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지다움 Nov 08. 2022

Episode 3. 첫 장사 첫 손님

엄마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 도전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나의 관찰기.



Episode 3. 첫 장사 첫 손님

 

엄마의 책 쓰기는 평소엔 진도가 잘 안 나가다 나를 만나면 급격히 속도가 붙곤 했다. 일상이 바빠  멈춰있던 엄마의 생각은 "책 쓰기는 잘 되고 있어요?"라는 질문에 다시 작동을 했고, 그럼 엄마는 다시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그중 엄마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날의 이야기는 마치 응팔(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같았다.  

     

내 나이 8살 때, 엄마는 시집살이를 청산하고 분가를 결심했다. 당시 부모님은 주머니에 단돈 10만 원, 그리고 이불과 옷가지만 챙겨서 곡성에서 군산으로 이사를 했다. 나와 6살인 남동생은 할머니 손에 남겨진 채로. 돈 벌어서 '곧' 데려간다는 약속 앞에  따라가겠다며 떼를 쓰지도 못했다. 그 후로 몇 달에 한 번씩 엄마가 다녀가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다 길가에서 목놓아 우는 거 말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젊은 부부의 유일한 재산은 건강한 몸뿐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했기에, 군인이 꿈이었던 아빠는 목재를 다루는 공장으로, 연설가가 꿈이었던 엄마는 경성고무 공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해서 받은 엄마의 첫 월급은 단돈 63,000원. 아빠의 급여는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으나 빠듯하긴 마찬가지였다. 월세를 내고, 시골에 생활비를 보내고, 최소한을 생활비를 쓰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첫 월급을 붙잡고 고민하던 엄마는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장사였다. 해본 적은 없지만,  남는 게 없는 공장 노동자보다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두려움으로 망설이기엔 생활이 어려웠기에, 엄마는 당장 목수였던 고모부께 리어카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장사 첫날, 고심 끝에 고른 품목은 사과. 도매상에서 두 박스를 사서 리어카에 실었다. 당시 사과 한 박스는 6,000원. 이윤을 남기려면 세개에 2,000원씩 팔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그 시절 엄마의 나이는 스물일곱여덟쯤이었을 거다. 단독주택이 즐비한 경암동 주택가 한켠, 사람들이 제법 다니는 곳이 첫 영업 지였는데,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리어카 장사를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었다고.


하지만 막상 사과를 펼쳐 놓고 가 까지는 했는데, 차마 “사과 사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펼쳐 놓기만 해도 누군가가 사줄 거라던 막연한 믿음과 호기로움이 쪼그라들고 기대가 불안으로 바뀌던 순간. 어쩔 줄 몰라 눈물이 나오려 하던 그때 한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엄마 장사 인생의 첫 손님.


“아줌마, 이거 파는 거요, 마는 거요?”

“파는 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엄마에게,

“아니 근데 내가 옆에서 보니까 왜 사라고 말을 안 해요?”

“사실은 제가 오늘 처음 장사하러 나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아이고... 참말로. 사과 한 봉지 주시오. 얼마요?"

"2000원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애기 엄마가 안되어 보였는지 사과 한 봉지를 사며 개시를 해준 아저씨는 한참을 발걸음을 못 떼다 지나가는 지인들을 붙잡고 서너 봉지를 더 팔아주었단다. 그 귀인 덕분에 엄마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사과 사세요"를 외칠 수 있었다고. 덕분에 준비한 사과 두상자를 성공적으로 다 팔아 냈다. 그 첫 성공 경험 앞에 나는 박수를 쳤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아저씨 손님이 참으로 고마웠다.


"근데 그 아저씨는 누구였대, 엄마?"

"몰라. 동네 사는 누군가 였을 텐데... 그렇게 집으로 가시고는 그 뒤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내 딸이 너무 안되었어서 다녀가신 건 아닐까...?

딸아, 그래도 세상이 살만한 곳이니 희망을 잃지 말아라. 라며 다녀 가신 건 아닐까?'




https://brunch.co.kr/@sh7749/59Episode 4. 장사의 신엄마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 도전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나의 관찰기. Episode 4. 장사의 신 첫 장사에, 투자한 사과 재료값을 빼고서도 약 4천 원의 수익을 낸 엄마. 쉬지 않고 한 달을 일하brunch.co.kr/@sh7749/59 




https://brunch.co.kr/@sh7749/59


  


매거진의 이전글 Episode2. 엄마의 말, 엄마의 유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