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
할머니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셨고 검사를 거부하셨다. 치매 판정을 늦게 받게 된 이유도 작년부터 치매 검사를 거부하셨기 때문이다. 초기 치매에는 환자가 인지능력이 남아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고집하시며 도움이나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진짜 치매인지, 노인 건망증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집안 어르신을 설득해 검사를 받아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할머니는 치매예방센터를 '정신나간 사람'이 가는 곳이다, 라는 완고한 편견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설득이 쉽지 않았다.
장기요양보호 신청을 하려면 건강보험 공단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공단에서 온 사회복지사가 치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서 등급을 정하는데, 등급은 1-5등급이 있고 가장 낮은 단계인 '인지지원등급'이 있다. 등급 판정을 위해 온 사회복지사는 할머니가 자신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10분 정도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할머니가 자신의 흉을 본다고 생각하실까봐 그동안의 증상을 메모해서 복지사께 슬쩍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형식적인 치매 검사에 자존심이 상해하셨다.
'오늘이 몇일이에요? 집 주소가 뭐에요?'
질문을 받으면 바보 취급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환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불편함, 필요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되면 좋겠지만 병원이나 공단의 검사 모두 저런 질문으로 진행된다. 평소에는 잘 대답을 못하시다가도 복지사 앞에서 그날따라 대답을 잘 하신다. 할머니가 "바보인줄 아냐고" 투덜거리자 복지사는 난감한듯이 얼버무린다. "아이고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할머니는 한글을 띄엄띄엄 읽기는 하셨으나 쓰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의 열등감으로 자리잡아 계셨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에게 '알고 있는지' 질문하는 걸 싫어하셨다. 할머니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 창피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글교실에도 다니지 않았다. 우리가 한글공부 책을 사다 드리거나 권유하면 "살 날이 얼마 안남았는데 배워서 뭐하냐"고 하셨으나 진심은 배우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할머니는 치매검사를 불쾌하게 생각하셨다.
1개월 정도를 기다리자 건강보험공단에서는 할머니 상태에 '인지지원등급'을 주었다. '인지지원등급'은 정부 지원으로 노인 주간보호센터를 주 3회 정도 이용하거나, 노인복지관의 인지지원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는 등급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건강염려증이 심하셔서 코로나 이후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고,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도 가고싶어하지 않으셨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그러셨다.) 할머니에게 주간보호센터는 노인들이 생활의 자유를 빼앗기는 요양원 시설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요양보호 등급을 받았음에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부모님이 대소변을 못가리고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니 방문 요양이 가능한 4등급을 받았단다.(5등급부터 재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할머니는 혼자 티브이 채널을 돌리거나 세탁기를 돌리지 못하고, 할일을 기억을 하거나 대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병원이나 은행에 갈 수 없다. 혼자 일상 생활이 어려움에도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3개월을 기다려야했다. 이런 절차들을 하나도 몰랐던 나는 장기요양보호 신청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이 많았다. 공단 홈페이지를 뒤지고, 전화를 하며 물어물어 일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치매 환자 가족들이 처음에 겪는 당혹함과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다.