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 쓰기는 평소엔 진도가 잘 안 나가다 나를 만나면 급격히 속도가 붙곤 했다. 일상이 바빠 멈춰있던 엄마의 생각은 "책 쓰기는 잘 되고 있어요?"라는 질문에 다시 작동을 했고, 그럼 엄마는 다시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풀어놓으셨다. 그중 엄마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날의 이야기는 마치 응팔(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같았다.
내 나이 8살 때, 엄마는 시집살이를 청산하고 분가를 결심했다.당시 부모님은 주머니에 단돈 10만 원, 그리고 이불과 옷가지만 챙겨서 곡성에서 군산으로 이사를 했다. 나와 6살인 남동생은 할머니 손에 남겨진 채로.돈 벌어서 '곧' 데려간다는 약속 앞에 따라가겠다며 떼를 쓰지도 못했다. 그 후로 몇 달에 한 번씩 엄마가 다녀가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다 길가에서 목놓아 우는 거 말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젊은 부부의유일한 재산은 건강한몸뿐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했기에, 군인이 꿈이었던 아빠는 목재를 다루는 공장으로, 연설가가 꿈이었던 엄마는 경성고무 공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해서 받은 엄마의 첫 월급은 단돈 63,000원. 아빠의 급여는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으나 빠듯하긴 마찬가지였다. 월세를 내고, 시골에 생활비를 보내고, 최소한을 생활비를 쓰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첫 월급을 붙잡고 고민하던 엄마는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장사였다. 해본 적은 없지만, 남는 게 없는 공장 노동자보다는 그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두려움으로 망설이기엔 생활이 어려웠기에, 엄마는 당장 목수였던 고모부께 리어카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장사 첫날, 고심 끝에 고른 품목은 사과. 도매상에서두 박스를 사서 리어카에 실었다. 당시 사과 한 박스는 6,000원. 이윤을 남기려면 세개에 2,000원씩 팔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그시절 엄마의 나이는 스물일곱여덟쯤이었을 거다. 단독주택이 즐비한 경암동 주택가 한켠, 사람들이 제법 다니는 곳이 첫 영업 지였는데,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리어카 장사를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었다고.
하지만 막상 사과를 펼쳐 놓고 가 까지는 했는데, 차마 “사과 사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펼쳐 놓기만 해도 누군가가 사줄 거라던 막연한 믿음과 호기로움이 쪼그라들고 기대가 불안으로 바뀌던 순간. 어쩔 줄 몰라 눈물이 나오려 하던 그때 한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엄마 장사 인생의 첫 손님.
“아줌마, 이거 파는 거요, 마는 거요?”
“파는 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엄마에게,
“아니 근데 내가 옆에서 보니까 왜 사라고 말을 안 해요?”
“사실은 제가 오늘 처음 장사하러 나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아이고... 참말로. 사과 한 봉지 주시오. 얼마요?"
"2000원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애기 엄마가 안되어 보였는지 사과 한 봉지를 사며 개시를 해준 아저씨는 한참을 발걸음을 못 떼다 지나가는 지인들을 붙잡고 서너 봉지를 더 팔아주었단다. 그 귀인 덕분에 엄마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사과 사세요"를 외칠수 있었다고. 덕분에 준비한 사과 두상자를 성공적으로 다 팔아 냈다. 그 첫 성공 경험 앞에 나는 박수를 쳤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아저씨 손님이 참으로 고마웠다.
"근데 그 아저씨는 누구였대, 엄마?"
"몰라. 동네 사는 누군가 였을 텐데... 그렇게 집으로 가시고는 그 뒤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