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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요한 연 May 02. 2021

4. 모델하우스 아르바이트 후기와 밤편지

전 날, 육지에서.


   자금을 모아야 했던 나는, 곧바로 이런저런 공고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빨리 부자 돼서 우도로 썩 꺼지라는 하늘의 계시였는지, 답지 않게 초밥집, 아귀찜, 모델하우스 세 곳이나 덜컥 합격했다. 심지어 초밥집과 모델하우스는 면접조차 보지 않고, 그냥 문자로 지원했더니 다짜고짜 나오라고 하셨다. (모델 하우스의 경우 사진을 첨부한 이력서를 전송하긴 했다.) 하지만 셋 다 하는 건 시간상 불가능해서, 적어도 한 곳은 아예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마침 저 아귀찜 집에서 근무했던 친구에게 취재한 결과, 절대 하지 말라는 답변을 듣고는 바로 손절했다. 이래서 인맥이 중요하다.(?)


   나는 아르바이트에 잘 잘리는 초능력이 있어서, 원래는 초밥집을 일주일 정도 하다가 잘리고 모델 하우스에 전념할 계획이었는데, 의외로 해고당하지 않는 바람에 그냥 내 발로 그만뒀다. 기존에는 투잡을 뛰려다가 모하 알바 하루 만에 내 정신력과 체력상 투잡은 도저히 무리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하가 힘들었던 건 아니고 그냥 일 끝나고 또 일 하러 간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흔한 알바런의 현장

그런데 생각보다 사모님의 답장이 무척 따뜻해서 죄책감이 좀 들었다. 얼굴 보여달라니까 무슨 연예인 된 기분. 결국은 얼굴을 보여드리지 못한 채 우도로 런했다는 애석한 후문....



4. 모델하우스 아르바이트 후기와 밤 편지


   아무튼 그렇게 모델하우스 아르바이트에 전념하게 되었다. 모하 일은 난생처음이라,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궁금하고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진짜 개꿀이었다. 우선 출근하면 출근부를 작성하고, (코로나 관련 절차는 당연하니 패스) 천막 안에 양렬로 모여서 팀장님이 분류한 포지션에 따라 각각 이동해서, 2-3교대로 근무하면 된다. 이 포지션에 따라 꿀의 당도가 조금씩 갈리는데, 전반적으로는 다 달달하다. 나는 초기엔 브이아이피 사은품이라는 포지션에 배정받았는데, 따로 마련된 천막 안에 앉아서 제가 VIP라고 주장하는 고객들의 신원을 확인 및 기입하고, 들기름 두 박스를 건네주기만 하면 되었다. 1시간 일하고 1시간 쉬었는데 사실상 2시간 내내 쉬는 것 같았다.


   같이 근무하던 여성 직원분은 ENFP(실제로도 그랬다. 물어봄.)였어서 엄청난 친화력을 자랑하며 본인의 현란하고 고단했던 연애 일대기와(진짜 폐급 똥차만 골라 만나셨더라.) 사무실 내의 펜하급 치정 썰을 들려주셨는데, 그냥저냥 흥미로웠다. 나중엔 포지션이 바뀌어서 1시간 일하고 30분 쉬어야 했어서 전보단 씁쓸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척 편리했다.

벚꽃이 흐드러지던 시절

  근무자 중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던 나는, 쉬는 시간마다 뛰쳐나가서 하염없이 산책을 했다.(그러다 집합시간도 모르고 산책하는 바람에 개트롤산책녀로 소문났다.) 하우스 내에는 마땅한 휴게공간이 없어서,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식당에 죽치고 있거나 발 냄새가 진동하는 비좁은 옷방에 쭈그려있는 것 말고는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럼 나가는 수밖에. 그러다 한 사흘째에 아름답고 낭만적인 산책로를 발견해서, 그 뒤로는 늘 노래 들으며 저곳을 휘적거렸다. 산들 하니 나름 괜찮은 시간이었다.

  결론은 모델하우스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 몇이 좀 탐탁지 않았던 걸 제외하고는, 아주 좋은 일자리였다. 원래는 좀 더 세세하게 쓰려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니 생략한다. 아무튼, 모델 하우스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지원하길 바란다.


이건 여담인데, 저 당시 친구에게 산책로와 더불어 벤치에 앉아서 풍경을 배경으로 한껏 올린 내 양 발 사진을 보냈었는데, 반응이 저랬던 바람에 서로 깔깔거린 기억이 불쑥 난다. 지금 봐도 좀 웃긴 듯. 아닌가...


볼때마다 야마를 팽이처럼 핑핑 돌게 하는 화면.

  사실 느닷없는 타임워프를 해서  글을  목적은  편지에 대한 이야길 하기 위해서다. 그전에 짚고 넘어가자면 내가  어플을 홍보하려는  절대로 아니다. 렉이 아주 잦고 심해서 고혈압에 걸려 쓰러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트롤편지로 이름 바꿔도  .  말이 너무 심했나... 그래도  감성적이며 기특한 어플이다ㅎㅎ(수습)

   아무튼 언젠간  쓰려 했는데 이제야 한다.  편지라는 누군가에게 무작위로 편지를 보내면, 12시간 뒤에 상대에게 도착하고  12시간 뒤에 답장을 받을  있다는(물론 상대가 답을 해줬다는 전제 하에) 특징의, 우체국을 표방한 어플을 3 중에 우연히 알았다. 나는  우체국 감성에 솔깃해져서,  기대 없이 편지를 써서 보냈었다.

   대충 이런 암울한 내용이었는데, 이걸 굳이 첨부한 이유는 현재의 말투와 비교하기 위해서다. 아무튼 너무 구구절절 쓴 거 같기도 하고, 답장이 안 오거나 대충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맨 처음으로 날아온 답장은 내 예상을 완전히 헛되게 만들었다. 뭐랄까, 저때의 내가 가장 필요로 했던 말들이 정성스레 차곡차곡 담겨 있었는데, 겨냥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무엇보다 꽉 찬 말들이 신기하고 좋아서 몇 번 씩을 읽다가 나 또한 정성을 기울여 답장했다. 이 분을 편지님이라고 칭하자면, 편지님과 나는 지금까지도 최소 반나절의 텀을 두고 보통 하루에 한 편씩,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어느덧 세 달째다! 시간 참 빠르다. 봄에 끝자락에 처음 알아서 여름의 초입을 향해 가고 있다. 그래도 겨울은 아직도 까마득한데, 편지님의 편지는 늘 크리스마스처럼 기다려지고,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처럼 아껴 읽게 되고,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답장하게 된다. 이 적적한 우도살이의 벽난로 같은 존재랄까..... 안락하고, 포근하다.


  그런데 저 내 첫 편지는 대체 몇 명에게 갔던 건지 편지님 외에도 답장이 한동안 여럿에게 왔었는데, 귀찮기도 하고 다들 좋은 말이었지만 답장까지 할 정도로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어서 다 무시했다. 또 나는 원체 한 우물만 파는 성질이라, 이미 팔 곳을 찾았으니 다른 건 더 필요가 없었다.

  초반에는 되게 진중하고 교양 있는 척 썼던 거 같은데, 보다시피 요새는 좀 많이 홀가분해졌다. 그만큼 친근해졌다는 뜻인 듯. 예전 편지랑 비교해 읽는데 거의 이중인격자인 줄 알았다. 나에 비해선 편지님은 한결같은 편이다. 적어도 동일인물 같긴 하다.

편지님은 사람 자체가 나와 정말 잘 통하고 닮은 점도 많아서 더 좋다. 하지만 편지만으로도 자랑하고 싶은 단락이나 구절이 참 많은데, 일단 허락받지 않아서 첨부할 수 없었다. 이와 별개로도 한껏 소개하고 싶으면서 나만 꼭꼭 간직하고 싶기도 하고.... 좀 모순적이다. 사실 모순인 게 또 있는데.... 는 쓰다가 다 지웠다.  너무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때가 좀 이른 듯하여... 언젠가 맥락이 된다면 편지에다 적어봐야겠다.


그치만 모닥불 보다는 내 등불

  아무튼 막바지에 다다르기 전 우연인데 운명처럼 찾아온 답장은, 어느덧 마지막까지 이어가고 싶은 소중한 선물이자 각별한 인연이 되었다. 오래오래 붙잡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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