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의 근원
조용한 금요일 밤, 여유롭게 당직 일을 마무리해 놓고 씻을 준비를 하던 찰나, 함께 당직을 서고 있던 친구 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효, 트윈 나온대서 조금 있다가 카인 하면 부를게~"
30주 쌍둥이가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외부 병원에서 전원을 오자마자 쌍둥이 중 한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응급 제왕절개를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나는 신생아중환자실 파트가 아닌 병동 담당이었지만, 당직시간에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병동의 인력까지 동원하게 된다.
그렇게 나와 눌, 뚜 삼중 트리오가 30주 쌍둥이를 받기 위해 주섬주섬 어텐딩박스(Attending box, 신생아 출산 시 필요한 물품이 들어있는 박스)를 챙기기 시작했다.
"지금 2년 차 되고 나서 신생아파트 처음 도는 건데 너무 오랜만이라서 기억이 잘 안나"
아기들의 상태가 크게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오랜만에 어텐딩을 들어가는 것이어서 그런지 긴장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선생님, 카인 했습니다."
(*카인 : 수술장 안으로 환자가 입실함을 의미)
환자가 수술장 안으로 들어가면 자세를 바꾸고 소독을 하고 마취를 하는 데까지 약 30분 정도가 걸려 그동안 소아과 의사들은 슬슬 분만장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드랩을 쳤다는 연락이 오면 우리는 바로 아기를 받을 준비를 하러 분만장에 들어가게 된다. (**드랩을 치다 : 소독포를 환자에게 두르고 수술준비를 마치는 일)
그 가운데 평온하게 서계시던 교수님
미숙아들은 얇고 미숙한 피부 때문에 쉽게 체온이 낮아지기 때문에 작은 아기가 태어날 때는 수술장 온도를 최대한 올리게 된다. 따뜻한 수술장 안으로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아기를 받을 준비를 한다. 그중 한가운데 아주 차분하고 미동도 없는 표정과 자세로 우리 신생아파트 교수님이 아기를 받을 준비를 하며 서계셨는데, 그 주변으로는 마치 시공간이 멈춘듯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교수님께서는 저만치 평온한 표정으로 서 계시는 걸까?'
산과에서 제왕절개가 시작되었다. 산모의 배를 가르는 순간부터 아기가 나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첫째 출생시간 밤 10시 3분입니다."
축 쳐진 상태로 나온 아기를 가볍게 닦아준 뒤 체온 증발을 막기 위해 얇은 비닐을 덮고 모니터를 붙이며 바로 양압환기(산소호흡보조)를 해주었다. 1분에서 2분 정도 양압환기를 해줌에도 아기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자 교수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주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인튜베이션 할게요. 튜브 주세요"
(**인튜베이션 : 기관 삽관, 기계호흡을 할 수 있도록 기도에 관을 넣는 술기)
첫째에게 인튜베이션을 마치자마자 둘째가 태어났다. 식은땀을 흘리며 2년 차인 뚜와 1년 차인 내가 둘째를 닦고 모니터를 붙이고 있는 와중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뚜 선생이랑 효 선생 이쪽으로 오시고, 자리 바꿀게요"
30주에 태어난 아기들은 자발호흡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인튜베이션이 필요한 상태인지 판단하고 빠르게 처치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느 정도 처치가 완료된 첫째를 전공의 팀에게 넘겨주시고, 교수님은 갓 태어난 둘째에게로 향하셨다.
뚜와 나는 인투베이션을 한 첫째에게 앰부배깅을 하며 산소를 넣어주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런데 앰부배깅을 지속함에도 산소포화도가 계속 올라오지 않았다.
"chest elevation은 잘 되나요?"
"FiO2 100까지 올려주세요."
아무래도 인투베이션이 빠진 것으로 보였다. 산소포화도가 80을 넘어야 정상인 상황이었는데, 아기는 계속 끙끙거리며 반응이 없고 산소포화도는 4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찔끔찔끔 떨어지며 심장박동수까지 100 미만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리인투해야될 것 같은데"
(**리인투 : re-intubation)
하지만 사실 작고 미끄덩거리는 미숙아의 목구멍 안으로 가느다란 관을 넣다 빼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아닌 술기이기 때문에 이미 들어간 관이 잘못 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고 재삽관을 결정하는 일은 우리 같은 저 연차 전공의들에게는 꽤나 무게감 있는 결단력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교수님은 다시 한번,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뚜 선생, 둘째는 around O2 만 주면서 바로 NICU로 가면 될 것 같으니 다시 자리 바꾸죠."
그렇게 또다시 교수님 팀과 1,2년 차 팀이 자리를 바꾸었다. 교수님의 목소리에서 나는 긴장감과 당황스러움이 전혀 없는 차분함과 민첩함, 그리고 그 중심의 강인함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기들의 탯줄 혈액을 챙겨 검사 튜브에 챙겨 담고, 인큐베이터가 가는 길을 앞서 달려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애기 태어났어요. 먼저 갈게요"
그렇게 쌍둥이 모두 NICU(신생아중환자실)로 무사히 올라오게 되었다. 수 차례의 체외수정과 한 번의 유산을 겪은 끝에 얻은 쌍둥이들이었는데, 두 달이나 먼저 엄마아빠를 보겠다고 세상 밖으로 나와버린 탓에 마음고생 많이 했을 아가들의 엄마아빠를 생각하니 참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교수님의 미동 하나 없는 차분함의 중심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의 근원에는 지식과 경험이 있었을 테다. 저렇게 결단력 있는 자신감을 갖기 위한 지식과 경험을 쌓으려면 얼마 간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교수님들과 윗년차 선생님들을 보며 모든 것을 배우게 된다. 말투부터 어려운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 학생과 환자, 의사를 대하는 태도와 습관들, 걸어 다니는 자세까지. 참 웃긴 것이 항상 당직실에 모여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사람을 우리도 모르게 따라 하며 말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아마 교수님들 또한 교수님들의 선배들의 모든 것들이 혼합되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탄생시켜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바다와 같은 지식과 경험이 우뚝 서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밤이었다.
그렇게 취미도 관심사도 많은 나지만, 소아과의사로 5개월을 일한 현재 나에게 최우선 순위는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의 병에 대해 공부하는 일이 되었다.
사실 전공의 생활이라는 것이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동료들과 스스럼없는 사이로 지내다 보니 일과 개인 삶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일과 삶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때로는 직장이 곧 집처럼 안락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나를 보며 순간, 일을 빼고서는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잊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대학생 때 외과 실습을 돌 때였다. 당시에 외과 실습을 도는 한 달 중 간담췌 파트를 도는 동안에는 교수님과 항상 점심을 먹거나 카페를 자주 갔었는데, 하루는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났을 때야"
"정말요 교수님? 왜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나요?"
"그때가 처음이자 거의 마지막으로 아들이랑 아내랑 가장 시간을 많이 보냈던 때였거든"
그리고 하루는 로컬 병원으로 실습을 나간 때였다. 서울의 한 항문외과에 실습을 나가 치질수술을 참관하고 나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일찍 실습이 끝나는 일정이었다. 그 병원은 병원으로 가득한 빌딩의 한 층을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항문외과였다.
"원래 처음에 시작은 작게 시작했는데, 잘 되면서 이 층을 다 사서 확장했어."
그리고 원장실을 구경했는데, 그 안에는 꼬물꼬물한 딸 두 명의 사진이 담긴 액자들과 아이들이 그린 그림, 그리고 원장님의 취미와 관련된 물품들이 가득했다.
"주말마다 애들이랑 놀러 다니거든. 점심에는 이 동네 가까운 병원장들이랑 종종 점심식사도 같이 하고 말이야. 나는 지금 삶이 참 만족스러워"라고 말씀하시며 환한 웃음을 짓던 원장님이 기억이 난다.
가족과 일. 그 사이 어딘가를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하며 교묘한 평형을 맞춰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후회는 있기 때문에 1%라도 덜 후회할 수 있는 선택을 하라'
그렇게 생각하면 선택이 쉬워진다. 선택 뒤에 오는 후회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고,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록을 이어가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아 또, 수지야!"
우리 병원 소아과 전공의들만큼은 귀여운 걸 보고 감탄할 줄 안다. 매일의 루틴 중 하나는 주치의를 맡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제각기 입이 닳도록 말하는 것이다. 목에 주렁주렁 각종 피규어와 인형을 달고 다니는 것도 자세히 보면 소아과 의사일 확률 99%다. 이쯤 보면 소아과 의사가 되면 귀여운 걸 좋아하게 되는 건지, 귀여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 소아과 의사가 되는 건지 분간이 어렵다.
하루는 편의점에 일회용 마스크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미친 귀여움의 피규어가 진열된 것을 보고 나와 쿼카는 단숨에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3800원의 행복. 편의점 구석탱이에 쪼그리고 앉아 랜덤 피규어의 구석구석을 만져보며 꿀벌 짱구와 짱아를 찾으려고 10분을 뒤적인 끝에 각자 한 봉지씩 들고 당직실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부잣집 딸 수지가 두 개나 나와버리는 탓이 실망의 콧구멍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내 수지도 세트로 놓으니 귀엽다며 위안을 삼으면서도 은근슬쩍 재구매를 계획했다.
일상 속 작은 행복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