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그 애와 마지막 통화를 나누던 당시에는, 나는 어차피 곧 세상을 떠날 거라 판단해서 별다른 미련이 없었다. 그래서 나답지 않게 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정의 수명이 다 한 것도 맞았다. 이제 더는 그 애를 애정 하지 않는다. 그런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예정과 달리 이렇게나 살아있다 보니, 어이없게도 자잘한 미련이 송골 댈 때가 있다. 그래도 한 번은 만나줄 수 있냐고 말이라도 꺼내볼 걸, 아주 가끔씩만 연락해도 되는지 물어볼 걸, 드문드문 후회한다. 이제야 겨우 그럴듯한 마무리를 한 것 같은데, 또다시 덧붙인다면 예전처럼 추하고 구질해질까 봐 더는 할 수가 없어서, 차라리 그때 남김없이 털어놓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는 사실 네가 요새는 어떻게 생겼을지가 궁금해. 너를 보게 된다면 내 감정이 그때와는 얼마나 다를지도 알고 싶고. 그때 너를 보는 내 감정은 온종일 진짜 뭐랄까, 막 잡은 고등어처럼 팔딱팔딱 뛰었거든. 쉴 새 없이 몸부림을 쳐대니까 나도 나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사방에 물방울을 튀겼던 거 같아 미안해. 미성년의 사랑은 다 그런 건가. 그래도 이제는 그때보단 어른이니까, 많이 침착하고 점잖아지지 않았나 싶어. 앞으로 누구를 사랑하게 된다 해도 말이야. 이런데 막상 네 앞에 서면 똑같이 되돌아가면 어쩌지? 그렇지만 내가 그걸 알 수 있게 되는 날은 어차피 오지 않겠지. 너를 다시는 볼 수 없을 테니까.
이상한 일이다. 이제 더는 그 애를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것마저 아닌데, 볼 수 없다는 그 현실이 슬프다. 나는 여전히 그 애가 부르면 기꺼이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디에 있든 걔가 어디에 살든. 나는 지금은 우도 밖으로 나가면 죽는 병에라도 걸렸는지 절대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데, 그 애가 만나겠다고 말해준다면 배 타고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얼마가 들고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곳으로 날아갈 것 같다. 그 애가 사는 곳으로 가고 싶다. 한 번이라도 괜찮으니까 마주하고 싶다. 사실 나는 새벽마다 그 애를 처음처럼 사랑하게 된다. 아침이 오면 언제 살았냐는 듯이 말라가는 감정이라 하더라도. 소실과 소생을 끊임없이 돌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하필 새벽이라서, 사랑하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