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사에, 투자한 사과 재료값을 빼고서도 약 4천 원의 수익을 낸 엄마. 쉬지 않고 한 달을 일하면 적어도 12만 원이 생긴다는 계산이 서니 엄마는 그 돈이 그렇게 크게 느껴졌다한다.
본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낯 선일이지만 해냈다는 기쁨. 당장 손에 쥐어진 돈을 보는 재미. 그 작은 성공경험들은 제대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 뒤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누비는 본격 장사가 시작되었다. 하루는 과일, 하루는 채소 또 하루는 생선. 다 못 팔면 식재료라도 쓸 수 있는 품목 위주로 선별해서 좋은 물건만 골라왔다. 그리고 그 물건이 다 팔리기 전까지는 절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켜가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단칸방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며, 5 식구가 함께 살게 된 건 내 나이 12살 때였다.
붙임성이 좋고, 특히 기억력이 탁월한 엄마는 단골을 많이 확보했는데, 그중 내 기억에 남는 포인트는 바로 ‘이름 불러주기'였다.
동네 장사이다 보니, 자주 마주치는 아주머니들은 그 집 아이의 이름을 기억했다가"00 엄마, 오늘 물건이 좋아. 이것 좀 사."라고 하면, ”어머 우리 애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라며 그렇게 좋아했다고. 아이 이름을 불러주면서 자연스레 안부를 묻게 되고, 다음에 팔 물건에 대한 시장조사와 홍보를 병행하며 고객 관리와 판매가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 이름이 헷갈릴 때면, 엄마가 그 아이 부르는 걸 관찰했다가 꼭 아이 이름을 넣어서 자연스레 대화를 했다고. 지금이야 애 이름을 부르면 ”우리 애 이름은 어떻게 아냐"며 의구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 시절은 그걸 관심으로 여기며 좋아했던 거 같다. 그렇게 한 번 고객이 된 분들은 다른 상인이 와도 안사고 엄마의 물건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언 마케팅 본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충성고객 확보 노하우에 관한 부분,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고, 고객의 기억 속에 나를 각인시키기."였다. 이 마케팅 원칙을 엄마는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거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갈치를 판매 물품으로 정한 어느 날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엄마는 '장사의 신'이 맞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군산은 배가 들어오는 항구가 있어서 물때를 맞추어 선창에 가면 신선한 생선을 도매로 매입할 수 있다. 당시 함께 장사를 하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날 그분은 갈치 두상자를 구매하고 엄마는 밑천이 부족해 한 상자만 구매했다고 한다. 각자 흩어져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 손익을 따져보니 어찌 된 일인지 두상자를 판 사람과 한 상자를 판 사람의 수익이 똑같이 8,000원. 어찌 된 일이었을까?
갈치는 은빛 비늘이 선명할수록 신선한 제품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최상의 제품을 팔려면이 은빛이 흐려지기 전 빨리 팔아치우는 게 최선인 거다. 이날 엄마는 장사전 미리 칼과 도마를 챙겨갔다고 한다. 즉석에서 갈치를 토막 내 손질까지 해서 신선한 상태에서 팔생각이었던 거다. 두 상자를 떼어간 아주머니는 별다른 손질 없이 팔았는데, 판매가 부진하니 시간이 갈수록 은빛 비늘이 벗겨지고 결국 갈치를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고.
엄마의 전략,'주부들은 손질을 어려워할(귀찮아할) 것이니, 그 부분을 해결해 주고 조금 비싸게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나만해도 손질이 안된 생선은 구매를 망설이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걸 생각하면, 엄마는 이미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앞선 사고를 장착한 분이셨던 거다.
들을수록 놀라웠던 나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대. 엄마. 대단하네..."
그런 딸의 반응에 신이 나신 엄마는"그냥 그렇게 하면 손님들이 좋아하고 물건을 잘 팔 수 있을 거 같았지."라며 또 다른 장사 에피소드를 풀어놓으셨다.
엄마의 장사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보았다.
'만일 첫 장사를 결심한 날, 사과를 팔지 못했다면 엄마는 장사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좌절하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작은 성공 경험이 엄마의 인생 방향을 바꾸었구나.'
'학력이 높은 것과 지혜롭다는 것은 같은 말은 아니구나.확실한 건 성공이든 실패든 경험이 쌓일수록 문제 해결력도 높아지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좋아지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