, 이 날 하루 걸음 수로만 삼천 보(평소에 잘 걷지 않는 나로서는 기록적인 일이다)를 찍었다. 돌이켜보면, 서로 다독이고 응원하며 해냈지만 진짜 진짜 진짜로 힘들었다.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우리를 키웠던 부모님이 존경스러웠고, 이번에 정리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시는 엄마를 한사코 거절하며 우리끼리 할 수 있다고 말한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쌓아두고 살았다는 사실.


캐나다에서는 지금보다 작은 집에 살고, 더 자주 이사를 다니게 될 예정이니, 이것을 기회로 삼아 어쩔 수 없는 무소유를 실천해보려고 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 법정스님




가벼운 크로스백을 챙겨서 여행을 나서면 몸이 가뿐하니 여유가 생기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짊어지고 길을 걸으니,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는 인연이 다한 것들은 놓아주고, 소중한 것들을 곁에 남겨두고, 홀가분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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