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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Jun 03. 2023

닮고 싶은 사람'들'

마음에 드는 배울 점을 섞으면 나만의 특색으로 만드는 거요.

처음부터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수련을 시작해서 말없이 꼬물거리는 아기들이 익숙했던 3, 4월을 지나 말을 하고 걸어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병동으로 온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우리 꼬물이들이 그리워 오랜만에 두 층 아래에 있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종종 놀러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또 우리 병동에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착 아이들이 있다. 땡그랗고 동그랗고 작고 소중해...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란히 앉아있는 애들을 보면 정말 귀여워 팔짝 뛸 것만 같다. 


지난 달에는 내가 정말 애착을 가졌던, 아빠 눈코입을 쏙 빼닮은 꼬물이 한 명이 있었는데, 두 달 간의 입원 끝에 온갖 예쁜 것들에 꽁꽁 둘러쌓여 제주도 집으로 떠나버렸다. (안녕 잘 살고 있니? ㅠ)


그런데 웃긴 것이, 내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온갖 잔망을 떨며 동기들에게 보여주면 다들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유독 귀여워하는 아기들 상이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눈이 땡그랗고 똘망똘망한 아기들을 좋아하는데 내 친구 눌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마녀 유바바의 아들 ‘보’와 같이 땡땡한 아기들을 유독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도 정말 귀엽긴 하지)

출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엄마 닮았니, 아빠 닮았니?


어느 날은 교수님이 내게 물었다.

‘꾸꾸 선생은 엄마 아빠 중에 누구를 닮았소?’

알고 보니 나의 카톡 프사에 누가 봐도 똑닮은 친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는 문득 우리 부모님 얼굴이 궁금해졌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이 외래에서 매일 수백명의 부모자식을 보며 생긴 습관이 바로 엄마 아빠 중에 누구를 닮았을지 유추해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참, 그럴 법도 하네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나도 언제부턴가 유독 엄마나 아빠 한 사람의 눈코입을 쏙 빼닮은 아이들을 보면 너무 부모님 미니미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쿡 터져나오곤 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아과의사가 짧은 순간에 아이들의 외모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단지 귀엽고 깜찍해서만이 아니다.


한번은 멋드러진 갈색 파마머리를 한 아이를 보고 내분비 교수님께서 염색한 머리냐고 의문을 가지신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염색머리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자연모였다. 이처럼 소아과 의사가 아이들의 외형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외형을 통해 특정 질환을 의심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썹이 진하거나 머리색이 유독 옅을 때, 머리가 크거나 뼈마디가 굵은 등 특징적인 외모를 가진 아이들을 보면 소아과 의사는 선천대사이상 질환이나 유전질환 등을 의심해 검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교수님들이 아이들을 바라볼 때 단지 귀여움을 넘어 수많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되기까지 수 만명의 아이들을 많났으리라.




배울 점 투성이의 사람들 


대학병원에서 일하면 매일 아침마다 회진을 돈다. 이 회진이 참 별 게 아닌 것 같으면서도, 교수님들이 환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매일 보는 것만 해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말하는 방식부터 환자를 파악하는 방법, 아기들의 관심을 끄는 깨알같은 팁까지 오만가지 다양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환자를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꿀팁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 내 것으로 섞어버리곤 하는데 이번 주에 배운 꿀팁 중 하나는 바로 '악수하기'였다.



| 패셔니스타 교수님의 악수하기


우리 병원에 패셔니스타 교수님이 한 분 계신다.

”악수를 하면서 그냥 인사만 하는 게 아니야 여러분. 팔도 걷어서 아토피가 있는지, 애기가 팔힘은 잘 들어가는지, 악수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한지 전반적으로 모든 걸 한번에 보는 거야.“


이 때부터 나는 아이들과의 첫만남에서 대뜸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니, 모르는 어른이 대뜸 악수하자고 하면 손을 내밀까?'라고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선생님 악수!’하면 아이들이 문득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사실 소아과 의사가 되기 전에는 마치 아이들이 다른 종족인 것처럼 느껴지고 멀리서 귀엽게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이제 보니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도 배우고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근무 시간이 많은 병원의 특성상 하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자연스레 선생님들 성대모사를 하면서 우리끼리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하~ 오늘 당직쌤 누구에요? 오늘 우리 태오 잘 봐줘야 돼."


"00쌤. 어. 다 잘했는데, 어. 정말 좋은데, 우리가 22주로 태어나면 아기 살만 스쳐도 멍이 든다고 생각하면 돼. 막 34주 아기처럼 자극하고 들었다 놨다하면 IVH(IntraVentricular Hemorrhage, 뇌실내출혈) 직행열차야."


"어디 배 좀 한번 만져보자. 봉봉봉봉봉"


그런데 '성대'만을 모사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의 농도 짙은 내공으로부터 정말 배울 점이 많다. 

한 명의 꼼꼼함, 또 한 명의 강단, 또 다른 선생님의 따스함.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듯이 우리 또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흡수할 수 있다. 그 모든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하얀 백지 같았던 나에게 나만의 색이 점점 생겨가고 있으리라.



... 닮고 싶은 사람들 (2)탄에서 이어집니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 또 있꺼덩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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