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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Jul 23. 2020

04. 이거 네가 가져갔니?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

할머니는 하루에도 수시로 물건이 없어졌다거나 계속 같은 질문을 하시며 전화를 하셨다. 그 와중에 나는 몸에 혹이 켜져서 수술을 받아야했는데, 수술 기간을 제외하고 주 3회 정도 찾아뵈며 병원 일을 챙겨야했다. 쉽지 않았고 스트레스가 컸다. 할머니는 나와 정기적으로 찾아뵙는 생활지원사, 엄마에게 계속 전화를 하시며 물건을 내놓으라고 괴롭히셨다. 엄마는 전화 받기가 두렵고 힘들어 아예 전화를 안 받으셨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힘들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가족들과 멀어져 더 우울해지실까봐 걱정되었던 나는 조금 잔인하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세 번에 한 번만이라도 받으시라고 말씀드렸다. 생활지원사 선생님도 얼마전 처음으로 물건을 가져갔다는 의심을 받고 나에게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일을 해야하는데 전화를 계속하신다고 해서, 죄송하지만 그럴 때에는 전화를 받지마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유일하게 전화를 잘 받는 내게 계속 전화를 하신다. 보호자와 떨어져있기 싫어하는 부분도 치매 증상의 일부라고 했다.

 

할머니 입장에선 갑자기 물건이 사라지거나, 약속이 기억나지 않아 불안했을 것이다. 10년 넘게 쓰던 그릇을 두고 누가 집에 와서 처음보는 물건을 두고 갔다고 우기셨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왜 나를 믿지 않냐며 화를 내셨다.


"이건 내가 쓰던 그릇이 아닌데. 누가 집에 와서 가져다 놨다. 네 엄마가 그랬지?"

"아녜요. 할머니, 이거 10년 넘게 쓰시던 거에요. 할머니 기억이 희미해져서 그렇게 느껴지시는 거에요."

"아냐. 누가 가져다놨어. 왜 내 말을 믿지 않니? 니가 그러면 안되지."


"너가 내 카드를 가져갔지? 카드인가, 서류? 병원에서 그때 가져갔잖아."

"저는 아니에요. 할머니. 혹시 모르니까 가방에 잘 찾아보실래요?"

"가방엔 없어. 거짓말 하지마. 그날 네가 가져갔잖아. 날 바보로 아니? 빨리 가져와!"


주로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졌고, 같은 대화를 해도 잊어버리고 한 두 시간 뒤에 다시 전화하셔서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치매 환자의 가족이 간단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이 있는데,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하도 답답해서 처음으로 전화 상담을 받아보았다. 전화 상담이 전국에서 오기 때문에 장시간 통화가 어렵고, 30분이 지나면 전화를 끊으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온다.


상담 선생님은 이 경우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말고 공감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환자의 말에 동조해주려 '물건을 내가 가져갔다'고도 말하면 신뢰가 떨어지고, '가져가지 않았다'고 하면 환자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여겨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물건을 잃어버려서 걱정되시는군요.' 공감해드리며 같이 찾아드리라고 알려주셨다. 근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대답을 회피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들고간 물건을 도로 가져오라고 소리치는 할머니께 부정도 긍정도 않고 '나도 모르겠다'고 말하면 '너 정신 나갔니?'하고 욕을 먹어야하고, 일과 중에 할머니 집에가서 물건을 같이 찾아주기도 쉽지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여러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사례가 자세하게 나와있는 글이나 영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단지 비슷하게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공감해주세요.' 라고 적혀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최근에는 그냥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물건을 도로 가져오라고 하시는 경우에는 충분히 말씀을 들어드리고, "제가 안가져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저도 찾아볼게요. 할머니도 다시 한번 보세요." 하고 모호하게 대답하고, "근데 제가 다시 구해드릴테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다음에 제가 하나 새로 만들어(구해) 드릴게요. 그거 금방 구할 수 있어서 걱정안하셔도 되어요. 근데 할머니 밥은 드셨어요?" 하고 안심시키면서 대화를 다른 주제로 바꿔버린다. 이럴 경우에 할머니가 내 긍정적인 태도에 안심하며 다른 이야기를 하시게 되고, 다음 날이 되면 화를 냈던 것도 잊어버리신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경험이 모두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상담 선생님은 물건이 중요한게 아니고, 그 상실감을 공감받고 싶은 거라고 말했다. 기억이 점점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두려움 속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으신 것이다. 할머니를 바라보며 내가 노인이 되어 만일 치매에 걸린다면 어떨까, 엄마가 만일 치매에 걸린다면... 이따끔 두려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나는 만약 노인이 되어 치매에 걸리면 내 발로 요양원에 가고 싶다. 병에 걸리는 것보다 내 가족들이 그 고통을 감내해야한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그 병이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무서운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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