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카 교수님의 대회진 :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내 환자들을 잘근잘근 씹어먹어야 합니다. 내 것으로 완전히 만들어버려야 해요."
매주 화요일은 쿼카 교수님의 대회진 날이다. 한자 클(대)자를 써서 '大'회진인데, 쿼카 교수님과 병동 스테이션 컴퓨터 앞에 앉아 환자 한 명 한 명의 질병과 과거력에 대하여 차근차근 살펴보는 시간이다.
"이 환자는 이 때 왜 가슴 CT를 찍은 거지?"
2년 전 CT다. 아직 파악하지 못한 정보이다.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린다. 교수님 옆에서 환자의 과거 기록을 뒤지기 시작하는데, 이 때 재빠른 마우스질은 생명이다.
이 회진을 견뎌내고 나면 정보의 파편들의 느슨했던 연결고리가 꽉 조여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 환자는 폐렴이 맞습니까?"
"이 환자는 항생제를 왜 썼습니까? 세균 감염이 맞나요?"
왠지 확실한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대답을 망설이며 나의 판단에 한 번 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폐렴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왜 아니지?
생각보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근거를 대야 할 때 머뭇거리게 될 때가 많다. 이러한 정확한 근거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층 성장한다.
"음, 혈액검사에서 염증수치, 백혈구수치가 크게 올라있지 않아서 사실 bacterial infection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항생제는 왜 쓴 것입니까?"
"기저 폐질환을 고려해서 세균감염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한 경험적 항생제를 사용했습니다. 혈액배양검사에서 균이 자라지 않고 증상이 호전될 경우 항생제 중단을 고려해보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환자를 보러 갔다.
환자를 조용히 관찰하고 청진을 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2시간의 대회진이 끝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뒤돌아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쿼카 교수님과의 회진이 끝나고 다시금 내 지식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알고 있는 게 맞을까?”
폐렴은 폐에 염증이 생겨서 기침하고 열나는 거라고 쉽게 생각했었는데, 문득 나에게 던져진 “이 환자는 그래서 폐렴이 맞습니까?”라는 단정적인 질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몇 년 만에 학생 때 수업자료를 다시 열어보았다.
유레카.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새롭게 보였다. 단지 줄글로만 외워댔던 내용들이 실제와 연결되는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학생 때 배울 때는 그렇게도 지루했던 수업 내용들이 알고 보니 교수님들이 수십 년의 경험을 요약하여 가장 중요한 것들만 모아놓았던 것이었다.
”윤 선생님, 쿼카 교수님한테 주말에 환자 보고 해 봤어? “
”아니요 아직 안 해봤습니다. “
나는 아직 1년차라 교수님께 직접 노티할 일이 늦은 밤 당직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나의 윗년차 선생님들을 거치고 거치면서 자질구레한 것들은 걸러지고 정제된 내용만 교수님께 전달되기 때문이다.
“내가 펠로우 때 쿼카 교수님이 주니어 교수셨거든. 그러면 이제 주말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교수님께 전화를 거는 거야. 설마 여기까지 물어보겠어? 하는 것까지 싹 다 준비를 해서 말이지. “
신기했다. 데자뷰다.
“내가 막 완벽하다 싶게 프레젠테이션을 해. 그럼 헤모글로빈(빈혈 수치)을 물어봐. 그럴 줄 알고 준비했지 하고 대답을 하잖아? 그럼 ‘이전에는 어땠었나요?’하고 물어보셔. 만약에 거기까지 막 다 준비를 해서 대답을 해. 그럼 마지막에 이 질문까지 나와. ‘그럼 환자 사는 곳은 어딘가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십수 년 전에도,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순간까지 쿼카 교수님의 질문은 몰아닥쳤던 것이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때는 왜 이런 것까지 물어보는지 불만이었는데, 되돌아보니 다 중요한 것들이었다는 거야.”
맞다. 내가 학생 때 그렇게도 지루하게 느꼈던 ppt도, 2주 전 회진 전마다 질문 폭탄에 고통스러워했던 때도 모두 되돌아보면 중요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온 것처럼 말이다.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아는 게 없을 때
본과 3학년 시절, 흉부외과 실습을 돌던 때였다. 우리 학교 병원은 작은 병원이라서 흉부외과에는 입원환자나 수술이 많지 않아서 빈 A4용지 한 장을 책상에 펴고 교수님과 학생 4명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실습의 주된 부분을 차지했다.
"자, 오늘은 모차르트 레퀴엠과 함께 한다."
점심을 먹은 직후 교수님 방에 병아리 학생 4명이 동그란 책상에 옹기종이 모여 앉으면 교수님이 정적을 뚫고 음악을 틀었다.
"5분 동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씩 종이에 적어봐라."
이렇게 항상 수업은 빈 종이 한 장과 함께 명상하듯 시작되었다.
그리고 쉽고 간단한 질문으로 수업의 포문을 열었다.
"자 여러분, 심장 알지? 다들 종이에 심장을 그려봐."
심장이야 뭐, 초등학생도 심장이 뭔지는 알지 하고 자신만만하게 펜을 집어든 우리는 모두 일동 당황했다.
생각해 보니 우심실 우심방, 판막 등 심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폐정맥이 몇 갈레인지, 심방 심실에서 동정맥이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가는지 생각보다 그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이상한 심장 덩어리 4개를 그렸다.
"자, 여러분. 내가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아는 게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해."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케이크를 사 왔지만 이틀째 우리 1년 차들은 모이지 못했다. 금요일엔 모일 수 있으려나? 했었는데 우리는 그다음 주 화요일이 되어서야 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
유일하게 딱 하루 있는 당직날이 하필 생일날과 겹쳐버렸지만, 사실 그래도 좋았다. 밤 11시 30분,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들을 받고 친구 눌이 당직실로 들어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체리에 앙증맞은 초를 꼽고 말이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생일날은 비가 내린 우중충한 하늘이 맑게 걷히고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푸른 하늘이었다. 우리 당직실 풍경은 콧노래를 부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